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대리인

- 54. 대리인

공작님을 만난 뒤부터 내 신경은 오로지 4명의 황자들에게 가있었다. 공작 말대로 민중들이 황실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다는 걸 증명하는 듯, 성 밖이 시끄러워졌다.

"준아, 내일부터 3일간 성에 우리 없을 거야."
"4명 다요?"
"응. 나랑 이안은 빈민가에 가볼 거고 유진은 새로 짓고 있는 평민 아카데미 공사를 보러 가볼 거고 윌은 국경에 가봐야 하고."

성에 혼자 남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내 옆에 누군가는 꼭 있어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쫓아가도 되는.."
"안돼. 빈민가는 알 수 없는 폭발에, 아카데미는 공사 중이고 더더욱 국경은 다른 제국과 마찰이 심한 곳이니까."
"3일 동안 나 혼자.. 뭐 하고 지내요.."
"미안해. 대신 3일 내로 돌아온다고 약속할게."

결국 다음날 황자들은 3개의 마차로 각각 가야 하는 곳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난 첫날째, 가보지 못한 성안 곳곳을 투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둘째 날, 날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잤다. 마지막 날, 그들이 오는 날이라 아침부터 일어나 성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3일 뒤에 온다던 황자들은 그날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사람은 공작, 로히트뿐이었다. 공작에게 들은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라 입을 떨어지지 않았다.

노아와 이안이 있는 빈민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그 둘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고, 그 폭발로 인해 하필 가까웠던 공사 중인 평민 아카데미 건물이 무너져 유진이 깔려 구출 중이며 윌은 성으로 돌아오던 중, 도적을 만나 기사 한 명만이 돌아왔지만, 그 또한 출혈이 심해 죽었다는 말이었다.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지만, 공작의 얼굴이 너무 어두웠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해요!! 동시에 4명이 전부!"
"제가 말씀드렸는데 잊으셨습니까. 황실에 맞서려는 세력이 등장하였다고."
"...."
"황자님들이 성에 안 계시니 현재 지금은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야 합니다. 당신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벨라는 무너질 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난 못해. 내가 어떻게 사벨라를 이끌어. 이 세계의 질서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공작은 현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는지 내 어깨를 잡으며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옆에서 도와줄 겁니다."
"..그..래도..나는."

난 공작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달려갔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해.."

그 뒤로 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셀라는 방에서만 있는 내가 걱정되는 눈치였다. 방에 스스로를 가둔지 3일째, 셀라는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와 내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끔했다.

"정신차리세요! 황자님들은 살아계실거라고요! 준님을 두고 죽으실 분들이 아니라는 거 준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지금 준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셀라. 난.. 못해. 사벨라를 이끌.."
"사벨라를 이끌어가시는건 공작님께 맡기고 준님은 황자님을 구할 방법을 찾으시면 되잖아요. 준님, 우리 이제 나가요. 밖에 준님을 믿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밖에는 공작뿐만이 아니라 로웰과 처음 보는 중년 남자가 서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담이라고 합니다. 선택하는 자,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백작, 늦게 정신차려서 죄송.."
"안 늦었습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테니 공작님과 다른 분들은 사벨라를 이끌어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건 황자들의 행방을 쫒아 찾는거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찾아야해.

공작을 통해 귀족 회의를 열었다. 평소의 귀족회의와는 다르게 백작부터가 아닌 남작부터 참석했기때문에 많은 귀족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자신의 계급대로 서서 선택하는 자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문을 열리면서 아담, 로웰, 공작 그리고 내가 나타나자 귀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그제야 그들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황자님들께서.."
"빈민가를 관리하는건 후작아닙니까?"
"남작은 지금 날 모함하는건가?!"
"모함이라뇨. 의심입니다. 의심."

누구의 소행이다, 어느 누가 황자들의 행방을 찾을건가, 등등 이야기로 한순간에 질서를 잃은 귀족회의장은 소란만 가득해졌다.

결국 공작은 책상을 세게 치고서야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회의장을 둘러보고 난 자리에 일어나 모두에게 말했다.

"황제의 대리인은 내가 아닌 공작에게 맡기고 전 황자들의 행방을 쫒을겁니다."
"선택하는 자께서 그런 일을 왜!"
"그럼 당신들이 찾을건가요? 계속 들어보니까 서로 떠밀기 바빠보이는데. 내 말이 틀렸나?"

내 말에 조용했던 회의장이 더욱 조용해졌다. 난 그들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 될거 같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나를 뒤따라 로웰과 아담, 공작도 일어났다. 난 그들과 함께 내 방으로 돌아왔다.

"준님, 저도 따라겠습니다."
"...로웰."
"국경 주변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 도움이 될겁니다."
"아담.."
"그럼 성과 사벨라는 저에게 맡겨주시면 돌아오실때까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다들 고마워요. 그럼 내일 아침에 당장 떠나죠."

이때까진 황자들의 도움만 받고 지내왔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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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24 21:58 | 조회 : 1,95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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