첫번째 사냥

최소한의 마나 소모로 주변에 작은 바람을 계속 일으키도록 연습한다.

한번에 큰 마법을 써보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마나도 빨리 늘고, 마력제어도 익숙해진다.

어떻게 아냐고?

처음에는 그냥 마법 몇번 쓰면 마나가 다 떨어져서 다시 찰때까지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오래 사용해볼려고 아껴쓴 거였다.

뭐 당연히 아껴쓴 만큼 연습시간도 길어졌고, 그만큼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3살때 정보 팔찌를 생일선물로 받고 나서 확실해졌다.

큰 마법을 한번에 사용하는 것보다, 작은 마법을 여러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용하는게 여러가지로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점점 더 정밀한 조작이 가능해져서, 더 적은 양의 마나로 더욱 미세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총 마나양도 늘었기 때문에, 어느순간부터 자는시간 빼고 마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바람마법이 2레벨로 올랐다.

그때부터 남는 마나로 여러가지 실험을 해본다.

너무 작아져서 거의 느껴지지도 않는 바람을 조금더 강하게 일으켜 보고, 2레벨 바람마법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윈드커터나, 윈드워크를 시전해 본다.

윈드커터는 가장 기초적인 바람속성의 공격마법으로서, 날카로운 바람을 만들어 내는 마법인데, 위력은.. 음.. 솔직히 말해서 별로다. 집중도 많이 필요하고 마력도 소모량이 큰데 비해서, 위력은 연습용 검으로 한대 때리는거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까..

나중에 들으니, 바람마법이 원래 공격보다는 보조에 적합하다고 한다. 윈드커터도, 위력을 보고 사용하는게 아니라, 공기중 어디에서든 만들어낼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기습또는 견제용으로 활용하거나 닿기 어려운 몬스터들의 약점을 바로 공격하거나 하는 활용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레벨이 높아지면 사이클론 같은 고위마법에 마나를 퍼부어서 범위공격으로도 유용하다고 하지만, 효율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윈드워크는, 바람을 일으켜서 걸음을 보조해주는 마법인데,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 마법이라서 그런지, 연습해 온거랑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 별 목적 없이 아무 바람이나 일으키는 대신에, 나의 움직임에 맞춰 바람을 일으킨다는 차이, 그것뿐이라서 그런지 사용하기도 쉬웠고, 유용하기도 했다. 아기의 몸이라서 힘이 부족한데 그걸 어느정도 바람마법으로 메꿀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알게 된게, 마법은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 아무래도 바람마법 레벨만 충분하면 그 레벨에 시전할수 있는 마법은 원리만 알면 사용할 수 있는듯 하다.

효과적인 수련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리즈의 말로는 그냥 계속 쓰다보면 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작게 오랫동안 사용하는게 한번에 큰 마법을 사용하는것보다 나은 것 처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텐데.. 아무래도 생각나는 방법마다 사용해보는 수 밖에 없는것 같다.


아, 3살 생일 이후로 엄마 아빠를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솔직히 갑자기 리즈가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리즈라고 부르라고 했을때는 깜짝 놀랐다.

문화충격이라고 할까, 여태까지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사실 모른다. 친구들 집에 놀러가본 적도 없고..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무엇보다 리즈라고 부르니까 엄마가 환하게 웃어준다. 이걸로 괜찮은게 아닐까? 윌은 그 표정 그만두고.. 무서운데..


윌이 가르쳐주는 검술도 진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윌이 너무 간절해 보여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즐거웠다.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한다는게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아빠는 정식으로 기본체력을 늘리는법 부터 가르쳐줬고, 스테이터스를 볼수 있게 되면서, 성장하는게 눈에 보이자, 캐릭터를 키우는것 같아서 이게 또 재미있어져서 열심히 하게 됐는데, 아니 이 세계 너무 굉장하다.

운동하면서 늘어나는 것은 힘 스텟인데, 전반적인 신체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라고 한다. 올릴때는 그냥 게임에서 노가다 하는 느낌으로 열심히 올려놨는데, 윌이 주먹으로 바위를 부술때 알아봤어야 할까, 이거 효과가 너무 좋다. 전생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달리는걸 본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달리는 속도가 그것이랑 비슷할 것이다. 참고로 나 럭스, 현재 4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 나이는 다섯살! 나는 오늘 중대한 결심을 했다.

