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동료 만들기-(쵸파)

"미안해,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감지'에 능한 편이니까."

"리엔의 잘못은 아냐. 그렇게 따지자면 이건 내 몸 상태를 제대로 확인도 관리도 못한 내 잘못이지."

나미가 열이 올라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힙겹게 신이를 위로했다.

옆에는 꼴사납게 질질 짜고있는 상디, 걱정하는 우솝, 아프다는 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 걱정은 되는 루피.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대응을 하는 비비가 있었다.

비비는 스파이 일을 하던 알라바스타의 왕녀였는데, 항해 도중 만나 루피에게 도움을 청해, 배를 얻어탄 사이였다.

"나미씨. 죽는 걸까? 응, 비비양?"

"상디씨! 재수없는 소린 하지마!"

비비는 버럭 소리지르며 상디의 말을 가로막았지만, 이내 자신이 없는 듯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랜드 라인에 들어온 선원이 반드시 한 번은 부딪힌다는 벽 중 하나가 기상 이후로 인한 발병. 아무리 바다에서 이름을 떨치던 악명 높은 해적일지라도 병으로 돌연 사망하는 것은 흔한 얘기야. 별 것 아닌 증상이라도 방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어."

비비의 심각한 소리에 다들 울음 바다가 되어버린 선실 안. 비비는 머리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방심하지 않도록, 이 배에 조금이라도 의학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 있어?"

그에 신이가 손을 번쩍 들고, 다른 이들은 모두 신이를 가리킨다. 갑자기 쏠리는 시선에 신이는 스스로 손을 들었음에도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다.

"하지만, 난 다친 건 치료해봤지만, 병에 걸려서 아픈 건 모른단 말이야. 루피랑 에이스는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구..."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몸이길래 그 흔한 감기 몸살 한 번 안 걸려?"

신이의 말에, 비비는 물수건을 짜 나미의 이마에 올리면서도 기가 막힌 얼굴로 루피를 바라본다.

"병은, 고기 먹으면 나을 거야!"

아무래도 루피의 말은 잘 먹으면 낫는단 소리인 것 같았다. 상디가 곤란한 얼굴로 루피를 쳐다봤다.

"그거야, 기본적인 환자식은 만들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간호차원. 그걸로 낫는다고는 할 수 없어. 원래 평소 항해 중에도 나는 나미씨, 비비양, 리엔의 식사에는 네놈들 것 100배 이상은 신경써서 만들고 있다고 신선한 고기와 야채로 완벽한 영양배분. 썩은 재료는 확실히 너희에게."

"어이!"

"그런 것 치고는 맛있던데!"

"아무튼, 내가 이 배의 요리사로 있는 이상, 평소 영양섭취에 대해선 아무 문제도 없어. 하지만 환자식이 되면 문제가 달라져. 어떤 중상이며 뭐가 필요한지, 그 진단이 나한텐 불가능해. 확실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그럼 전부 다 먹어보면 되잖아."

"... 그럴 기운이 없는 걸 환자라는 거야, 루피."

신이가 머리를 짚으며 루피의 해맑은 말을 정정했다. 물수건을 다시 갈면서 비비는 다시한 번 나미의 열을 재본다.

"40도? 열이 또 올랐어!"

신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비비에게 물었다.

"알라바스타에 도착하면 당연히 의사가 있겠지? 앞으로 얼마나 걸려, 비비?"

"잘 모르겠지만, 일주일로는 무리야."

비비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루피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묻는다.

"병이 그렇게 괴로운 거야?"

"괴로운 게 당연해. 네가 너무 튼튼한거라고, 루피. 40도까지 오르는 고열은 그렇게 간단한 병이 아니야. 40도 이상의 고열이 떨어지지 않은 채 며칠 씩 간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신이는 루피에게 설명했고 죽을 병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선실 안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으허허헝, 나미씨!"

"의사를 찾아! 나미를 구해야해!"

"진, 진정하라구! 환자에게 좋지 않아!"

"셋다 진정해!"

한창 선실 안이 시끄러운 와중, 나미가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와! 나았어!"

"나을 리가 있겠냐! 아무리봐도 억지로 몸을 일으킨 거잖아!"

비비의 말대로 나미의 얼굴에는 여전히 열 때문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책상 서랍에 신문 있지? 누군가 가져와줘."

