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우 Ver.
그때, 아저씨가 준 물건들 속에서 입학 안내서와 교복들이 나왔다. 학년은 1학년이었고, 교복은 적당히 맞았다.
막상 나 혼자 살며 학교에 다니려니 약간 무섭긴 했지만 새롭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겁이 없었나 싶기도 하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나 홀로 이불에 누워 잠을 청한다. 혼자 잔 적은 많았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자각한 채 혼자 자려니 좁은 집도 새삼 넓게 느껴진다.
그 집에서 혼자 자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잠만,
그 집?
그 집이 어디지?
여기는 우리 집이다. "우리 집"으로 칠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더 있던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기억을 잃어버린 건가? 병원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사고 전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혼란스러운 기억들 속에 이불과 뒤척이며 힘겹게 잠을 청했다.
"오늘 전학 온 수선우다. 1학년이라고 놀지 말고 너네도 이제 수능 공부해."
새 학기라 그런지 딱 어수선하다. 라는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리는 듯했다. 1교시, 2교시가 지나고 3교시도 지나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를 돌아다녀 보았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먼저 말을 못 걸겠는 건 비밀.
복도에 붙어있는 동아리 홍보지를 보며 "방송부원 모집" 이라는 홍보지 앞에 섰다.
"010 - XXXX - XXXX 학년, 반, 이름, 동기 써서 보내주세요. - 부장 신지섭"
모든 수업이 다 끝나고 나는 바로 복도로 달려가 연락처를 보며 문자를 넣었다.
"신청인원 미달로 자동 합격입니다. 1학년 방송부원들은 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에 방송부실로 모여주세요."
마침 내가 전학 온 날이 방송부원 모집 마지막 날이었다. 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야, 벌써 2학년 돼가네."
"그러게."
"내일 지섭 선배 졸업식 축하해주러 갈거냐?"
"당연한 거 아니야?"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어서 다행이다."
내 앞에서 조잘조잘대는 정수와 달리 나는 무덤덤했다. 그리고 강당에서 펼쳐지는 졸업식. 나는 그 뒤에 방송실에서 음향 조절이나 하고 있는 게 다였다. 빨리 지섭 선배한테 꽃다발 안겨드려야 하는데. 안절부절 못 하고 있자,
"뭐, 축하해줘야 할 사람 있나 봐? 내가 해줄 테니까 가봐."
"어?.. 아니야 끝나고 가면 되지."
"끝나고 가긴 무슨.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있지 말고 가라 할 때 가라. 올 때 메로나 하나 들고 오고."
"..고마워, 나 먼저 간다. 뒤처리는 나도 도울게."
나는 정수를 뒤로 한 채, 준비한 사탕이 박혀있는 꽃다발을 들고 선배를 찾으러 다녔다. 선배가 졸업식을 들을 사람이 아니기에, 몇 분 남지도 않은 졸업식 시간 속에 지섭 선배를 찾으려고 뛰고 또 뛰었다. 돌아다닐 곳은 거의 다 돌아다녀 본 것 같은데 선배가 안 보인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본관에 있는 방송실 문을 열었더니 지섭 선배가 보였다.
"어? 선우야? 졸업식이 끝난 건가? 이렇게 일찍 오고."
"아뇨..!? 10분 남았어요! 선배.. 졸업 축하드려요!"
"고마워, 나랑 일 년 동안 방송부 활동하느라 힘들었지, 수고했고, 나중에 놀러 올게."
"선배!"
좋아해요.
"응?"
좋아해요. 지섭 선배.
"안녕...히..가세요.."
"왜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그래. 내가 너무 죄지은 것 같잖아. 마지막은 웃자!"
"네..."
자꾸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괜스레 울컥했다.
선배,
선배라면 그 때
웃으면서 보낼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