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깔짝깔짝

수선우 Ver.

고1 겨울,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선배를 또 떠나보내야 했던 날이었다. 약속한 대로 선배와의 이별을 뒤로 밀어낸 채 정수에게 갔다. 뒤처리를 하고, 뒤풀이를 하며 허전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뒤풀이를 끝나고 정수와 같은 길로 가는데,

"너, 부장 선배 좋아했지."

"..?"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과 불안감을 감싸 안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쩔건데?"

"그래? 그럴 줄 알았으면 팍팍 밀어주는 건데. 눈치가 없어서 이제서야 알게됐네. 아쉽다. 졸업했잖아."

"...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설마, 아직도 좋아해?"

"아....마도?"

이 말을 뒤로한 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정수도 말문이 막힌 듯 우리는 그렇게 방학을 맞이했다.

개학하고 내가 제일 후회하는 건. 그날 정수에게 지섭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려버린 것. 내 무덤을 스스로 판 것이나 다름없는 일.

이라고 깨닫게 돼버린 건 괴롭힘을 당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처음에는 왜 괴롭히는건지, 내가 반에 왕따라는 것이 돼버린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부 일을 하며 정수와 마주칠 때마다 날 은근슬쩍 피해버리는 정수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가면 수군거리는 반 아이들과, 생판 나와 말을 한 번 섞지 않았던 아이들. 그 무리 속에 끼어 같이 눈치 주는 정수.

그리고 나는 방송부를 탈퇴하였다.

처음엔 발 걸기부터 시작해서 책 훔쳐 가기,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위에서 쳐다보기, 책상 뒤집어 놓기 등등 점점 강도가 심해지는 장난을 걸었다.

이걸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2학년 중반. 자해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깨진 샤프 플라스틱 조각으로 손등을 그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깨진 샤프 플라스틱 조각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다 손목을 그었다. 얇게 그어지는 빨간 선이 나를 안정케했다.

어느 날 서랍에서 책을 꺼내다 서랍 속에서 커터 칼 날 심이 나왔다. 손가락만 살짝살짝 베여서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다만, 손 씻을 때 손이 아린 것 빼곤.

수업을 하다 문득, 칼로 그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손목에는 빨간 줄이 그였으며 팔로 흘러내리는 피를 구경하면 가끔 선배가 떠올랐다.

"야, 좋게 끝나고 싶으면 창고로 와라ㅋㅋ"

멍 때리는 나에게 날라온 포스트잇 하나. 애초에 무엇을 시작했던 건지. 끝낼 것은 있었던 건지.

그렇게 나는 학교폭력이라는 것을 당했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창고에서 소리 나는 것을 누가 신고 한건지, 다행히 선생님께 발각되어서 정학을 먹거나 전학을 갔지만,

이미 당한 후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 2학년 생활을 지냈다.

아직도 정수랑은 어색하고 말 안 하지만,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대학입시로 한창 바쁜 3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정말이나 끔찍했다.

"선우야. 좋은 대학 가고 싶지 않아?"

"아.. 네, 당연히 가고 싶죠.. 제가 희망하는 대학교가 있는데 꼭 지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뜸들였다.

"대학, 보내줄까? 선우, 작년에.. 선생님이 구해준 거 알지?"

"네?"

머릿속이 새 하얘졌다.

"선생님이랑 한 번 하면 최상위의 결과를 줄 수 있는데. 어때? 어차피 선우 대학 가면 한 번도 못 보니까 아쉽기도 하고.. 선생님이 많이 아끼는 거 알지? 한 번 약속하면 잘 지키잖아. 모두가 부러워하는 생기부와, 추천서. 교장선생님걸로 받아줄 수 있고. 물론 그 뒤로는 아는 척도 안 할게."

그렇게 3학년의 마지막을 담임 선생님에게 몸을 팔고 대학 가기 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선생님, 아니. 범죄자님

아직도 나는 몸 안속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나는 더러워.

4
이번 화 신고 2018-03-26 19:27 | 조회 : 1,366 목록
작가의 말
의혜.

적은 수의 댓글이지만 매일 보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댓글 보면 글 쓰고 싶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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