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안알려줄꺼면 말구요."

그대로 돌아서 유유히 제갈길을 가는 루오. 이곳엔 에반이 있으니 다른 조리실에서 요리해야지~ 하고 돌아섰다.

"잠깐!!"

"?"

진짜 신경질적이게 달라붙어오면서 제멋대로 놔주곤 또 달라붙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루오는 가장 상냥한 미소를 지어 돌아봤다.

"무슨일이시죠, 에.반.님?"

뒤에 고고히 빛나는 후광이 있으면서 곁의 그림자는 암흑이 따로없었다.

"큼큼.. 이거 참 내가 귀찮게했나본데?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겠어?"

"그대로 제갈길 가시는게 제겐 큰 행복이자 바람이랍니다. 자! 어서 황자님의 집인 아르벨 궁으로 돌아가세요!"

호호호- 하며 벌써부터 황후급 입번장을 자랑하는 루오의 말솜씨에 에반은 다시금 놀랐다.

고작 오메가의 습득능력이 이정도나 된단말인가. 어릴때 아카데미를 다녔다면 틀림없이 수재가 됫을 것이다.

다시 되돌아와서, 에반은 별로 쓰지않는 머리를 굴렸다.

"그래! 조만간 내 궁에 초대할께. 이러면 그 놈팡이도 모르겠지?"

"저택에 오는 모든 초대장과 문서는 그 놈팡이를 통해서 오게되있어요. 꿈깨요."

"놈팡이가 뭔지 아는군?"

"적어도 에반님보단 잘알죠."

"쳇."

질투질투

"에반 황태자님~~!"

애타게 여기로 도망온 에반을 열심히 찾는 사용인이 안쓰러워 졌다.

"그럼 나중에 아르벨로 초대할게! 그러면 언젠가 다시봐!"

이렇게 이상한 말을 남기고 아까 나가려던 창문밖으로 풀쩍! 뛰어나갔다.

"...난 상관 없는일... 일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원래 있던 조리실로 몸을 옮겼다.

***

-띵!

오븐에 넣었던 수플레가 다 구워져 띵! 하고 소리가 났다.

"보자보자~"

들뜬 마음으로 오븐문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머그컵 위로 부풀어오른 반죽과 노른하게 익은 그 위. 완전한 성공이였다.

"맛있겠다♡"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꺼내 위에 과일로 장식했다.

'따뜻하게 먹는게 맛있으니까 바로 카를로한테 갖다줘야지.'

머그컵에 따뜻한 블랙커피도 함께 접시에 예쁘게 담아 뽈뽈뽈 작은 보폭으로 카를로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너무 성급하게 가져간 나머지 앞치마도 안벗고 그냥 가버렸다.

"엇! 공자님의 약혼자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일로.."

루오를 단번에 알아본 경비병이 얼굴을 붉히며 눈을 못마주쳤다.

순수하게 이분 왜이러시지 하고 생각한 루오는 그보다 중요한 카를로의 간식을 챙겼다.

"카를로에게 직접 간식을 전해주러 왔어요. 혹시 아직도 회의중이신가요?"

"어, 어.. 크흠! 곧 있으면 끝날거라 생각하니 여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경비병이 가르킨 폭신한 의자에 앉아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준비한 간식이 식어갈 때 쯤, 커다란 문이 열렸다.

피로가 쌓여 꾸벅꾸벅 졸았던 루오는 언젠가부터 까무룩 고개를 뒤로 젖혀 잠에 빠져있었다.

"...무슨일이지?"

"흐에엑!!"

카를로가 무서운 눈빛으로 경비병에게 물었다.

"그, 그것이, 엘버스 공자님께서 공자님의 간식을 준비하셔서..."

여차저차 사정을 들은 카를로는 루오를 안아들었다.

옆에있던 시녀가 매너있게 간식이 담긴 접시를 받아들었다.

***

방으로 들어온 카를로는 앞치마를 친 상태의 루오를 일단 벗겼다. ((앞치마만:)

그러자 쇠골이 다 드러난 패인옷을 입은걸 아니 이성이 분질러질뻔했다. 그나마 긴 치마를 입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짧았었다면 오늘밤은 각방을 썻을지도 몰랐다.

아슬아슬하게 쥐어잡은 이성으로 루오의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가닥가닥 얼굴에 붙어있는거조차 너무 예뻐서 설뻔했다.

