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리메이크 #3

엘은 그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옳지! 자, 엄마한테 와볼까?"

걸음마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엘은 서툰 걸음으로 루오를 향해 걸어갔다.

곁에서 지켜보는 카를로도 엘의 눈 깜빡할 만한 성장에 혀를 내둘렀다. 아이의 성장을 볼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엊그제만 해도 기어다닌 걸로 기억하는데, 시간 참 빠르다.

"어마ㅡ!"

"잘했어요!!"

중간에 몇번 휘청거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조마조마했다. 무사히 루오에게 도착했을 땐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를로 울상으로 업무에 시달리러 갔을 때 엘은 호기심 많은 나이라 장난감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서툴지만 걸어다니면서 올라가지 못했던 곳도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엘은 전부터 좋아하던 카펫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슈우우우웅!!! 빠빠바빵!!!!!"

장난감을 이리저리 흔들며 자기 나름 효과음을 내는 것 같았다.
루오는 흐뭇하게 이를 바라보고 주변에 비눗방울을 퐁퐁 만들어주면 엘은 장난감으로 빠앙!! 소리를 내며 터뜨린다.(물론 입으로)

그럴 때마다 루오와 유모들은 서로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쓴다.






엘이 혼자서 재미있게 놀 때는 루오의 개인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마침 시녀 한명이 조용하게 다가와 속삭였다.


"공자님 앞으로 온 우편물입니다."


이럴 때 확인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못하니 시녀가 내밀어 준 은쟁반 위의 편지들을 하나 둘씩 꺼내보기 시작했다.
하나는 라오의 안부인사였고, 또하나는 황후의 티파티 초대장, 나머지 하나는 이브릴 백작부인의 주문한 드레스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담겨있었다.


루오는 그자리에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특기인 루오는 금방 익힌 필기체의 유려한 글씨로 읽기좋은 말을 적어갔다.
라오에겐 요즘 가족의 근황을, 백작부인에게는 감사인사를 전하고 황후의 티파티 초대장엔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썼다.


루오가 편지를 쓸 동안 엘은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상자나 서랍을 열어보기도 했다.
루오의 방인만큼 서랍을 열면 반짝이는 보석들의 장신구들이 한아름 쏟아져 나왔다.


엘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유난히 루오방을 좋아했다. 장난감들도 반짝거리는게 많은데 엄마껀 더 예쁘고 반짝였기 때문이다.


-드르륵!


서랍이 열리고 휘황찬란한 부채들을 가지런히 정리한 게 보였다.

"우와!!"

이제 제법 말을 할 수 있게된 엘은 엄마, 아빠 말고도 감탄사를 할 줄도 알았다.

부채들을 본 순간 눈이 뒤집힌 엘은 부채 사이를 해집기 시작했다.


"헤헤!"


그중 하나를 집어골랐는데 꽤나 고풍스럽고 화려한 부채였다.

검은 바탕에 붉은 꽃들과 함께 붉은 루비가 알알히 박혀있었고 손잡이에 와인색 매듭으로 이어진 새빨간 레드다이아가 검은 깃털과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었다.
부채의 끝부분(호)에는 홍색 털들이 풍성하게 자리잡아 눈길을 끌었다.


엘은 호 부분의 털을 쓰다듬으며 마냥 좋아했다. 어지간히 보드라운지 얼굴에 대고 비비기도 했다.

마침 주변에서 자고있던 티스가 눈을 뜨다 엘과 딱 마주쳤다. 엘에게 다가와 그르릉 거리며 몸을 비벼댔다.


"히히!!!"


하얀 털이 뿜뿜 뿜어져나왔다.
티스의 등도 쓰다듬어주며 부채의 털과 티스의 털을 비교하기도 했다.











오늘따라 루오는 은근 들떠보였다.
오랜만의 외출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로자리오를 만난 지도 꽤 됬기 때문이기도 했다.

에반의 아내인 로자리오는 황후가 된 뒤 루오와 만나면서 절친이 되었다. 둘은 또래 아이의 엄마이고 비슷한 유형의 남편(?)을 두었다는 것이 많이 친해진 계기가 되었다.




로자리오가 쌍둥이를 낳고, 루오가 엘라헤를 낳으면서 둘은 만날 기회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마침 엘도 혼자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쌍둥이도 대외적인 연회나 파티에 얼굴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컷기 때문에 로자리오는 이 시기를 노려 센스있게 루오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오랜만에 루오의 치장시간이 열렸다.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드레스는 어느걸 입으실래요?"

"화장은 어떻게 할까요?"


시녀들도 오랜만인 만큼 루오를 꾸밀 생각에 눈을 반짝거렸다. 루오는 하나하나 받아주며 드레스와 장식들을 골랐다.

