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평범한 나
우리 집은 남들에게 지는걸 용서 하지 않은 부모님과 운동, 공부, 성격 모두가 뛰어난 형, 자기의 특성을 살려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 누나, 천재라고 불리고 있는 여동생까지. 그렇다고 대단한 집안도 아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나. 운동도 보통, 공부도 중상위권, 성격도 그럭저럭, 특성도 없는 난 우리 집안의 수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쪽지 시험 보지? 100점 알지? 너 형이나 동생 좀 봐. 쪽지 시험이라도 꼭 만점을”
듣기 싫다. 아니 들어도 항상 똑같은 말이라 안 들어도 상상이 다 간다.
‘형이나 동생을 보고 배워라.’,
‘그 둘은 쪽지 시험을 봐도 만점을 받아온다.’
차라리 날 포기하지. 날 버리지. 언제까지 나에게 보이지 않은 희망을 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형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다. 밖에 나가선 가족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그들. 평범한 내가 부끄럽다고 한다.
“강준.”
선생님 손에는 오전에 보았던 쪽지 시험의 점수가 적혀 있는 종이가 있다. 차례대로 부르고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른 선생님. 긴장하며 교탁 앞으로 섰다. 시험지도 받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님께서 실망하시겠다.”
그 뜻은 이번에도 만점이 아니라는 뜻. 아 최악이다. 이번에는 무슨 소리를 들을까. 이번에는 무슨 과목의 과외가 늘어날까. 자유시간이라도 있는 걸까. 무섭다. 아버지와 형, 누나, 동생 앞에서 혼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
“이게 뭐니?”
“오늘.. 본 쪽지 시험인..”
“그걸 몰라서 묻니?! 이 점수가 뭐냐고!!!”
이해되지 않는다. 나름 잘 봤다. 쪽지 시험이라도 수준은 모의고사와 같은 수학 쪽지 시험. 그 쪽지 시험에서 고작 2개 틀렸다. 그 정도면 잘한 편이다.
반 애들도 잘했다고 말해줬어요. 반에서 나보다 잘 본 애는 없어요. 어머니 한 번이라도 좋아요. 수고했다. 다음부터 더 열심히 해서 만점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해라. 이 두 마디만, 이 두 마디만 해주시면 안 되는 거예요?
“얘, 듣고 있는 거니?!”
“수고했다. 다음부터 잘 보라. 이 두 마디를 하시는 게 힘드세요?”
“...뭐?”
다 필요 없다. 여기까지 온거면 충분하다. 아니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수고했다.
“형도 그래.. 내가 모르는 문제를 알려달라고 하면 이것도 모른다며 왜 화를 내? 막내한테는 웃으면서 알려주면서? 누나도야. 누난 왜 나한테는 한 번도 옷 안 사줘? 왜 차별해? 막내 너도 마찬가지야. 왜 나한테는 오빠라고 안 불러? 왜! 난 남매에 안 끼어주는 거야?”
“강준!!!”
역시 아버지가 화나셨다. 우리 집에서 이런 큰소리를 내는 건 절대 못한다. 아니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어릴 적, 항상 맞았던 매를 가지고 나오셨다. 매를 든 아버지 손에는 힘줄이 아주 잘 보였다.
“아버지도.. 똑같아요. 왜 희망도 없는 저에게, 보이지 않은 희망을 보시려고 하세요? 그냥 포기 하시는 게 아버지에게도 저에게도 다 좋은 거잖아요!!”
너무 흥분한 건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끝내고도 몸을 떨었다. 진정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내 발언에 다들 놀란 건지 아님 어이가 없던 건지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아버지이었다.
“...그래 포기하마. 단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여보!!!”
끝까지 최악의 아버지다. 솔직히 사과라도 하실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보다.
“그래요.. 호족 파세요. 그쪽이 더 나을테니까!!!”
가방을 메고 뛰쳐나왔다. 그러자 뒤 따라 온 사람들은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와 형. 아무런 말없이 뛰어오는 누나와 동생. 웃긴다. 이제 와서. 앞에 횡단보도가 있다. 이러다가 잡힐 텐데. 깜박거리는 초록 불을 건넜다. 거의 도착할 쯤 빨간 불이 바뀌고 흰 승용차가 날 박았다.
최악이다. 이렇게 죽다니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죽는 거 나쁘지 않네. 힘겹게 눈을 뜨자 뒤 따라 왔던 가족들이 울면서 날 보고 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물, 한 번도 안기지 않았던 형의 품, 좌절하며 울고 있는 누나, 차에 박은 나보다 더 아프다는 얼굴을 하며 우는 동생..
“준아 엄마가 잘못했어..응?”
“형이.. 형이 숙제 도와줄게.. 그러니까.. 제발”
“누, 누나랑 명동에서 옷 사자..”
“오빠라고 부를게 흐으 내가 잘못했어 오빠아!!”
아아,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죽는 게 두려워지잖아. 사실 죽고 싶지 않다.
아버지랑 얘기 나누고 싶다.
어머니에게 칭찬 받고 싶다.
형 방에서 형의 도움을 받아 숙제 풀고 싶다.
누나와 단둘이 옷 사러 가고 싶다.
동생에게 오빠로 인정받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