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늑대의 진실(3)

열린 문틈으로 무표정한 시우가 서있었다. 나는 다른 여자와 치정싸움으로 머리채를 잡고 혈투라도 벌인듯한 꼬라지였고 그는 그런 나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저게! 열지 말랬는데!

"아, 미안. 6시 다 됐는데 안 나오길래."

"미안하면 문이나 다시 닫지?"

그제야 활짝 열어젖혔던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아.. 혹시 눈치챈건 아니겠지? 가발이 삐뚤어졌다거나.. 가슴이 올라갔다거나..

긴장되는 심정으로 머리를 더듬어봤지만 핀으로 고정해놓은덕에 잘 붙어있었다. 다만 이리저리 흔들린 탓에 어디 산에 살다온 사람같았을뿐. 손을 내려 브라의 위치를 조정하려할때였다. 문 밖에 계속 서있었던 건지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마, 넌 내 취향도 아니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으로 가져갔던 손이 멈추었다.

알아! 안다고! 그리고 너도 내 취향아니거든!

뜬금없는 공격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때문인지, 흥분하여 혈압이 오른탓인지 심장이 뛰었다.

화가 나는데 가슴은 왜이리 쿵쾅거려? 냉정하게 저 싸가지에게 복수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나 게이야."

.

.

.

이건 또 무슨 씬박한 상황? 그러니까 계속 나한테 관심없다. 걱정마라던게.. 본인이 게이니까? 내가 여잔줄 아니까? ... 그럼 이게 더 위험한 상황아니니?! 이제 진짜로 걱정해야하는거 아니냐고!

'게이'라는 단어를 들은 내 귀를 의심하고싶었다. 그러나 온몸의 털들은 이미 오소소 돋아나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후... 지호야.. 괜찮아.. 들키지만 않으면 별일 없을거야. 맞아! 크크크 나도 자뻑이 심하네~ 쟤가 내가 남자인걸 알게된다 하더라도 날 좋아할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혼자 너무 나갔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시우가 수건을 들고 서있었다. 마치 주인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강아지같았다.

"자, 아까는 미안했어. 여자애들은 그런 모습 보여주는거 싫어하지? 갈아입을 옷은 이 집에 남자인 나 혼자 살아서 마땅한게 없어."

"괘, 괜찮아. 고마워."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수건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까 한 말.. 말인데.. 정말 게이라서 여자로는 불가능하니까 걱정마."

아니.. 계속 강조하는데.. 내가. 남자. 라고! 그러니까 이제부터 진짜 문제라고!

"으, 응.."

"가서 밥 먹어. 오늘도 윤여사가 요리사 불러서 한 상 차려뒀으니까."

의기소침하게 그를 뒤따라간 식탁에는 역시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일단 의자에 앉기는 했는데 도저히 시우가 신경쓰여 먹지를 못하겠다.

"어머니가 널 여기에 보낸 이유도 사실 내가 게이라서야. 가까이에 여자가 있으면 관심을 가질까 하신거겠지."

맛스럽게 보이던 음식들이 한 순간에 그 매력을 잃은 듯이 보였다.

"여사님도 알고 계셔?"

"어. 알아. 말씀드렸더니 한참 고민하시다 알겠다하셨어. 표면적으로나마 날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하신거지. 근데 속마음은 그게 아닌지 은근히 여자를 붙이고있어."

그게 이번엔 나구나.. 이게 진지해야할 장면이긴한데.. 왜 난 그때 여장을 해가지고!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나!

"그러니까 부담가지지말고 지내. 어머니한테는 내가 적당한때 말씀드려서 끝내도록할테니까."

*

"어쩌지."

어제에 이어 오늘도 평상에 걸터앉았다. 다른 점이라면 어제는 싸가지에게 화가 났고 오늘은 싸가지때문에 한숨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어쩌냐고."

일단은 여자인줄 알고있기에 관심이 없다지만 만약에 만에하나 남자인게 들킬수도 있지않나? 그럼 어쩌지?

점점 이러한 생각과 걱정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여자라고 관심없었던 대상이 남자가 된다고 한눈에 뿅♥하고 반하는 일이 일어날까?

*

"좋았어! 완벽해! 아자!"

커다란 대문 앞에 홀로 서서 잔뜩 기합을 넣었다. 오늘은 특별히 머리를 묶지 않았다. 절대 시우가 신경쓰인다거나 그래서 좀 더 여자같아 보이기 위해서 이런것이 아니다.

"어? 오늘은 문이 열려있네?"

언제나처럼 초인종을 누르려다 문이 열려있음을 발견하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커튼은 그냥 세탁업소에 맡겼어."

그럴거면 진작에 그러지 그랬냐! 내가 요 며칠간 그 망할 놈의 커튼이랑 이불빨래로 허리가 끊어지겠구만!

"이리와봐."

슬픔에 빠져있는데 낮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쭈뼛쭈뼛 시우가 앉은 쇼파 옆에 서자 그가 앉으라는 듯이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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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8-12 18:24 | 조회 : 1,47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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