바로 처음으로 몬스터 사냥을 나가보기로 한 것이다!

역시 게임은 사냥이지! 라던가 연습한걸 실전에 사용해보고 싶다! 라는 이유는 아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조금은 있다. 그냥 약간?

그것보다 사냥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험치 때문이다. 마법 연습이나, 운동 또는 검술 연습을 하는 걸로도 스텟이 오르고 레벨이 오르긴 하지만, 몬스터를 잡는 실전을 하는게 레벨이 가장 빨리 오른다고 한다. 어째서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해지는게 느껴질 정도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했다. 이거 경험치지?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다른 한가지 이유는, 할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숲은, 정식 명칭이 서쪽의 숲,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숲중 가장 크고 대표적인 숲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몬스터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마의 숲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런 곳에서 사는 이유는, 숲의 외곽지역에는 약한 몬스터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한 몬스터들은 위험하기에 기피대상이지만, 약한 몬스터들은 재료로도, 식용으로도 쓸수 있는 데다가 몬스터들의 특징인 강한 번식력과 빠른 성장덕분에 수도 많아서, 사냥꾼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사냥감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숲의 변두리에 사냥꾼의 마을도 여럿 있고, 우리 가족처럼 은퇴한 모험자들이 자리잡고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게, 우리 집 주변에는 최약 몬스터인 혼드레빗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숲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다른 몬스터도 나오지만, 갑자기 강한 몬스터는 나오지 않고, 나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정도다. 뭐, 깊이 들어갈 생각은 물론 없다.

혼드레빗 (레벨 1~5)

토끼가 마나를 흡수해서 공격적으로 진화한 몬스터. 보통 토끼와는 다르게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물들을 보면 공격한다.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어린이들에게는 위험한 몬스터이므로, 만약 머리에 뿔이 달리고 적의를 내뿜는 붉은 눈을 가진 토끼를 본다면 도망가거나 주위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것! 강한 각력과 뿔을 이용한 공격이 주를 이루며 이것만 조심하면 어린이들도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레벨이 높을수록 크기가 커지며, 그만큼 강해지니 조심할것. 뿔은 무기로 쓸수 있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위는 …


혼드레빗, 나는 뿔토끼라고 부르는 이 몬스터에 대한 몬스터대백과의 정보다. 보다시피 최약의 몬스터이고, 어린이들에게는 도망가라고 하지만, 어른들은 사냥꾼이 굳이 아니더라도 상대할 수 있는 정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우리집 주변엔 이녀석들만 나온다는것!

이렇게 좋은 경험치원들이 돌아다니는데 가만히 있을수는 없다! 게이머로서 이건 반드시 잡으러 가야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걱정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몬스터대백과에도 적혀 있었잖아, 어린이들은 도망가라고. 그리고 난 현재 5세, 아기와 어린이의 경계선에 있달까.. 만화에서 보면 다섯살짜리도 막 공룡하고 싸우고 그러지만, 난 외계인도 아니고 그냥 여자아이다. 그렇지만 평범하다고는 분명히 할수 없는게.. 이 세상부터가 평범하지 않은걸. 아무리 전생의 기억이 있고 조기교육(?)을 조금 받았다고 해도, 아무리 마법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5살짜리가 내가 기억하는 청소년들 하고 달리기 속도가 비슷한 것만 봐도 그렇다.

어른들의 평균 레벨이 10이고 혼드레빗정도는 다들 간단히 잡을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검술과 마법을 배운 나도 분명히 잡을수 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내 스테이터스는 다음과 같다.

럭스

종족: 인간

레벨 5

힘 6

민첩 10

지능 9

스킬: 바람마법 2, 검술 1, 마법지식 1

타이틀: (없음)


레벨이 분명히 5이고 이정도면 강한 혼드레빗을 만나도 내가 레벨이 더 높다. 물론 처음에는 강한 녀석이 나오면 도망가고 약한걸 찾아볼 생각이다. 윌의 훈련을 받아서 힘도 꽤 늘어났는데, 이상하게 민첩만 더 많이 는다.