신이는 곧바로 일어나 신문을 갖고 온다. 뭐라도 더 시킬 것이 없냐는 눈으로 나미를 바라봤지만, 나미는 고개를 저으며 신문을 받아 비비에게 보여준다.

"... 말도 안돼! 국왕군 병사 30만이 반란군으로 돌아섰다고? 원래 국왕군 60만에 반란군 40만의 진압전이었는데, 이래선 형세가...!"

"이걸로 알라바스타의 폭동이 드디어 본격화 된거야. 그건 3일 전 신문이야. 보여봤자 배의 속도는 바뀌지 않으니까, 불안하게 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숨겨뒀어. 알겠어, 루피?"

"흠. 큰일났다는 인상을 받았어."

"... 생각보다 잘 전해져서 다행이네."

나미가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힘없이 짓는다. 그래서 그런지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미. 그 공룡들이 있던 섬에서 생긴 병이야. 심각한 병일지도 몰라. 역시, 의사한테 가는 게..."

"체온계가 이상한거야. 40도라니 사람의 체온이 아니지. 아마 좀 피곤해서 일사병이라던가, 그런 걸 거야. 의사한테 안 가도 좀 쉬면 나을거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리엔. 하지만 지금은 똑바로 알라바스타에 향하자."

나미가 힘없이 웃으며 신이를 달랬다. 이내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대로라면 100만의 국민이 무의미한 살상을 하고, 크로커다일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 거야...!"

"... 엄청난 걸 떠안고 있구만, 비비양."

그러던 와중 페일이 선실 문을 급히 박차고 들어왔다.

"잡초가 이상한 곳으로 배를 몰고 있어. 그리고 느낌이 좋지 않아. 뭔가 올 것 같다!"

"그 바보 길치에게 배를 맡겨둔 내 잘못이지..."

나미가 한숨을 쉬며 급히 몸을 일으켜 갑판으로 나왔다. 2층 선실의 갑판으로 나온 나미는 다시한 번 한숨을 쉬며 배를 지휘했다. 배는 나미의 지휘대로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동료들은 전부 나미의 상태를 보며 걱정했지만, 나미는 억지로 설득하며 알라바스타로 향하려 했다.

그러던 도중, 선실에서 절망하고 있던 비비가 마음을 다잡았는지 갑판으로 나와 나미의 옆에 섰다.

"모두에게 부탁이 있어. 도중에 배에 얻어탄 주제에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엄청난 사태에 빠져 있어서 아무튼 서두르고 싶어. 일 초의 여유라도 용납할 수 없어. 그래서 이 배의 최고 속도로 알라바스타로 진행시키고 싶어."

그 말에 나미가 배시시 웃었다.

"당연하지, 약속했잖아!"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웃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비비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다들 말을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의사가 있는 섬을 찾자. 한시라도 빨리 나미씨의 병을 고치고, 알라바스타로 향하자. 그게 이 배의 최고 속도잖아?"

"그래. 그 이상은 속도가 안 나지!"

"괜찮겠어? 넌 공주로서 100만명의 국민을 걱정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한 시라도 빨리 나미씨의 병을 고쳐야지!"

"말 잘했어, 비비양! 난 다시 반했다고!"

"좋은 배짱이야."

"넌 닥쳐, 길치 잡초."

동시에 버티고 있던 나미가 쓰러진다. 그런 나미를 급히 잡는 비비.

"미안, 비비. 역시, 나... 좀 위험한 것 같아."

그렇게 말을 맺고, 나미는 기절했다. 배가 항로를 바꾸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듯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배를 휘감듯이 몰아쳤다.

다들 헬쓱해진 얼굴로 바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조금만 방향이 틀어졌더라면...

"사이클론!!"

"그대로 똑바로 갔다면 직행이었어!"

"위험해! 아슬아슬 했잖아, 이거! 저 사이클론 향하는 방향... 하마타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갈 뻔 했어."

"역시 나미! 대단해! 감만으로 예측해서 항로를 바꾼거야!"

"좋아! 이대로 빨리 의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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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야."

"저 섬은 겨울섬이란 건가?"

"그나저나 어제 우리 공격해왔던 놈은 뭐였어, 결국? 배까지 먹어치우고 말야. 와포루랬나?"

"몰라. 그냥 잔챙이 아냐?"

"그런가?"

"아무튼 눈은 새하얘서 좋지!"

