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 12

제 1장 - 12


삐빅-

지이이잉-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문이 열리자 등장한건 천호 박사님이었다.

"여기 계셨군요! 이야, 태블릿 동기화가 워낙 오래 결려서 말이죠. 응? 근데 왜 다들 절 그런 눈으로 보시는거죠?"

여자2가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들었다.

"왜? 왜냐고? 당신이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이런 씨X! 애한테 제어 가설 얘기한거 너라며? 어?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몰라?"
"잘....알...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딴짓을 해?"
"으으웁... 현아씨... 잠깐... 잠깐만..."

천호 박사님은 멱살을 잡혀 짤짤 흔들리며 내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
외면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 2의 이름이 현아였던가...

"자자, 쟤넨 저러라 두고 우리끼리 마저 해 볼까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무시한 안 선생님이 끊겼던 검사를 이어나갔다.

응?
그러고 보니...

"저..."
"뭐죠?"
"안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옆에 있던 여자 1에게 소곤소곤 물어보았다.

"그건 왜요?"

묘하게 표정이 굳으며 마찬가지로 소곤소곤 이유를 묻는 여자 1 이었다.

"아니... 겉모습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시는데 그... 천호 박사님한테도 그렇고 연구원님들한테도 하대를 하시는게, 신기해서요."

겉모습으로는 천호 박사보다는 최소 5살은 어려보이고 연구원들과도 동갑 정도로 보이는 안 선생님이었다.

"...안 박사님이 능력도 능력이지만 천호 박사님 대학 선배라서 그렇다. 우리 선배기도 하고. 우리보다 급이 높으셔서도 그렇지."

옆에서 대화를 들었는지 무뚝뚝한 남자 2가 대신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예?"

누가 누구 선배요?
천호 박사님이 그리 늙어보이는 얼굴은 아니지만 잘 쳐줘야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그... 그럼 안 선생님 나이...아니 연세가...?"

계속해서 물어보려는데 앞에 서 있던 여자 1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내 등이 서늘해지며 목에 독사와도 같은 느낌의 팔이 감겨왔다.

"날 빼고 무슨 재밌는 얘기들을 하고 있나요?"

고개를 돌리자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미소짓고 있는 안 선생님이 보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안 선생님은 맑게 웃으시며 말했다.

"여자의 나이는 묻는거 아니에요."


***


일련의 사건이 끝나고 검사가 재개되었다.

-우웨에에엑

...한쪽에서 봉투에 토하고 있는 천호 박사님은 빼고.

"흠흠. 자 아까 설명에 이어서 하자면 은하씨의 신체에는 부분적으로 그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고밀도의 차원 에너지가 동화되고 있습니다. 다행이 지금으로써는 안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안정화가 된 것인지, 앞으로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남자 1이 홀로그램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시면 팔과 다리의 근육에 특히 많은 양의 차원 에너지가 밀집되어 있고 그 동기화율도 평균 43% 로 은하씨의 신체에서 두뇌를 제외하면 두번째로 높습니다. 혹시 최근 신체를 사용하면서 느낀 위화감이 있나요?"

위화감이라.
생각나는 게 몇 개 있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운동을 잘하게 된것 같아요."

"운동이요?"

"네. 원래 운동신경이 없고 근력도 부족해서 몸 쓰는 일을 힘들어했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달리기도 잘하게 되고 덩크슛도 할 수 있게 되어서요."

"덩크슛?"

좀전에 천호 박사님을 KO 시켜놓고 연구에 동참하셔서 한참 내 말을 기록하던 여자 2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날 바라보았다.
'그 키에?' 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근데 사실인걸.

"음... 뛰는걸 보여드릴까요?"

남자 1이 대답했다.

"아 그건 이따 다른 신체능력과 함께 체육관으로 가서 측정해보죠. 지금 궁금한거는 은하 학생의 오른쪽 눈인데요, 좀전에 측정한 것으로는 생체의안 내의 뉴프라움 외에는 별다른 차원에너지가 검측되지 않아서요."

"아 그건, 은하학생. 지금은 다른 차원을 본다던가 하지 않는거죠? 그.. 귀안을 감고 있다고 해야하나? 으 이런말은 좀 오글거려서.."

안 선생님이 물어보신 대로 지금은 귀안을 감고있었다.

"음, 그럼 떠 볼까요?"

"아. 그건 이쪽으로."

다시금 남자 2가 날 캡슐로 데려가 눕혔다.
아무래도 차원에너지 측정검사는 여기서 해야 하는거 같다.

"하...."

캡슐 안에 누워 잠시 숨을 골랐다.
저번에 안보이게 한 뒤로 다시 활성화시키지 않았었다.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또 하나의 눈꺼풀을 찾았다.
감겨있을 그 눈거풀을.

...찾았다.

