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흔들리는(1)

"지호야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민호 선배가 눈 앞에서 막대사탕을 이리저리 흔들고있었다.

"아니에요. 요새 외근나가는게 피곤해서 정신을 못 차리나봐요."

"흐음. 하긴 너 거기서 6시까지있는다며? 피곤하긴하겠다. 근데 매일 가면 할게 있긴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눈치보이는것때문에 피곤한것같아요. 하하"

나는 여전히 선우시우의 집을 주말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가고있다. 본래도 깨끗했던 집인데다가 매일 몇시간을 쓸고 닦으면 정말 할 일이 얼마없었다. 그렇다고 놀수도없는 노릇이고. 요즘 내 블랙리스트 1순위에 올라있는 선우시우는 거실 쇼파에 주구장창 앉아 내가 움직이는걸 보고있다. 그러니 안 피곤할리가.

"하아.."

"어이구, 우리 지호 많이 힘들구나? 그러지말고 오랜만에 저녁도 같이 먹고 술도 한잔할까?"

민호 선배가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에 팔을 둘러왔다. 그는 팀원들이 힘들어해도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늘 웃으며 다독이는 역할을 했었다. 지금도 특유의 눈웃음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있었다.

"좋아요. 오랜만에 골목길 한번 가죠."

"좋아, 좋아. 자. 그럼 저녁때까지 이거 먹고 힘내고있어."

그가 어깨동무를 풀고서는 손에 쥐고 흔들었던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아이같은 얼굴을 보고있자니 이 사람이 정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잘 먹을게요."

"그래. 마치고 연락해."

민호 선배는 복도를 뛰어가다 말고 다시 뒤돌아 손을 흘들었다.

"정말 발랄한 형이야."

부스럭거리며 비닐포장을 벗겨낸 사탕은 상큼한 레몬맛이었다.

"츕, 이것도 나름 맛있네."

달달한 사탕때문인지, 정신없이 해맑은 민호 선배 덕분인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있었다.

*

"오늘은 또 뭘한다.."

집 전체의 커튼과 이불을 바꾼다는 명목으로 행했던 빨래가 끝난지도 일주일이 넘었었다. 그 후로 선우시우는 특별히 시키는 일이 없이 늘 모든 공간이 한 눈에 보이는 거실에 누워 나의 움직임을 보곤했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난후부터 그런 행동들은 유독 더 신경쓰였으나 시우는 관찰하는 것 외에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지않았다. 단지 그 눈빛이 예리하게 느껴져 꼭 감시받는 느낌이 들뿐이었다.

"할 일이 없으면 방에 들어가서 쉬지 왜 늘 밖에 나와있는거야."

"왔어?"

너무 자연스럽게 '왔어?' 라니. 누가보면 엄청 친한 친구사인줄 알겠네.

오늘도 쇼파에 눕듯이 기대어 있던 선우시우가 몸을 일으켜 나를 봐왔다.

"응."

"오늘 저녁으로 먹고싶은거 있어?"

청소라는 본래의 업무가 끝나고 나면 시우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의 어머니 윤여사의 강압(?)과 내가 여자라 오해에서 생겨난 일이었다.

윤여사가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의도치않게 사기를 당한건데.

"아, 나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여기서 안 먹어."

"그래..? 알았어."

얼굴이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낮아져 순간 그가 무섭게 변한듯했다. 시우는 큰 키와 운동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몸과 함께 매서운 눈빛으로 인해 선듯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기분이 안 좋아졌나? 아니면 또 지난번처럼 아무것도 아닌데 나 혼자 오해하는건가? 혼자 지레짐작일까 말도 못 붙이겠네.

"그럼 난 청소하러 가볼게.."

알수없는 불안함을 느끼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고싶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시우는 쇼파에서, 서재에서, 복도에서 나를 따라다니며(본인은 아닌척 딴짓을 하긴했지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왜 저러는거야? 나랑 밥 못 먹는거 때문에 저러는건 아닐거아니야?

복도 청소 중 참다 못한 내가 갑자기 몸을 돌리자 빤히 나를 보고있던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 당황한듯 보였다.

"너 아까부터 왜 그래?"

7
이번 화 신고 2018-08-16 20:21 | 조회 : 1,545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사탕은 레몬 맛이죠.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