말그대로 도착한 섬에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다들 겨울옷을 하나씩 껴입고 새빨개진 코로 섬을 응시했다. 루피 혼자서 들뜬 아이같은 얼굴로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있다는 건 설인도 있다는 거 아냐? 으윽, 섬에 들어가면 안되는 지병이...!"

"그럼 더더욱 가야겠네, 우솝. 앞으로 계속 섬에 들어기게 될 텐데 그 지병 고치려면 의사에게 보여야지."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치지 않아도 돼!"

"혹시나해서 말해두는데, 이번엔 모험할 시간은 없어. 의사를 찾으러 가는거라고. 나미씨가 낫게 되면 바로 나오는 거야. ... 전혀 안듣고 있군. 배를 세울 곳이나 봐 둬야지."

상디는 루피에게 충고하려다 눈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루피를 보며 이내 포기했다.

일행은 바다로 흘러가며 섬을 가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배를 정착할 곳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딜봐도 전부 눈만 가득했다.

"슬슬 걱정되는데, 우리 배 어디다 세워야 돼? 나미는 지금 아프고, 비비 일은 급하고, 의사를 구해야하는데."

"어쩔 수 없다. 어디든 닻을 내리고 배를 세울 수 밖에. 마을은 내려서 찾아야지."

"...... 아무래도 그거,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조로의 말에 일행이 주변을 돌아본다. 어느새, 강 근처 육지에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애워싸고 있었다. 강보다 육지가 살짝 높은 탓에,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들 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꼼짝마라, 해적들아."

"엄청 위험해보이는 분위기... 아무래도 우린 환영받지 못하는 듯 한데."

"해적들에게 전한다. 당장 여기서 떠나라. 지금 당장!"

"우리들은 의사를 찾으러왔어요. 환자가 있어요!"

"그런 수법엔 안 넘어가! 치사한 해적놈들! 해적 따위를 상륙하게 해줄 순 없어! 당장 닻을 올리고 썩 나가! 안그럼 배를 통채로 날려줄테니까!"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비가 나서서 외쳤지만 사람들은 속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거부했다. 오히려 분위기는 더 좋지 않아졌다.

"굉장히 미움받고 있군. 첫대면인데 말이야."

"소근소근 잡담하지 말라고!"

동시에 총성이 울리며 상디의 발 옆으로 총알이 스치며 갑판에 자국이 생겼다.

그 총성 한 번에 위태롭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다들 무기를 잡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긴장시키기고 있었다.

"쐈겠다, 네놈들!"

일행의 싸움을 막기 위해 그 앞을 급히 가로막는 비비. 하지만 이미 다시한 번 방아쇠가 당겨졌고, 비비가 총알에 맞았다.

"너희들!"

"히이이익?!"

분노하며 달려들려는 루피와 상디를 막아선 건 또다시 비비였다.

"기다려! 싸운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상처라면 괜찮아. 팔에 살짝 스친 것 뿐이야."

비비는 루피를 말리던 자세를 바로잡으며 무릎꿇고 고개를 숙였다. 리엔도 비비의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럼 상륙은 안 할테니까, 의사를 불러줄 수 없나요? 동료가 중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비비!"

"이번엔 비비의 말에 찬성이야. 지금은 자존심 굽힐 때야. 무작정 싸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선장실격이야, 루피."

"... 리엔."

"여기서 싸운다면 나미씨는... 어떻게 되지?"

"아, 미안. 내가 잘못했어."

비비와 신이의 설득에 굳은 표정으로 생각하던 루피는 이내 비비와 같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의사를 불러주세요. 동료를 구해주세요."

그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내려다보는 사람들. 이내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 따라와라, 마을로 안내하지."

비비가 몸을 일으키며 씨익 웃었다.

"거 봐, 알아줬지?"

"응, 너 대단하다."

* * *

배를 지키는 건 조로, 마을로 따라 나선 건 비비, 우솝, 루피, 신이, 페일, 나미를 업은 상디였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나라가 없었다. 여러 마을이 모여있는 형태였는데, 나라는 한 번 망했기에 지금은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는 탑처럼 생긴 산 꼭대기에 마녀가 한 명 살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결국 마을로 안내해준 도르돈이라는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기로 하고, 직접 의사가 있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우솝과 비비는 남고, 나미를 업은 루피, 상디, 페일, 신이가 산을 오르기로 했다.