전생의 기억도 있고, 마법연습도 많이 했기에, 정신적 능력을 표시한다는 지능 스텟이 높은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열심히 운동을 해도 힘보다 민첩만 많이 오르는건 솔직히 처음엔 잘 이해가 안갔다.

민첩 스텟은 육체를 얼마나 잘 다룰수 있는가를 표시한다고 하는데, 이게 속도, 기술 등을 나타낸다고 생각해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나의 5살짜리 몸으로서 육체적 능력을 나타내는 힘 스텟을 올리는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이 세계의 사람들이 가진 초인적인 힘이 근육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마나에 근간을 둔다고 해도, 순수한 육체적 힘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건 변함이 없다. 이건 윌만 봐도 알수 있듯이, 이미 강한 육체에 마나로 강화된 능력과 약한 육체를 마나로 강화한 것과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래서일 것이다. 아직 어린 내 몸으론 운동을 해도 순수한 육체의 능력인 힘 스텟보다는, 몸을 다루는 능력인 민첩이 더 많이 오르는 것은. 뭐 이건 어쩔수 없다. 중요한건 내가 어떻게 이걸 활용할 수 있는가.

뿔토끼와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많은 준비를 했다. 대백과에 적힌 정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번 읽어보고, 윌과 리즈에게도 이녀석들의 습관이나 공격패턴 등에 관해 물어봤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내가 이길수 있다 였다.

아니, 이녀석들 가장 약한 몬스터의 표본답게, 너무 호구적이다. 일단 사람을 발견하면 열에 열, 100퍼센트의 확률로 이녀석들은 달려들면서 뿔로 공격을 한다고 한다. 무슨 몬스터 AI 도 아니고, 약한녀석 주제에, 보자마자 덤벼들고, 그것도 항상 같은 방법으로 덤벼든다는게 기가 막히지만, 그러고도 멸종하지 않은건 이녀석들의 번식력이 그만큼 높다는 거겠지.

그래서 이녀석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면? 답은 간단하다. 공격을 피하면서 약점을 공격하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내 능력으로 가능하다. 만약 실패 하더라도 이녀석들의 단순한 공격에 맞지 않는한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니까.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기대도 크다. 처음으로 달렸을 떄의 기쁨을 아직도 기억한다. 전생에는 아파서 방에서 거의 나오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대리만족겸 빠져들었던 게임의 케릭터처럼, 단신으로 드래곤도 상대할수 있는 힘을 가질수 있는 세계. 그걸 모두 기억하기에 첫 전투에 거는 기대도 크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니 분명 할 수 있다. 그리고 얻은 경험치는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을 내게 줄 것인가?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잠을 재촉한다. 어서빨리 내일이 오기를.





아침에 일어나서 나를 향해 웃어주는 리즈에게 키스를 받고,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간다. 이젠 버릇이 된 윌이 만들어준 운동 계획대로 집 주변에 정해진 루트에 따라 한바퀴를 달리고 돌아오니 리즈가 목욕물을 준비해 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를 씻겨주는 리즈의 손길이 기분좋다. 목욕이 끝나면, 리즈가 내 머리를 움직이기 손질해준다. 바람마법으로 말려주고, 이제는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리즈랑 같은 연두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정리해 준다.

“오늘도 집에서 얌전히 잘 있어야해, 마법연습은 꼭 마당에서 하고, 알았지?”

내가 혼자서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리즈는 윌과 함께 사냥꾼 일을 하러 나갔다. 대신 둘다 더 일찍 돌아왔지만, 그래서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바로 그 덕분에 사냥을 나갈수 있게 됐으니까.

물론 리즈나 윌하고 같이 가게 되면 더 안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냥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분명히 반대한다. 이건 내가 처음 검술을 배울때 리즈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여자아이답지 않게 검술을 배우는 것도 반대했었는데, 몬스터를 죽이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윌한테만 부탁하면 어떻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데, 사실 이건 윌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처음에 내게 검술을 가르쳐 준건, 왠지 리즈한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느낌이 강했고, 몬스터를 잡는건 이르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하다.

뭐 어차피 뿔토끼정도는 혼자서도 잡을수 있고, 그럴 자신이 있다.

