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늑대의 진실(4)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는듯이 톡톡 소파를 치고있는 시우는 '니가 여기 오지 않으면 잡아먹어버릴테다.'라는 듯이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있었다.

"오전에 다른데 일하다와서 옷 더러운데?"

"괜찮아. 앉아."

내가 안 괜찮아! 여기 청소 내가 한다고! 뭣보다 가까워! 무섭다고! 이 집이 얼마나 큰데 꼭 거기, 네 옆에 앉아야해?

시우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난 후 아무렇지않았던 거리가 신경쓰이는 거리가 되었다. 결국 시우가 가리킨 곳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엉덩이만 겨우 붙여 앉았다.

"커튼이랑 이불 좀 골라줘."

"내가?"

"어. 넌 여자니까 이런 감각은 나보다 좋을 거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일단 난 남자라고.

그에게서 넘겨받은 태블릿에는 수많은 디자인의 커튼이 있었다. 하나를 터치해 들어가자 원단부터 자수 모양까지 디테일한 정보들이 펼쳐졌다. 일단 일이니까하고 넘겨받은 태블릿을 보다보니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인지 빠져들었다. 그렇게 커튼 고르는데 집중하느라 시우가 옆에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 했다.

"이상하지?"

"응?"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그의 날카로워 보이던 눈매가 한 없이 부드러워진듯한 착각이 들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었다.

"너말이야. 나 본래 여자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근데 넌 편하달까.. 마음에 든달까.. 여튼 그래. 그러니 만난지 며칠밖에 안된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했겠지."

안돼! 안돼! 안된다고! 여잔데 왜 마음에 드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자 시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쿡쿡쿡 걱정마, 여동생? 누나? 같은 감정인거니까. 자, 어서 커튼 골라줘."

어, 웃었다. 매일 6시간이 넘는 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내며 얼굴을 마주보고 한끼는 함께 밥을 먹었지만 지금처럼 웃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웃기도 하는구나. 아.. 눈이 접히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네.

애쉬 그레이의 베이비펌이 드디어 효과를 보고있었다. 잡아먹을듯이 날카롭던 눈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머리가 웃는 얼굴에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뭐랄까.. 진짜 강아지같달까.. 부들부들할것같아.

저도 모르게 손은 시우의 복슬한 머리 위에 얹혀졌다.

"너 뭐해?"

"어?"

미쳤어! 이지호! 정신을 놓아도 어떻게 여기서 정신을 놔? 쟤 머리를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야!

"머, 먼지가 붙었길래! 미안. 커튼 떼내고 한다고 먼지가 많이 날아다니나봐. 하,하하하"

급히 시우의 머리에 얹었던 손을 빼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굳은 뒤였다. 반달처럼 접혔던 눈은 이전보다 더 사나워졌고 환하게 웃던 입도 꾹 다물어진채였다.

망했다. 화난것같은데. 어쩌지.

고개를 숙이고 태블릿을 보는척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앉아있는 쇼파가 가시방석같았고 목이 타는듯했다.

"이거 어때?"

침묵이 길어지며 무거운 공기에 질식할듯함을 참지 못하고 아무거나 가리키며 태블릿을 그에게 내밀었다. 다행히도 시우는 태블릿을 받아들고 선택한 커튼을 살폈다.

"저기.. 갑자기 머리 만져서 미안. 네가 그렇게 싫어할줄은 몰랐어."

이럴때는 피하지말고 빠른 사과가 답이지.

무릎에 얹힌 손은 긴장으로인해 주먹이 쥐어졌다.

"어? 아닌데?"

뜻밖의 대답에 긴장이 풀리며 대상이 모호한 화가났다.

그럼 웃어야지! 왜 얼굴을 굳히고있냐고. 괜히 혼자 쫄았잖아! 쪽팔려!

"아, 그래. 하하하"

저 자식은 안 웃으면 늘 표정도 같고 웬지모를 압박감도 있어서 무섭단말이지.

"흠.. 이건 어느 방에 달거야?"

"어? 아! 저쪽에 손님방이 어떨까해."

*

"하.. 힘들었다. 오늘은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어."

빨래도 청소도 하지않고 오직 시우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을뿐인데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진듯했다.

"그 녀석때문에 괜히 긴장해서 그래! 으-"

침대 위로 뻗어버린 몸을 꿈틀이다 주먹을 쥐었다.

"부드러웠는데.. 진짜 강아지같았어.."

말아쥔 주먹을 펴자 손가락 사이로 선풍기 바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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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8-13 20:47 | 조회 : 1,418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비축은 없고 이대로가다간 20화내로 완결은 못 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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