여기서 거근을 세우면 누가처리하리, 마음을 가다듬고 폭신한 이불과 배개를 쥐어줬다.

커다란 배개를 내미니 "웅.." 하는 소리와 함께 꼭 끌어안아 다리사이까지 끼워넣었다. 이불도 덮어주고 훤히 드러난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해주었다.

조용하게 진행된 작업은 그 카를로를 땀나게 만들었다.

조용히 잠든 루오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루오가 직접 만들었다는 수플레에 눈을 돌렸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달콤한 향기와 좋아하는 쌉싸롬한 커피의 향기가 코를 건드렸다.

근데 이런 디저트는 처음봤다.

아니, 달콤한 디저트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도 없는 나머지 그냥 모르는걸까? 포크없이 스푼만 준비되어있으니 그대로 퍼먹었다.

뜻밖에도 푹신한 머핀인 줄 알았던 디저트는 안쪽이 촉촉한 퐁당 오 쇼콜라같은 디저트였다.

언제였던가, 루오가 먹는 디저트 속에 초콜릿 빵 안에 녹아있는 초콜릿이 든걸 본적이 있다.

그것과 같은 종류일까, 아니 이건 초콜릿이 아니지만 뭐 그게 문젤까. 날 위해 만들어줬는데 다식어도 맛있는건 맛있는거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와 함께 별로 가져보지 못했던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졌다.

따뜻한 침대속에서 새근- 새근- 규칙적인 어린아이같은 숨소리, 그치만 달콤한 모습을 뿜어내는 소리는 곧 자장가가 되었다. 자장가는 잠을 못이뤄 옆에서 독서를 하던 카를로의 고개를 떨어뜨려 라벤더향이 방안에 퍼진것처럼 편한 잠을 이루게 해주었다.

***

잠에서 깬 루오는 침대옆 의자에서 불편하게 잠든 카를로를 보고 깜짝놀랬다.

그러고보니 난 언제 방으로 돌아왔더라?

"....아!"

곰곰히 생각하다가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곧 있으면 끝날거라 생각하니 여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경비병의 말을듣고 앉고나서 바로 잠들었었지..

편하게 해주려고 손수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더 불편하게 한거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그런지, 이불을 머리까지 푹 덮고 배개를 끌어안아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얼마 안가 시몬에게 '이불 감싸시고 뭐하시는겁니까?!' 하고 시원하게 야단맞았지만 말이다.

"....이게 뭐야 시몬?"

시몬이 건넨 작은 수프같은 물질은

"첸님이 주신 임산부에게 좋은 약이래요. 이렇게 마셔서 장차 어머니가 될 루오님을 위한거죠. 쭉! 들이키세요!"

"아아..."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첸이 줬다는 약을 들이켰다.

"으으... 써.."

"매일아침 이걸 드셔야해요!"

한소리 한 시몬은 루오에게 입힐 오늘의 평상복들을 가지고왔다.

순전히 시녀들의 취향인 푸른빛 란제리가 섞여있었지만 루오는 일단 빼버리고 다른것들부터 살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그런지 다 흰색계열밖에 없었다.

포인트가 어떻게 들어갔는지만 다를 뿐이였지만 란제리만 빼면 다 비슷하고 고만고만하게 보였다.

근데 딱 하나 눈에띄는게 있었다.

"이게 뭐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원피스에 달린 보석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거요? 토파즈에요. 색깔이 여러종류가 있어서 이렇게 가공해서 장식해요."

뾰족해 보이지만 뭉뚝한 보석이 곳곳에 달려 예뻤다.

"그럼 오늘은 이거입을게."

매일아침 끙끙대며 이상한 옷들 사이 정상을 찾아내려고 애썼던 루오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

하얀색 원피스는 그야말로 편한 존재였다.

밖에 나가면 춥다는게 단점이였지만 나가지도 못하게 단속해버리고, 에초에 나갈 생각도 없으니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오늘도 카를로 공자님께선 집무실에서 나오시질 않네요.."

"그러니까.."

심심하게 혼자서 책을 읽던 루오는 판타지소설 속에 주인공이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이 나와서 그런지 음악이 하고싶어졌다.

"그립다.."

시몬에게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속삭임이였다.

작가가 말을 안했었지만 전생, 루오가 다니던 대학은 음대였다.

전공은 바이올린으로 여러 콩쿠르에서 활약해 대학생치곤 꽤나 이름이 알려져있었다.

