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의 전공

06. 나의 전공

나는 얼굴에 상처가 난 이하준씨를 집으로 들였다. 이하준씨는 내 집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소파에 앉아서 내가 구급상자를 가져올 때까지 Tv를 보며 기다린다.

"바닥에 앉아요. 치료하기 편하게."

가져온 구급상자를 열어 후시딘을 꺼내 그의 상처에 바르고 밴드는 다른 상처보다 심한 상처에 붙였다. 얼굴에 난 상처를 진찰하고 나니 복부가 생각났다.

"복부 한번 보게 옷 좀 올려봐요."

예상한것과는 다르게 이하준씨는 순순히 옷을 올려준다. 감겨두었던 붕대를 풀어 수술 자국이 남아있는 복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빨리 회복하시네요."
"누가 챙겨준 약이랑 현미, 버섯 덕분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한 그였지만, 나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디 아픈가?

"다 봤음 말해주시죠? 민망한데."
"아, 죄송합니다. 내리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이사람 직업이 대체 뭘까. 연 5000씩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아선 돈을 버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칼도 맞고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부를 수술하면서 본 결과 그의 딴딴한 몸에는 칼자국과 한두 개의 총알 자국, 피멍들로 가득했다.

"정체가..뭐예요."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요. 알면 다칠 수 있습니다.."
"다쳐오는건 그쪽인데 제가 왜 다칩니까."

그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체가 뭔지 안 알려주실.."
"내가 알려줄 이유도 없을거 같은데."
"아니죠. 계약관계니까 서로에 대해 알아야죠."

이하준씨는 대답하지 않고 작별인사만 건넨 후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내 옆에 남은 구급상자 뚜껑을 닫고선 속으로 이하준씨의 욕을 하며 병원으로 돌아왔다.

"강선생님, 저녁 드셔야죠."
"나는 저녁 안 먹을겁니다. 맛있게 먹고 오세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진료실 의자에 앉아 환자분들 차트를 천천히 읽으머 넘기던 중,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었던 휴대폰이 생각나 차트를 책상에 두고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휴대폰 잠금화면에는 부재중 9개가 와있었다. 전부 다 이하준씨의 전화번호였다. 통화기록에 들어가 부재중을 없앤 후 무음이 아닌 소리로 바꾸었다. 나는 밖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가서 오늘 약을 먹은 환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저녁 안 먹냐."
"선배님? 흉부외과까지 무슨 일이세요."

날 부른 사람은 신경외과 선배님이셨다. 흉부외과에는 무슨 일로 내려오신거지.

"이사장님께서 너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저에게요?"
"지방에 이사장님 친척이 계시는데 건강이 악화되셨대."
"근데요."
"외과 말고도 내과도 잘하잖아. 원래 내과의사였고. 이사장님 친척 진찰 좀 하고 와라. 다음 수술도 없더만."

환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의사를 자신의 개인 이유로 쓸려고하는 행동이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신경외과 선배님은 간호사와 동료 의사에게 미리 말해뒀으니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된다고 말한다. 난 선배님께 인사를 하고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사장실 앞에는 내가 올거라고 예상한 듯, 비서가 문을 열어줬다.

"이사장님."
"차 마시면서 얘기 나누는게 어떤가?"

난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사장님 맞은편에 앉아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차를 조심히 한모금 마시고 찻잔을 유리탁자 위에 올렸다.

"절 내과에서 외과로 옮기는 거까지만 참고 있는 겁니다. 그뒤로는 못 참습니다."

사실 나는 외과가 아닌 내과의사였다. 환자들의 질병을 알아내고 환자들에게 상담을 하는 의사였다. 하지만 단 한사람때문에 외과로 바뀌었다.

이사장님의 아들이 내과의사로 스툰병원에 취직을 하였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두개 다 전공한 나를 외과로 쫒아냈다.

"강선생."
"네."
"누가 가달라고 부탁했나? 강선생, 동생이 있는 병원 지원해주는게 어딘지 아나. 우리 병원일세."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난 차를 다 마시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왔다. 김간호사는 선배님을 통해 들었는지 밤이니 조심히 다녀오라는 안부인사를 한다. 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난 운전석에 앉자마자 앞에 있는 핸들을 세게 쳤다. 지하 주차장에는 경적소리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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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1-26 21:55 | 조회 : 2,948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반성하는 의미로 내일(화) 오후 8 ~ 9시 쯤에 7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작가가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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