황후의 티파티이니 만큼 가벼운 차림으로 갈 수는 없는 법미다. 로자리아와 단 둘일 때라면 모를까, 보는눈이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 더워지는 계절에 따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오픈숄더와 시원한 느낌을 더하는 푸른색 계열의 가벼운 디자인을 선택했다. 새하얀 쇄골이 훤히 드러나 훨씬 우아했다.
드레스 밑단엔 작은 크리스탈이 알알히 박혀있어 은은하게 반짝였다. 밑으로 갈수록 색깔이 짙어지는 원단이 더욱 빛나보였다.


머리는 시원시원하게 올려묶어 곱게 땋아 틀었다. 아찔한 목덜미가 카를로가 보면 기절할 듯 싶었다. 진주와 작은 꽃들로 장식하니 고급스런 느낌이 물씬 풍겼다.


구두는 이젠 익숙해진 높은 힐. 하이 오픈토로 앞이 살짝 뚫려있다. 새하얀 자태가 루오의 얇은 다리와 잘 어우러졌다.


포인트로 검은 초커와 은귀걸이를 달으니 그림이 더 살아났다.

시녀들은 속으로 자신들을 칭찬하고 루오의 아름다움을 더욱 찬양했다.






오늘은 엘라헤도 같이 가기로 했다. 파티의 인원들이 모두 아이가 있는 귀부인들이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따로 있었다.


"엄마아~!"


오늘따라 루오가 이쁜걸 아는지 뽀짝뽀짝 걸어와서 루오에게 안겼다.

엘도 루오 못지 않은 미형이였다. 카를로보다 루오를 닮은 엘은 걸음마를 땐 이후 하루가 다르게 예뻐졌다.

머리카락도 나고, 짙은 쌍꺼풀과 속눈썹이 벌써부터 완성형 미모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정하고 꾸미니 실로 바라 볼 수 없는 귀여움이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저 미소는 너무 치명적이다. 자라가면서 어딘가 카를로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엘! 오늘 처음으로 친구가 생기겠네?!"

"친구!!"


이제 또래 아이들과 놀 수 있을 만큼 자랐고, 예절교육도 조금씩 했기 때문에 타귀족들 앞에서 무례할 행동은 안할 것이다.


"엄마도 오늘 친구를 만나러 갈꺼야. 엘도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


이렇게 속삭이며 엘의 이마에 쪽, 입맞춰 주었다.






공작가의 새하얀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가는 길을 지났다.

엘은 처음보는 바깥이 신기한지 창문 앞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루오는 그런 엘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황궁에 도착할 때 즈음엔 엘도 지쳐 잠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엘라헤. 이제 도착했단다."


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미 멈춘 마차에서 엘을 깨웠다. 도착했다는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우와아아아!!"


자기네 집보다 화려한 황후궁의 정원은 로자리오의 이름에 맞게 화려한 장미가 활짝 피어있었다.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등등 색깔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심어서 그런지 더 화려해 보였다.


"히히!!"


엘은 곧바로 노란색 장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더니 자기 혼자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엘~! 엄마랑 같이가야지~"


루오 역시 다르지 않은지 함께 꽃을 보고 좋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오는 정신차리고 엘을 데리고 로자리오를 만나러 정원 끝의 유리온실로 향했다.










"루오 엘버스 공자님과 엘라헤 슈베르트 공자님 드십니다!"

시종의 우렁찬 말에 귀부인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꿇릴거 없는 루오는 엘과 손을 꼭 잡고 로자리오에게 향했다. 그녀의 물결치는 허니블론드는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제국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루오는 예를 표하며 로자리아 황후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와요, 엘버스 공자. 오늘 만나게되서 무척 기쁩니다. 오늘은 꼬마 손님도 함께 오셨네요?"

"네. 자, 엘. 인사해야지."

"어... 안녕하세요!"


어린아이 다운 귀여운 대답에 귀부인들은 녹아내렸다.


"안녕 아가? 난 로자리오라고 한단다. 가볍게 '로즈이모' 라 불러주면 고맙겠구나."

"네, 이모!"


해맑은 미소까지 동행한 대답에 로자리오까지 흘러내렸다.


"어머어머! 하하하!! 귀여운 아가구나. 자! 이곳에만 있으면 지루할테니 저기 내 아이들과 함께 놀려무나."


로자리오가 손으로 멀리 있는 두 아이들을 가르켰다. 누가봐도 그녀의 자식이라 말할 수 있는 그들은 그녀의 머리색을 똑닮은 허니블론드의 머리였다.

로자리오와 그들 중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주었다. 그리고 조심히 이리오렴의 손짓을 했고, 남은 여자아이와 함께 로자리오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어머니?"