희대의 천재같은게 아닌 순수한 노력으로 손에 피가 날때까지 거의 하루 반이 바이올린 이였는데, 이곳에 와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켜고싶다...?"

'잠깐.'

루오의 사고회로가 돌아갔다.

'나 공작 될 사람의 약혼녀잖아.'

드디어 권력을 사용할 회로가.

'그럼 난 카를로가 허락하면 뭐든 할 수 있는거 아니야?'

그걸 이제야 깨달은게 용하다, 용해.

"시몬!!"

루오는 바로 시몬을 불러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네? 루오님 체격에 맞는 바이올린을요?"

"응응!"

"알겠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켜고싶... 이 아니라 배우고싶어서!!"

쓸데없는 질문을 줄이기 위해 책 내용까지 보여줬다.

"이거이거!! 나도 해보고싶어!"

"푸하핫!! 알겠습니다. 구해보죠."

카를로가 준 용돈(?)을 처음으로 자기 스스로 사용할 것을 결정했다.

"루오님.. 선생님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응?"

"그야.. 처음배우시는 거잖아요.."

"어... 괜찮을걸?"

왠만한 지식은 다 루오의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럼 지켜보기만 해도 괜찮은거죠?"

"응응!!"

안절부절 걱정하는 시몬을 제쳐두고 바이올린이 들은 케이스를 열었다.

"~~!"

아름다운 자태의 바이올린이 케이스 안에 쏙 들어가 누워있었다.

네개의 현도 새것인지 관리를 잘해서인 것인지 하얗고 깨끗한게 아름다웠다.

활을 또 어떻고, 들어올리자 쭉 뻗은 활이 어디로 휘어지지도 않고 울퉁불퉁하지도 않은게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광택이 너무나도 잘 나있어 루오와 함께 있으니 마치 제주인을 찾은 바이올린 같았다.

"마음에 드시나요?"

"응응!"

"그럼 켜는 방법을 알려드릴.."

시몬이 다 말하기도 전에 루오는 바이올린을 익숙한 듯 집어올려 목에 고정했다.

루오의 몸이라그런지 전생보다 약간 무게감이 있었지만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을 때가 생각나 더욱 두근두근거렸다.

"아, 잡는 방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있어요 라고 말하는듯 작은손의 긴 손가락으로 완벽하게 활을 잡았다.

그리고 익숙한 듯 튜닝을 시작했다.

빠바밤! 따란!

몇번 네 현 모두 연주하고나서 현의 조임을 고치더니 또다시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

바이올린 소리가 이렇게 좋은것일 줄이야. 돈이없어 값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던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 후..."

한번 심호흡 하고선 자세를 잡았다.

"아..."

굳이 말할 거 없이 허리는 약간 휘고, 팔꿈치는 들어 아름답게.

어렸을 때 선생님께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땐 이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생각나는걸까.

눈을 감고 현에 손끝을 올려 연주를 시작했다.

우울할 때마다 선생님께서 연주해주셨던 곡이다.

헨델 바이올린 소나타 4번

근육이 별로 없는지라 가는 바이올린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그런지 더 예쁜 소리가 되었다.

이곡을 켤때마다 처음엔 힘을 빼야한다고 그렇게나 들었는데 지금은 더 주는게 어렵다.

얇은 손가락이 어찌나 잘 움직이던지 시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밖에있던 경비병이 뭔일인가 문을 열고선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짤막하게 끝난 1분 라이브는 루오에게 안심감을 가져다주었다.

'힘은 부족하지만 기술을 그럭저럭 괜찮았어.'

근육이야 필요한 만큼 키우면 될 일이였다.

"어.."

"응?"

"어떻게!! 배우신 적 있는거에요?! 왜이렇게 잘해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루오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아차! 저도모르게 진지해져버리고 말았다.

"그, 그럼! 배운적 있지! 있지말고! 없으면 선생님을 부르지 말라고 했겠어?"

"오오!!!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황실에 들어가도 될 수준인데요?"

"그, 그런가?"

시몬의 온갖 칭찬을 얼버무리면서 아하하- 하고 웃는것밖에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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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9-09 18:23 | 조회 : 3,843 목록
작가의 말

드..드디어 극복했습니다!! 서비스로 분량을 더 넣어봤어요! https://youtu.be/5bxAvL0KKzA 여기서 루오가 연주한 바이올린곡을 따왔습니다. 1분 15초정도까지 나온데를 연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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