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선택 하는 자

01. 선택 하는 자.

내 의식은 점점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후세계가 이런 곳인가.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네.. 혼자 이곳에. 아아, 죽어도 난 혼자구나.

(웅성웅성)

무슨 소리지? 사람 목소리가 들렸는데. 잘못 들은걸까? 하긴.. 이 어두운 곳에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러자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난 무작정 불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앞이 환해지면서 한 여인이 날 쳐다보다 놀란 얼굴로 누군가를 부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할아버지가 날 보며 말했다.

“선택 하는 자여, 드디어 깨어나셨습니까?!”

“.......”

선택 하는 자? 내가?? 선택을?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도 하기 전에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상하게 주변은 유럽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와 흔히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시녀들의 복장을 하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하얀 머리를 하고 계신 안경 쓴 할아버지까지.

“어서 황자님들께 알려드리도록!”

황자? 잠시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여긴 사후세계가 아니라 다른 세계인거 같아. 좋아. 여기까진 잘 이해했다고 치자. 그럼 난? 차에 치여서 죽었잖아. 근데 왜 내가 살아 있는 건데. 환생이라도 한거다? 환생인데 왜 갓난아기가 아니라 성인으로 환생 한건데? 그럼 원래 있던 세계의 나는? 이게 대체 뭐야. 아무나 좋으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려달란 말이야..!”

“..놀래라. 일어나자마자 활발하네.”

“이제 내 황비가 되는 거지?!”

“아니죠. 유진 형님, 제 황비입니다.”

뭐, 뭐야. 이 잘생긴 남자분들은? 황비? 무슨 소리지? 내가 황비라는 뜻이야? 정신없어.

“이름이 어떻게 되?”

“강준. 준이..이름인데.”

“음 준이? 특이한 이름이네. 소개할게 난 라이트 워커 노아야. 편하게 노아라고만 불러줘.”

“난 제 3의 황자! 라이트 워커 유진! 반가워. 내 미래의 황비! 우리 결혼식은 어떻게 할래?! 역시 화려한 게 좋지?!”

“전 제 4의 황자인 라이트 워커 윌레이스라고 합니다. 윌이라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라이트 뭐? 성이 어디고 이름이 어딘지 모르겠어. 쉽게 마지막에 말해준 게 이름이겠지?

새까만 밤을 연상케 하는 흑발과 금색 눈을 가진 남자가 노아.

벚꽃이 생각날 정도로 예쁜 분홍머리에 연한 하늘색 눈을 가진 남자가 유진.

새하얀 눈이 떠올릴 정도로 하얀 백발에 특이한 검정 눈을 가진 남자가 윌.

내 머릿속에는 이 사람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외웠다.

“준. 여긴 사벨라 제국이야.”

“사..벨라?”

“응. 신들이 사랑하는 제국인 사벨라.”

신들이 사랑하는 곳. 그래. 내가 여기로 환생한 이유는 신들의 장난인거였어. 그러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으로 왔지. 근데 어째서?

“잠, 잠시만요! 저는 죽었거든요? 신들의 장난으로 이곳으로 온 거 같으니까..원래 세계로”

“신들의 장난이든, 아니든 넌 이곳에 온 사실은 변하지 않아.”

맞는 말이다. 신들의 장난이든, 아니든 난 다른 세계로 떨어진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니까. 이렇게 빨리 내 처지를 인정하게 만든 사람은 노아라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내가 앉아 있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차근차근, 이곳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크게 3개의 제국이 있어. 신들이 사랑하는 제국 사벨라,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제국 클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빛을 많이 받는 신시아.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 노아 형님 일어나자마자 공부라니 최악이라고요!”

“그런가? 준이에게 음식을 가져다줘. 그럼 준아 밥 맛있게 먹고 쉬어.”

노아가 나가자 다른 사람들이 한명씩 나갔다. 넓은 방에 나 혼자라니. 방금 전까진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갑자기 휑하지니까 외롭다. 외롭다고? 그런가. 외로운 걸까? 차라리 좁았다면 덜 느껴질 텐데. 조금 뒤, 한 여인이 따뜻한 스프를 가져와 나에게 건네줬다.

"준님. 다 드셨다면 빈 그릇은 옆 탁자에 두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여인은 다시 나갔다. 스프 맛있네. 마음 편히 먹은 지 얼마나 된 거지? 아니. 편히 먹을 때가 있었나? 없었다. 항상 가족들과 먹었으니까. 눈치만 보느라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결국 항상 화장실에 들어가 속을 다 비우고 다시 책상에 앉는 공부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스프를 다 먹고 나서 잠든 건지 눈을 떠보니 해가 뜰 준비를 하고 있는 새벽이었다.

"발 시럽다.."

신발도 없는 나는 무턱대고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바닥을 걷다가 한 정원을 발견했다. 난 흙을 밞으며 정원으로 향했다. 다행인지 몰라도 흙에는 자갈이 없는 부드러운 흙이라 상처 없이 걸어갔다.

"장미 정원인가."

조금 더 들어가자 흰 의자가 있기에 망설임 없이 그곳에 앉아 해가 뜨는 걸 구경하며 생각에 빠졌다. 죽은 뒤에 이곳으로 떨어진 이유가 무엇을 선택하기에 여기로 온 걸까. 아까 그 황자들은 뭘까. 난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졸리다. 그렇게 잤는데 졸리다니. 다시 들어가서 잘까. 아, 오면서 느낀 건데 너무 넓다. 분명 돌아가도 길을 잃을 거야. 그냥 여기서 잘까. 자도 되는걸 까? 잤다고 나 쫓겨나면? 이곳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설마..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라는데 쫒아내지 않겠지."

돌아가다가 길을 잃을 바엔 그냥 여기서 자는 게 더 낫겠다. 난 조심히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자고 일어나면 병원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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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8-23 22:43 | 조회 : 3,08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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