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선우 Ver.
몸과 바꾼 대학교 입학식. 고등학교 입학식만큼이나 지루하기 짝이 없고, 오늘 바로 OT를 한다는 문자가 날라왔다. OT 장소는 고깃집이었고, 오늘 드디어 선배를 볼 수 있다. 고등학교 때 호 되게 당하지 않았냐고?
몸과 바꾼 이유는 선배 때문이었다. 짝사랑한지 4년째일까. 선배도 나를 싫어할까 봐 말은 못 하겠고. 하지만 나와 같은 감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를 보기는커녕, 1학년들 사이에 끼이고 치이고 술잔을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밤이 되기까지 선배를 한 번도 못 봤다. 혹시나 휴학했다거나, 대학교 자퇴한 건 아닐까 싶었다.
같은 대학교인데 왜 못 보는 거야. 실망스럽게.
술잔이 비면 바로바로 채워지는, 아니 채워주는 동기들이 짜증 났다.
공 혁 Ver.
"야, 너 그거 들었냐?"
"뭘?"
나. 공 혁. 이 뭐 같은 친구 김정인이랑 동시 입학. 하자마자 OT. 귀찮네.
"여기, 3학년에 어마무시한 싸가지 있다던데. 성격도 드럽고 작년에 양다리를 몇 번이나 걸쳤는데 다 걸렸대."
"아, 그래."
전혀 관심 없어. 오로지 내가 관심 있는 건 끝나는 시간........
집이 최고.
"얘들아! 음.. 선우라고 했나? 얘랑 친한 얘 없어?"
딱 보니까, 자기 주량 모르고 신나게 마셔댄듯하네. 주량이 적은 거야 미치도록 마신 거야..? 꼭 OT 때 저런 얘들 한두 명씩 있더라.
"뭐야? 쟤 친구 없는 거 아니냐? 저렇게 취했는데."
"한 명은 있겠지."
그 한 명이 그 사람일 줄도 몰랐겠지.
"나. 선우 아는데."
지섭이었다.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짠 듯이 갑자기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되어버렸고, 지섭은 무안하다는 듯 들었던 팔을 머리 뒤통수를 향해 머리카락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을 반복했다. 선우를 붙잡고 있던 여자애는 벙 쪄 있다가 이내 선우라는 얘를 지섭한테 넘겨주었다.
도저히 선우가 서 있을 힘이 없었는지, 비틀비틀 거리자 지섭은 밖으로 데려가다 말고 선우를 들어 안아서 나갔다.
"야, 쟤 아니냐?"
"헐. 맞아."
"쟤, 이름 뭐냐?"
"수선우."
"아니, 3학년."
"신지섭?"
신지섭이라.. 벌써부터 1학년을 낚아채간 걸까? 아니면 진짜 아는 사이인 걸까? 3학년이 1학년 마시는 곳에는 왜 온 거지? 취업 준비 안 하나? 아니, 내가 이런 걸 왜 신경 쓰고 있어?
"한 대 피우고 온다."
으으, 춥다. 2월이라 날이 풀릴 리가 없겠지. 칙칙 하는 소리는 들리지만, 라이터는 안 켜진다.
'아 왜 안 켜지고 지랄이야. 버튼식으로 바꾸던지 해야지 그냥.'
그렇게 손이 빨개질 정도로 버튼을 밀어봤지만, 기름이 없나? 할 정도로 안 켜졌다. 그러자 문득 수선우와 신지섭이 생각났다. 그 둘은 어디로 갔을까? 신지섭은 지금 아무와 안 사귀고 있을까? 둘이 무슨 관계지?
사람의 호기심은 어디까지 뻗어나가는가. 정신 차리고 보면 나무가 뿌리 뻗어가듯 내 생각도 그렇게 이어져 가고 있었다.
"...한..다구요..."
응?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술집 옆 모퉁이었는데 수선우와 신지섭인듯 했다.
"선배.. 좋아한다구요.."
놀라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큰 물건이 아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어디까지 들어도 되는 걸까. 혹시 들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나도 선우 좋아해. 일 년밖에 안 만났지만 정말 친 동생 같고 좋아."
"동성적으로 좋아한다구요."
술은 깨고 저 소리 하는 거겠지? 굉장히 들어선 안될 걸 들은 기분이다. 들어보니까 옛날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그럼 수선우는 신지섭을 따라 대학을 들어온 건가?
"음, 형은 좀 생각해봐야겠는걸. 난 술 취한 사람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아."
"저, 안 채, 에베베베베. 안 취했어요."
"그럼 말 꼬이는 건 뭐야?"
"놀리지 말아요."
사이는 좋아 보이는데. 쌍방은 아니어 보인다. 나는 더 이상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아까운 담배를 버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만 피우고 온 거 맞냐?"
얜 눈치가 정말 빠르다. 그래서 싫고, 그래서 좋다.
"몰라, 이 새끼야."
"지가 나갔다 왔으면서 모른대. 다시 나가라?"
"아 왜 염병이야. 니가 나가든가."
"이것 봐라..?"
짜증난다. 그냥 모든 게 다 거슬려. 담배도 못 피우고 돌아왔는데, 엉겨붙는 여자들 때문에 더 싫다. 그냥 집이나 갈까 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려 더 짜증났다. 최대한 표정을 구긴 채 가게 밖으로 나왔다.
거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