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이모네 가족이 여행에서 돌아오고 민채는 알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그리고 새학기는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윤과 진혁 사이에는 아무런 문자도 오가지 않았다.

"엄마 은규오빠한테서 문자왔어. 오빠 꿈 꾸면서 자래. 꺄아~ 어떡해."

"어서 자. 내일 개학이면서 어떻게 일어나려고."

이모가 핀잔을 놓자, 민채는 툴툴거리며 쇼파에서 일어난다. 손에 꼭 쥔 휴대폰도 함께다.

"하윤이 오빠도 깨어있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만 그래?"

민채가 하윤을 흘겨본다.

"하윤이는 일찍 일찍 잘 일어나잖아. 딴소리 말고 어여 들어가."

하윤은 민채가 방에 들어간 후에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낡의 책상 위에 엎어놓았던 자신의 휴대폰을 살폈다.

성환에게서 놀자고 온 문자 2통, 성환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1통, 그리고 금융 어쩌고 저쩌고하는 스팸 문자 1통이 와 있었다. 진혁의 연락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윤은 침대에 엎어져 눈을 감았다. 정작 자신은 먼저 연락하지 못하면서 진혁의 연락이 없는 것에 화가나는 자신이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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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윤!"

반에 들어서자, 방학동안의 이야기를 늘어 놓느라 시끄러운 교실의 모습이 보였다.

"바카아아아-"

하윤은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을 흘기며 자리를 옮겼다. 목소리의 범인은 송 준 이었다. 준은 독감 때문에 일본여행에 가지 못한다고 찡찡대더니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지금은 말끔히 나은 것 같았다.

"여행 잘 갔다 왔냐? 응?"

"너 없어서 더 재밌었는 듯."

하윤의 대답에 준은 우는 척을 하며 찡찡댔다. 제 딴에는 상처받았다는 둥, 너무하다는 둥 하는 말은 하윤이 건넨 일본식 초콜릿을 받은 후에야 멈추었다.

"서, 설마 우리 하윤이가 나를 위해!"

"누가 우리 하윤이야."

트집을 잡은 건 막 등교한 성환이었다. 감동에 날뛰는 준을 제지하는 모습이 익숙해보여 하윤은 하릴없이 웃었다. 이제야 자신이 원했던 일상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진혁을 만나기 전, 그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못내 즐겁고도 조금 아쉬웠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에게 방학 중 재미있었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수다를 떠는데에 집중하는 듯 했다. 하윤은 시끄럽고 웃음 가득한 분위기에 취하여 졸린 눈을 감았다.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더운 바람이 엎드린 하윤의 이마를 간질인다.

"하윤아 일어나 봐. 점심먹자."

하윤의 어깨를 흔든 사람은 성환이었다.

"벌써 점심이야?"

하윤은 4시간 꼬박 잠에 취한 자신이 우스워 작게 피식거린다. 급식실에서 성환과 함께 대강 밥을 챙겨먹고 들어온 매점에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먼저 가 매점 앞 식탁에 자리를 잡은 준이 보였다.

"자리 잡았어?"

"어... 오늘따라 사람 존나 몰려서 그늘있는 데는 못 잡았어."

준은 성환에게 미리 사둔 초코우유를 내밀었다. 오랫동안 그늘이 없는 자리에 놓여져 시원함을 잃었는지 맛을 본 성환이 얼굴을 찌뿌린다.

"하윤이는 이거."

준이 내민 것은 연두색의 메론빵이었다.

"너 메론 좋아하잖아."

"녹차 좋아하는데....."

"........."

성환과 하윤이 동시에 대답하자, 준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걍 먹어. 어차피 색은 비슷하잖아."

준의 말에 하윤은 다시 웃으며 메론 빵을 베어물었다. 성환은 아까부터 기분이 좋은지 자꾸만 웃는 하윤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 근데 너네 이 기사 봤냐?"

준은 갑자기 두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끌며 폰을 들이밀었다.

《국민 여그룹 '블루데일리'의 리더 프림, 스폰서 논란과 CS엔터테인먼트의 해명》-강지영기자

《'블루데일리'의 프림, 사실은 오메가 였다?》-정주운기자

순식간에 하늘을 날고 있던 하윤의 심장이 추락하는 듯 했다. 목구멍을 타던 메론빵이 목에 걸린 듯 켁켁거리며 기침했다.

"근데 이거 하윤이 너가 좋아하는 아이돌 아니냐?"

하윤은 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너 얘네 좋아했잖아. 막 앨범도 사고.."

"야 준, 너 얼굴에 뭐 묻었어."

준의 말을 끊은 것은 성환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더듬는 준에게 있지도 않은 무언가 묻었다고 거짓말을 친다. 하윤은 그 사이에 빠르게 뛰었던 심장을 부여잡았다.

종례가 끝난 후, 성환은 준과 하윤에게 먼저 집에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검도부 시합 연습이 잡혀 체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환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준은 말이 많아 하윤이 말장구만 쳐도 이야기를 알아서 옮겨갔다. 다행히 논란이 된 '블루데일리'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끼익-

한참 교문을 나가던 도중 차 한대가 그들 앞에 멈춰섰다. 한눈에 보아도 광이 나며 번쩍거리는 검은 차는 차알못인 하윤의 눈에도 비싸보였다.

곧이어 기계음없이 매끄럽게 차창이 열린다.

"어? 상사고 이진혁 아니야?

준은 단번에 이진혁을 알아보았지만, 진혁은 준을 힐끗 보고는 하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윤아 할말이 있어. 잠깐 얘기 좀 하자."

진혁의 말은 저번에 만났을 때와 대사도 말투도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연락이 끊긴 것을 이별의 의미로 생각했던 하윤은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또 다시 진혁의 얼굴을 보니 심장이 눈치도 없이 나대기 시작한다. 진혁은 타라는 듯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하윤은 눈이 동그래진 준의 표정을 힐끔 보더니 진혁의 차에 냉큼 올라탔다. 진혁의 차 안에는 진혁 특유의 향내음이 가득했다.

"준아 미안해. 내일 같이가자."

하윤의 말에 준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진혁이 하윤을 위협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하윤도 자연스러워 보였으니 준이 상관할 일은 아닌 듯 했다. 떠나는 차를 보며 준은 혼자 씁쓸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지이이잉~

성환의 문자였다.

근육돼지새끼 {하윤이는 잘 데려다 줬어?)

근육돼지새끼 {나 아직 안끝남) 오후 4:40

오후 4:40 (ㅁㄹ}

근육돼지새끼 {? 뭔개ㅐ소리야) 오후 4:41

오후 4:41 (이진혁이 채갔어}

톡을 보낸지 몇초만에 성환의 전화가 걸려온다. 준이 휴대폰을 귀 가까이에 대자, 성환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그 씹새끼가 누굴 뭐 어쨌다고?"

오늘 따라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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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04 14:31 | 조회 : 4,574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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