친절하게 물은 것 같지만 일말의 표정변화 없이 무관심한 눈으로 로자리오에게 말을 건넸다. 로자리오는 이미 익숙한 듯 받아들이고 엘라헤를 간단히 소개했다.


"아서, 아델. 너희보다 2살 어린 슈베르트 공자란다."

"슈베르트요?"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여자아이, 아델이 놀란 눈으로 엘라헤를 쳐다보았다.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뵈어요, 황자, 황녀님. 루오 엘버스랍니다."

"엘버스 공자. 오랜만이야."


아델도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 엘버스 성을 가진 이는 단 하나밖에 없는 유명한 사람이였다. 슈베르트의 안주인이 바로 그였다.

루오는 상냥한 미소로 아서와 아델을 반겼다.


"너무 어릴 때 뵈어서 기억을 못하시려나요?"


확실히. 아서와 아델은 루오를 못 알아봤다. 루오는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엘라헤와 손을 꼭 맞잡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쌍둥이의 두 볼에 홍조가 떠올랐다.


"자, 엘라헤. 아서형이랑 아델누나한테 인사해야지."

"횽? 누냐?"


엘이 모르겠다는 듯 작은 손을 오물대는 입술에 대며 깜찍하게 얼굴을 갸웃 했다.

문제는 아서, 아델과 눈을 마주치며 그랬다는 것이다. 쌍둥이는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서네이스 유드리안이다."

"아델라이드 유드리안."


간단히 이름을 소개한 것이다.
엘라헤는 둘을 번갈아보고 빵싯빵싯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엘! 엘라헤 슈베르트 입니다!"


또 이 감정이다. 이걸 뭐라 하는건지 몰라 쌍둥이는 자꾸만 심장이 두근대는걸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엘라헤. 좋은 이름이네. 우리랑 같이 놀까?"

"맞아. 같이 놀아. 그럼 더 재밋어."


아서가 먼저 말하자 아델도 질 수 없다는 듯 엘라헤에게 손을 내밀었다. 엘라헤는 내밀어진 두 손을 빤히 보더니 이번엔 살짝 수줍은 듯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같이 놀아!"


두 볼이 발그레해지다 못해 입꼬리까지 올라간 쌍둥이는 엘라헤를 데리고 정원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로자리오와 루오는 단 둘이서 오붓한 수다를 나누었다. 로자리오는 단 둘이 된 순간 루오에게 못참겠다는 듯 와락 안겨들었다.


"이렇게 만난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루오?"

"그럼! 나도 너무 기뻐. 특히 엘이 생기고 나서 너무 행복해. 로즈는 요즘 어땟어?"


안겨든 로자리오를 함께 안아주며 물었다. 로자리오는 갑자기 울상이 되어선 루오에게 더욱 꼭 안겼다.


"흐아아~ 요즘 아서랑 아델이 나한테 너무 차가운거 있지? 파티에 와서도 한번도 나한테 안왔다니까.."

"이런.. 황족이니 엄마한테 좋은 모습 보일려고 피하는거 아니야? 벌써부터 어른스러웠는데 엘 앞에선 완전히 녹아내렸잖아."


루오의 말에 약간 수긍하는 느낌이였다.


"그건 그래... 네 말이 맞는걸까? 그래서 요즘 너무 속상해애~ 에반도 요즘 너무 바빠서 못만나고 있고..."

"하하하!! 로즈는 여전히 에반바라기구나?"

"그럼! 우리 자기가 얼마나 스윗한데!! 요즘 못만났지만..."


확실히, 그 바람둥이의 고삐를 확실히 잡을 수 있던 여자는 로자리오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한테 잘보일려고 무엇이는 다 할 수 있어. 엘은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아서랑 아델은 딱 그런 느낌이던걸?"

"아아아~ 안그래도 되는데ㅠㅠ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럴 지도 모르지. 나도모르게 카를로의 신경을 건드릴 때가 있는걸? 아이한테도 네 당연한 행동들이 로즈에게 잘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넣어줬을 수도 있어."

"아..."


로즈는 뭔가 짐작가는게 있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실은.. 몇달 전에 시아버님(선황제)을 뵛었거든... 아이들 앞이였는데 난 신분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썻었어.."

*황족의 권위는 황제 - 황태자(자녀) - 황후

"이런... 낮선 엄마가 엄해보였나봐."

루오는 역시나 라며 울상인 로즈를 다독였다.


"나중에 아서랑 아델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야. 유아기 시절엔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평소랑 같은 엄마를 보여주는거야."

"흑... 효과가 있을까?"

"로즈.. 어머니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해."


한참 로즈를 다독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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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29 14:13 | 조회 : 2,27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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