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새로운 조항

09. 새로운 조항

잠깐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10분도 안 돼서 눈을 뜨고 말았다. 많은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인지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난 소파에서 일어나 자기 위해 꺼둔 전등을 다시 켰다. 어두웠던 진료실이 한순간에 밝아져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살포시 눈을 감고 떴을 땐 누군가 컴퓨터 책상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일어났습니까?"
"...이, 이하준씨?"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제가 좀 다쳐서."

거짓말. 계속 이하준씨를 바라봐도 상처 하나도 없었다.

"..거짓말인거 다 압니다. 왜 오셨어요."
"제가 조직배라 무섭습니까?"
"그냥 조직배가 아니라 조직 보스잖아요! 당연히 두렵죠."

내 말에 이하준씨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안색을 보고 난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하준씨, 미안해요. 방금 그 말은 취소할게요."

이하준씨는 피식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난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고 책상에 앉아 있는 그를 소파로 데려왔다.

"왜 오셨어요?"
"괜찮은지 보러왔습니다."
"...네?"
"괜찮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내가 괜찮은지 보러왔다고?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자신이 아닌 내가 괜찮아보여서 다행이라니? 이상한 말을 하는 이하준씨에게 다시 물었지만, 그는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그 뒤로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은우씨."

어색한 분위기에 김간호사에게 커피라도 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머신 쪽으로 걸어가자 이하준씨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것도 성도 빼고.

"..방금 제 이름을.."
"은우씨를 은우씨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 부릅니까?"
"그렇긴 하네요. 근데.. 왜 부르셨어요?"
"계약, 계속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아 맞다. 지금까지 이하준씨를 만나게 된 이유가 계약 때문이었지. 방금 이하준씨 질문에 "No."를 말하면 계약을 깨뜨릴 의양이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깨뜨릴 이유가 있을까. 단순히 조직 보스가 두려웠다는 이유로 동생의 치료비를 주고도 남을 정도로 큰돈을 주는 이 계약을 깨뜨릴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계약, 계속할 겁니다."

계속한다는 내 말에 이하준씨의 눈이 커졌다.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지만, 커진 눈을 볼 수 있었다. 놀란 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아, 사실 거절 하실 거 같았는데.. 의외라 놀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전 은우씨가 좋거든요."

이하준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내 심장을 심하게 요동쳤다. 이상하게도 이하준씨만 보면 심장이 이상해진다.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하준씨는 내 눈을 바라보며 계약조항 중 바꾸고 싶거나 추가하고 싶은 조항이 있음 말해달라고 말한다. 딱히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한가지가 떠올랐다.

"이하준씨는 환자니까 의사인 제 말을 잘 들어주셨음 합니다. 저번처럼 상처가 벌어지면 안되니까."
"...알았습니다. 그정도는 뭐, 그밖엔?"
"음, 없는거 같네요. 전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우리 계약 조항에는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1. '을'은 '갑'의 연락이면 무조건 와야한다.
2. '을'은 '갑'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3. '갑'은 12월 31일에 '을'의 통장에 연봉을 준다.
4. 윗 내용은 '갑'과 '을' 모두가 지켜야할 것.

+ 5. '갑'은 환자로 의사인 '을'의 말을 잘 들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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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1-30 22:50 | 조회 : 2,576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늦어서 진짜 죄송합니다아ㅠㅠ 그나저나 8화 댓글 하나하나 답변 못해드렸지만.. 사랑스럽고 귀여웠습니다...(궁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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