눈을 뜨자 내 눈 앞에 또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자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빛무리들로 이루어진 끝도없는 풀밭이 보였다.
완만한 언덕들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약간은 몽환적인 분위기.
위를 올려다보자 지구와는 다른 푸르고 붉은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이곳은... 다른 차원인걸까.'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저 유령을 보듯, 헛것을 보듯 뿌옅고 부정형이 대부분이었던 이미지가 아닌 뚜렸하고 명확한 이미지.
심지어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보는 게 아닌, 내 자신이 그 차원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문득, 시선이 저 멀리 수평선으로 향했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옮긴 것이 아닌,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필연적인 느낌에 바라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이곳에서 보일 정도면 그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다른 곳을 둘러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뚫어져라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


은하가 캡슐에 들어가고, 밖에서 모니터링 하는 연구원들을 바라보던 안유진은 자신 앞에 있는 모니터에 출력되는 그래프를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연구원들이 은하의 신체와 차원에너지의 흐름을 체크하고 있을 때, 그녀는 은하의 스트레스 수치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래프에서 스트레스 수치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왜 이러지?"

그녀는 재빨리 다른 연구원들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신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두뇌에도 역시 문제가 없었다.
차원 에너지의 흐름 역시 은하가 능력을 사용했는지 오른쪽 눈으로 모이고 있었다.

'모든게 예상대로인데...어째서지.'

그녀는, 안유진은 미칠듯한 불안함에 휩사였고, 그 감각은 시시각각 극대화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느낌을 받을 때에는 항상 무언가 오류가 있을 때 였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그때였다.

은하가 눈을 떴고.

초점이 없는 그의 오른 눈에서 금빛이 새어나옴과 동시에,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경고! 경고! 기기의 수용량 이상의 차원에너지의 흐름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을 비상 상태로 전환 후 폐쇠합니다!]

캡슐에서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은하의 스트레스 수치는 급격히 바닥을 쳤으며 전신 홀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은하의 오른쪽 눈에는 적색의 차원에너지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뉴 프라움 억제기 발동합니다.]

비상이 걸린 연구원들이 프로그램을 종료하려 했으나 이미 폐쇠된 시스템은 외부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았다.
NP양자컴퓨터가 사용된 시스템을 인간의 능력으로 해킹하기란 불가능했다.
급한 마음에 남자 2가 전력선을 절단해 보지만,

[전력이 차단되었습니다.비상 전력으로 충당합니다.]

들려오는 것은 비상 전력을 사용한다는 기계음뿐.

여자 1과 남자 1이 캡슐의 해치를 열어보려 하지만 굳게 잠긴 해치는 열리지 않았다.

[뉴 프라움 억제기 - 무효화]
[냉각수를 투입합니다]

취이이익-

캡슐 내부의 산소가 빠지며 은하의 발치부터 냉각수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안 박사는 캡슐의 크리스털 커버를 두드리며 은하를 깨우려 애썼다.

여전히 오른 눈에서 금빛을 내며 누워있는 은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상황은 점점 다급해져 갔고 연구원들이 하나 둘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안유진은 결코 캡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화기를 들어 내려쳐 보기도 하고 팔에 힘을 주어 해치를 당기기도 하며 갖은 수를 동원해 기기를 정지시키고 은하를 꺼내려 했지만, 놀리기라도하는 듯 캡슐은 멀쩡했다.

눈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다시 캡슐로 달려드려는 그녀를 누군가 막았다.

"비켜!"

자신을 잡는 손을 뿌리치며 다시 캡슐로 가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나와요! 야! 이수혁! 이리 와서 누나 좀 잡아!'"

누나?
그녀를 누나라 부를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남자 연구원에게 잡혀 뒤로 끌려가는 안유진의 눈에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잡혔다.

"....천호."

박천호의 손에는 처음 보는 기기가 들려 있었다.
길고 두꺼운게 마치 장난감총처럼 생긴...

...총?


"하하하하! 내가 이럴 줄 알고 차원에너지 무기 개발을 허가해 줬지! 일발 장전!"

마치 선견지명에 성공한 악당처럼 외치며 그는 자신의 오른 손에 있는 탁구공만한 크기의 구형의 탄을 왼손에 있는 접혀 있는 총의 뒤쪽에 집어넣고 총신을 바로 폈다.

겉에 있는 버튼을 몇 개 누른 그가 외쳤다.

"발사한다! 귀 막아!"

투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발사된 탄은 은하가 누워있는 캡슐의 하단부에 적중했다.
목표물에 닿은 총알은 순식간에 팽창했다가 총알이 닿은 부분의 반경 50센티 내 기기와 함께 소멸했다.
깨끗이 구형으로 소멸된 탄착지점을 보며 아연해진 안유진은 흘러나오는 냉각수를 보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와 연구원들은 재빨리 작동이 멈춘 캡슐의 해치를 열고 은하를 꺼냈다.

"은하학생! 은하야!"

어깨를 두드려 보고 흔들어 보지만 반응이 없었다.
급하게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자 약하긴 하지만 맥이 잡혔다.
잠시 뒤 다른 연구원이 부른 의료진이 유은하를 데려갔고, 박천호는...

"와... 이 무기 만들기 프로젝트는 폐기해야겠다. 너무 위험한데?"

라고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부서 하나를 갈아엎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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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23 09:07 | 조회 : 1,097 목록
작가의 말
처음

어쩌다 보니 양이 많아졌네요...ㅎ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으로 씨U 롤케이크를 먹었죠. 늘어가는 뱃살이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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