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진혁의 집은 이름만 말해도 다 알아듣는 유명한 오피스텔에 있었다. 진혁의 부모님에게 최대한 정중하고 무해하게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손을 미리 모으고 있었지만 마중 나오는 것은 하윤의 허리에 닿을 것만 같은 커다란 개 한마리 뿐이었다.

"부모님은 두분 다 회사가셨어?"

하윤의 질문에 진혁은 갸우뚱 했다.

"부모님은 본가에 사시는데?"

"그럼 여기는......"

"내 자취집."

할말을 잃어 하윤은 멀뚱히 진혁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진혁이 잘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거대한 오피스텔 집을 오직 제 소유로 사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윤의 벙찐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지곤 진혁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앉아있던 개의 시선이 자신의 발을 향하자, 하윤은 눈치를 보았다.

"괜찮아. 안 물어."

"으음...."

"한번 쓰다듬어 볼래?"

"글쎄, 이렇게 큰개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하윤이 손을 뻗자, 커다란 개는 경계하는 것을 멈추고 배를 내밀었다. 하는 행동은 소형견과 다를 것이 없어 하윤은 푸흣- 하고 웃으며 배를 긁어주었다. 큰 개는 기분이 좋은지 헥헥댄다.

"이름이 뭐야?"

"철구."

"철궄, 큭.....푸흐흐흡-"

생긴 건 꼭 알랙산더 드 뭐시기 솰라솰라 하는 이름을 가질 것 같은 개가 '철구'란다. 하윤은 입을 가리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내뱉으며 서양느낌이 풀풀 나는 철구를 쓰다듬었다. 손에 닿는 털의 느낌이 부드러웠다.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아?"

"응?"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진혁을 보며 하윤은 저가 기분이 나쁜 것을 드러냈나 싶었다. 눈썹 사이가 뻐근하게 아픈 것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찡그리고 있었나 보다.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은데?"

"그럼 다행이네....."

머뭇거리다가 진혁은 작은 막대를 내민다. 특이하게 생긴 모양에 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싫어하고 피하려는 것은 알지만, 이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뭘?"

"아기, 혹시 모르니까 확인만 해봐."

하윤은 그제서야 진혁이 내미는 막대의 용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임신테스트기였다.

"그냥....... 안하면 안돼?"

"하윤아."

진혁의 목소리는 조금 단호해 졌다. 솔직하게 되짚어 보자면 진혁의 말에는 틀린게 하나도 없었다. 아기가 없으면 그만인 일이었지만, 하윤은 제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억지로 하윤의 손을 잡아 막대를 쥐어주는 진혁을 노려보려 했지만, 진혁의 얼굴만 보면 귀가 벌게지고 가슴이 두근거릴까봐 그러지 못했다.

하윤은 홀린 듯 막대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제 방보다도 큰 화장실에 감탄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하윤은 그냥 소변이 마렵지 않다며 화장실에서 나갈까 생각했지만, 진혁의 단호한 표정을 다시 한번 마주하기가 싫어, 바지를 내렸다.

"잇..."

소변검사할때의 기분이 들어 느낌이 이상했다. 묻히자 마자 테스트기의 네모칸을 확인했지만 어느 줄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거봐. 내가 아니랬잖아.'

속으로 투덜거리며 테스트기를 변기통 위에 올려놓고 찝찝한 손을 씻었다. 말끔히 손을 씻고 임신 테스트기를 집어들려고 하는 하윤의 손이 멈췄다. 변기통 위에 놓인 막대에는 붉은 선 두 줄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

입에서 터져나온 첫번째 말은 벙찐 신음소리였다.

"무....무슨.... 어?"

귀 고막이 꽉 막힌 듯한 기분에 하윤은 수건 거치대를 부여잡았다. 몸이 뒤틀리며 쓰러지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멍멍한 귓가에는 여자의 비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아악..."

귀를 막고 하윤은 주저앉았다. 하윤의 신음소리를 들었는지 진혁이 화장실로 달려와 하윤의 바르르 떨리는 몸을 안아들었다.

"하윤아, 괜찮아?"

진혁은 하윤의 상태를 확인하며 화장실을 벗어났다. 그는 변기통 위에 놓인 두 줄 그어진 막대를 힐끔 거렸다.

침대로 옮겨 눕히는 내내 하윤은 중얼거렸다.

"아....아니야....아니야..그건...."

"하윤아."

진혁의 다정한 부름에 곧이어 눈물까지 터뜨린다.

"고장난거야. 그거 고장난....."

끊임 없이 부정하고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하윤의 흩트러진 모습을 보며 진혁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윤에게 모든 것을 인정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하윤을 두고 가기도 싫었다.

"이거 마셔. 좀 나아질거야."

조금 진정되자, 진혁이 연한 갈색의 차를 들고왔다. 고소한 향내와는 다르게 물 맛과 별 다를게 없었지만 하윤은 뜨끈한 차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어떡하지..... 어떡해..."

"괜찮아, 내가 다 책임질게."

"......."

진혁이 자신의 페로몬을 푸는 것이 보였다. 그날과는 달리 자신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을 최대한 자아내는 듯 했다. 하윤은 심하게 뛰는 심장과 달달달 떨리는 손가락들이 숨을 들이쉬는 것 하나로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하윤의 눈에 의심과 불신의 눈빛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향기에 안심하며 진혁의 단단한 가슴에 안기자, 마주 안아준다. 진혁의 입술이 끊임없이 하윤의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한다.

가슴팍에 하윤은 머리를 대고 파고들었다.

쿵 쿵 쿵 쿵

하윤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하게 뛰는 것은 자신의 것 뿐만이 아닌 귓가에 닿아오는 가슴팍에서도 느껴졌다.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대신 진혁의 심장박동이 멍멍했던 귀를 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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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04 23:00 | 조회 : 5,011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벌써 10화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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