단 하나 걱정되는게.. 몬스터와 실제로 싸운다는게.. 음.. 조금 걱정은 되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된다. 만약 잘못돼도 도망가면 된다. 민첩이 10에 윈드워크까지 사용할수 있는 지금, 뿔토끼한테서 도망가는건 식은죽 먹기다.


바람마법을 사용해서 내 손이 닿지 않는 선반위에 올려진 단검을 꺼낸다.

윌이 종종 보조무기로 가져가는 작은 단검이지만, 지금 나의 신장에 어울리는 딱 적당한 길이의 무기이다.

수없이 연습해 왔던 동작대로 단검을 사용해서 횡베기를 해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뿔토끼의 목이 있을듯한 높이에 검이 궤적을 남긴다. 이걸로 준비 완료다.





집을 나와서 마당을 지나고, 보통 산책 루트에서 벗어난 숲 속으로 들어간다.

혹시라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나온 길을 확실히 기억한다. 그 동시에 근처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뿔토끼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다.

푸스슥

앞쪽에 보이는 덤불이 흔들리며 하얀 동물이 모습을 들어낸다. 빨간 눈과 이마에 달린 한개의 뿔. 분명히 뿔토끼이다.

눈짐작으로 보이는 크기는 작은 편, 아마 1레벨이나 2레벨의 뿔토끼이다. 첫번째 사냥의 대상으로는 딱 적당하다.

심장 박동소리가 어느때보다도 크게 들린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긴장한 나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뿔토끼의 눈이 마주친다.

뿔토끼의 붉은 눈은 살기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휘는듯한 착각과 함께 뿔토끼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건 타이밍. 연습은 충분히 했다. 가능성도 충분히 따져보았고, 아무리 보아도 간단해야할 싸움. 남은건 실천에 옮기는 일 뿐이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몬스터의 살의. 내가 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생명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모든 망설임을 뒤로하고 뿔토끼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주시한다.

뿔토끼가 뒷다리에 힘을 모아 땅을 박차고 뛰어든다. 이때다! 하는 감각을 느끼며 몸을 비틀며 검을 가로로 휘두른다. 수없이 연습한 동작으로 노리는것은 뿔토끼의 약점인 목.

비록 실제 싸움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서 하는 게임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다르다고 하더라도, 게임을 하면서 쌓아온 버릇중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실행하기 전에는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하고 꼼꼼히 계획을 짜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 그리고 그 작전을 고안한 나 자신을 믿고, 실행하기 위해 쌓아온 경험을 믿고,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해 이 순간만은 모든 잡념을 떨칠수 있는 자신감.

이 버릇 덕분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괴물의 살기에 집어 삼켜질만도 한데, 괴물의 뿔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오른손에 들린 단검은 정확히 뿔토끼의 목을 꿰뚫는다.


약점을 꿰뚫린 뿔토끼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온다. 따뜻한 액체가 얼굴에, 또 몸에 닿는것을 느끼며 뿔토끼의 행동을 주시한다.

나를 죽일듯이 바라보던 빨간 눈에서 빛이 사라져간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경악, 그리고 삶에 대한 미련.

그것을 거부하듯 나는 단검을 더 깊이 밀어넣는다. 고기를 찢는 느낌과 함께, 뿔토끼의 추진력 덕분에 이미 가죽을 찢고 들어간 단검은 약점을 더욱 깊이 후벼판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몬스터는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해냈다! 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나의 생명이 꺼져가는 감각이 내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얼굴에, 손에, 가슴에 달라붙은 붉은 피는 떨어지지 않는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린다.

분명히 계절은 여름일텐데, 너무 춥다.

따뜻한 피를 뒤집어 썼을 텐데도,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살기에 서늘함만이 느껴진다.

'집에 돌아가야해.'

금방이라도 주저않을듯한 몸을 채찍질하듯 일으키며 한가지만 생각한다.

몬스터의 시체와 피의 냄새는 다른 몬스터를 끌어당긴다고 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집에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이 사냥은 끝난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머리에 여태까지 온 길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일상이 녹아있는 마당에 들어서자, 이제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밀려듬과 동시에 여태까지 겨우 유지해왔던 시야가 암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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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0 16:18 | 조회 : 40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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