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성환이 돌아왔을때, 한자리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친구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아니, 그니까 어젯밤에 누가 알파 페로몬을 풀더라니깐....."

"난 모르겠던데."

"아니 누가 단체 여행중에 매너없게 페로몬을 내뿜냐고?"

"내말이...... 나도 그거때매 깼는데."

성환이 '페로몬?' 하고 묻자, 아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환은 어제 술을 퍼마셨던 자신은 쥐어 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나 술 마시면 조절 못하는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과 달랐다.

"넌 아니야. 내가 너랑 룸메였는데 넌 내내 퍼질러 자기만 했잖아."

순간, 성환의 머리에 생각이 스쳤다.

"야..... 설마 별채는 아니겠지?"

"뭐어? 미친, 별채에서 페로몬 뿜은 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냐."

"극우성이 아닌 이상 별채는 에바임."

"멀리 있잖아. 본채에서 잔 애들 중에 범인이 있다니깐."

아이들의 쑥덕거림을 뒤로하고 성환은 꺼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엌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부엌에는 여자애들 몇몇이 자신의 숨은 요리실력을 기대하며 부엌을 가장한 실험실을 펼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진혁이 죽을 담고 있었다.

"야. 이진혁."

"?"

"나 오늘부터 별채에서 잔다."

진혁은 앞뒤 부가설명 없는 직설적인 말에도 당황하지 않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윤이한테 허락은 받았어? 어제 네가 자는 사이에 하윤이가 얻어낸 방인데."

"방금 얘기하다 온거야."

성환은 진혁이 '하윤이' 라고 부를 때 미간이 절로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한 주제에 친한 척을 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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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은 이틀 내내 앓아 누웠다. 4박 5일 여행의 반 가까이 누워있냐는 친구들의 타박은 금새 걱정으로 뒤바뀌었다. 하윤은 성환과 자리를 맞바꾼 본채의 방에서 잠을 잤다. 종종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하윤은 늘 언덕 위에 있다. 언덕 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달이 가까워지는 듯 했다. 달이 하윤을 향해 날라오며 거대한 빛을 안겨주면 그제서야 하윤은 잠에서 깼다.

"으음......."

왼쪽 손을 더듬으니 휴대폰이 손에 닿는다.

《오전 11시 52분 : 7월 30일 화요일》

이틀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을 깨닳은 하윤의 마음은 착잡하고도 허망했다. 이 여행을 기대하며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밤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을 청한 자신이 한심했다.

ㅅㅎ {깨면 문자해)

{먹고싶은거 사갈게 문자보내) 오전 9:20

ㅅㅎ {많이 아파??) 오전 11:14

성환이 보낸 톡을 확인하면서 하윤은 키득키득 웃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그다지 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1 오전 11:55 (나 ㅈㄴ 비싼 거 사줘}

1 오전 11:57 (초밥이랑 돈부리}

하윤은 다시 키득거리며 이불위에서 굴렀다. 뒹굴거리며 성환의 답장을 기다리던 몸짓이 멈췄다. 하윤은 눈을 비비며 자신이 톡을 보낸 상대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어?"

《진혁♡》

'아니 저장하지도 않은 얘 번호가 왜 내 폰에....'

하윤의 머리가 순식간에 데구르르 굴러갔다. 자신이 뻗어 누운 동안 잠금이 없는 하윤의 폰에 진혁이 손을 덴 것이 분명했다.

진혁♡ {ㅋㅋㅋㅋㅋㅋㅋ사갈게) 오전 12:02

하윤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쥐구멍에 당장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과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공존했다.

그날 정말로 진혁은 초밥과 돈부리를 사왔다. 누가봐도 비싸보이는 포장지에 감싸진 채 음식들은 '자신이 고급진 몸이다.' 란걸 자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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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01 03:04 | 조회 : 5,870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돈부리는 일본식 덮밥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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