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흔들리는(3)

"캬~ 술은 언제나 맛있네요. 히히히"

"아이고, 웃지 좀 마."

"히히히 왜요오? 선배덕에 오랜만에 고기에 술까지! 너무 좋은데?"

"어쭈? 은근슬쩍 말도 깐다?"

"히히"

여름의 긴 해도 그 꼬리를 감춘 저녁 8시 20분. 민호 선배와 나는 골목식당이라는 미성년자출입제한 식당에 있다. 식당 안 대부분의 식탁 위에는 소주와 맥주병들이 늘어져있었다. 그건 우리 식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안주로 시킨 불닭발을 집었다.

"너 근데 계속 그 차림으로 일 다닐거야?"

"으음.."

생각하는척 소리를 내지만 사실 입안에 들어있는 고기를 찝어넘기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이 고기는 혀를 마비시킬듯이 매웠고 입안 곳곳에 퍼져 고통스러움에 눈물이 찔끔거리게 만들었다.

"푸하! 매워! 매워! 으아! 으아악!"

"자."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민호 선배가 빈 잔에 쥬씨쿨을 가득 따라내밀었다. 급하게 음료를 입에 담자 바들바들 떨리던 연약한 점막이 진정되어감이 느껴졌다.

"우와! 죽는줄 알았어요!"

"이거 처음 먹어보는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는거야? 대답 안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거지?"

또 다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오른쪽 볼에 닿자 이번에는 묶어둔 고무줄을 풀어냈다. 그렇다. 지금 난 여장을 한 그대로 이곳에 앉아있었다. 굽슬거리는 가발이 씌워져있고 작업복의 가슴라인은 봉긋했다.

"히히 역시 선배에요. 단번에 알아맞췄어. 흐음~ 저, 별로에요?"

술 기운을 빌려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최대한 애교섞인 목소리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은 편에 앉은 민호 선배를 바라봤다. 순간 어두운 조명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듯한 착각을 느꼈다.

"으.. 별로이고 아니고가 중요한게 아니잖아."

"칫, 지금 저한텐 무~지하게 중요한건데"

"... 아무리 생각해도 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애가 왜 안 하던 짓을 하지? 다음주 나 어떻게 보려고 그래?"

"아~ 선배~ 그러지말고~ 제대로 답해줘요, 네? 저 어울려요? 여자같아요?"

이번에는 고개까지 살짝 기울였다. 사실 이토록 살짝, 실은 많이 쪽팔리지만 이러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선우시우.

그 싸가지가 게이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런짓까지는 안 할텐데!

오늘 그가 보인 이상행동들은 나의 비상경계경보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위해서 더 완벽히 여장할 필요성을 느꼈고 마침 연극부의 부원이 눈앞에 있으니 조언을 구하고싶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여장한건 완전히 잊어버려 지금 이꼴인 것도 있긴하지만.

이러한 나의 속마음을 모르는듯 민호 선배는 얼굴만 점점 붉어지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어떠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저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네?"

"하아"

결국 그의 입에서 한숨같은 소리가 터져나오며 그는 고개를 숙였다. 짙은 브라운색의 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윤기있게 반짝거렸다. 머리카락은 그가 얼굴을 살짝 들자 거기에 맞춰 찰랑거렸다.

"그게 왜 중요한거야?"

선배! 사실은 말이죠, 제가 외근나가는 곳의 집주인이 게이래요! 거기다 그 싸가지 어머니는 제가 여잔줄 알고 고용했다그러시고! 그런데 제가 '전 남자에요.' 그럴수도 없잖아요!

이렇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선우시우의 개인적인 부분을 알리는건 아닌것 같아 망설일수밖에 없었다.

"음.. 그게 제가 여자인줄 알고 고용된거라 들키면 잘릴까봐요."

그래. 이정도만 하자.

"그냥 그 일 안 하면 안돼? 꼭 그렇게 해서라도 해야돼?"

"사장님 부탁도 있으셨고 저도 이번에 많이 벌어놓고 편하게 학교다니고 싶어서요.."

"나는 네가 그 집에 가는게 신경쓰여. 마음에 안 든다고.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가지마."

민호 선배가 평소와는 사뭇다르게 딱딱한 목소리로 단호히 말을 하고 자신의 술잔에 채워져있던 소주를 집어 마셨다.

"선배... 그렇게 안 어울려요? 선배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정도로 제가 여자 안 같아요? 안 어울린다고 하면 제가 상처받을까봐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거에요?"

뱃속으로 들이부은 술에 취하긴 했는지 민호 선배의 세심한 배려(?)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야! 사실 안 어울리는게 아니라 너무 잘 어울리는게 문제라고!"

"네?"

"하여간 내가 너를 어떻게 이기겠어. 너 진짜 여자같아. 너무 귀엽다고."

가라앉았던 열기가 다시 오른듯 민호 선배의 볼은 다시 빨갛게 물들어있었고 예상치 못한 '귀엽다'는 말을 들은 나도 쑥쓰러움에 귀까지 열이 오르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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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8-22 20:36 | 조회 : 1,589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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