도르돈이란 사람은 눈에서 사는 라판 때문에 오르더라도 반대쪽으로 돌아서 올라야 한다고 말렸지만, 일행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나미를 업은 루피를 서로 천으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넷은 눈밭을 나섰다.

"나미씨, 정신 차려! 확실히 의사한테 데리고 갈 테니까! 야, 루피! 좀 살살 달려. 나미씨 몸에 안 좋아."

"페일이 모습을 변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승차감을 장담할 수 없으니..."

"... 탈 것처럼 말하지 마, 리엔."

눈밭을 빠르게 달리면서 넷은 투닥거렸다. 그리고 그 넷에게 무언가 귀찮은 게 달라붙었다. 말하면서 뛰는데도 넷은 계속해서 돌진하며 공격하고 방해하는 무언가를 가볍게 피했다.

"그보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는데. 자는 순간 체온이 떨어져서 죽는다던데?"

"뭐?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럼 아까 그 도르돈씨의 침대는 뭔데?"

"루피 말대로 바깥에선 얼어죽을 지 몰라도 집에선 춥지 않으니까 자겠지."

"... 리엔이 말하는 게 내가 말하려던거야."

"뻥치지마!! 그보다 이건 뭐야?!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서 왔다갔다거리는데 방해된다고!"

상디는 곧바로 그 무언가를 뻥 차버렸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넷을 가로막는 그 무언가가 늘어났다. 바로 앞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잔뜩 늘어서있었다.

"뭐야, 저건?"

"아까 상디가 차버린 건 새끼였나봐."

"고릴라였나?"

"하얗고 크니까 백곰이다, 틀림없어!"

"토끼잖아, 루피..."

"아까 도르돈이 말한 라판이게 틀림없어. 장난이지? 뭐야, 이 움직임은. 덩치는 곰만한 게 토끼처럼 빨라."

"그니까 토끼라니까. 상디."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라판은 하나둘씩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 저 성에 가야 돼. 비켜, 토끼."

페일이 붉은 기가도는 금안을 빛내며 낮게 말했다. 토끼들은 여전히 싸울 테세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페일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변형시켰다. 새하얗고 거대한 맹수의 모습.

아무래도 그 위협적인 모습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상디가 급하게 루피에게 외쳤다.

"넌 절대로 손대지마."

"왜?"

"바보야! 네가 공격을 하건 공격을 받건 그 충격은 전부 나미씨에게까지 미치잖아! 죽어버린다고!"

"알았어! 안싸울게!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피해! 피하고, 피해서 도망쳐! ...하지만 물러나지마."

"너무 어렵잖아!"

신이는 제대로 싸우기가 힘들었다. 발 밑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선 격렬한 싸움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는지 금방 힘들어했다. 다만 페일은 여전히 가벼운 몸으로 이리저리 라판을 공격해댔다.

"이대로 이 녀석들 전부 상대하다간 해가 저물거야."

"어이, 루피! 네놈이 공격하지 말랬잖아! 나한테 맡기라고."

"아, 미안."

"이거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루피, 상디, 페일! 일단 견제하면서 정상 쪽으로 도망가자고!"

일행은 곧장 정상 기슭까지 달려갔다. 페일도 아쉬워보이는 얼굴로 라판을 바라보다 일행의 뒤를 따르며 라판을 떼어냈다.

"... 이제 전부 뿌리친건가?"

"아냐. 기척이 느껴져. 바로 뒤다. 꾸물거리면 금방 따라잡힐 거야. 귀찮은 녀석들이다. 내 모습을 보면 반응이 두 가지거든. 도망가거나 죽기살기로 덤비거나. 저 녀석들은 토끼 주제에 후자다. 성격이 맹수랑 비슷해."

페일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멈춰서게 되었다. 신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 거짓말이지?"

라판은 쫓아오다가 언제부턴가 다시 길을 가로막는 꼴이 되었다. 거기다, 놈들의 낌새가 이상했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녀석들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하는거지, 저 녀석들? 배고픈가?"

"갑자기 왜 뛰는거야?"

"... 이런 미친."

"리엔? 갑자기 왜 그래?"

그제야 상디랑 페일도 눈치를 챘는지 새하얗게 질렸다.

"도망쳐, 루피. 도망치자!"

"도망치자니 어디로?"

"어디든 좋으니까, 무조건 멀리! 눈사태야!"

신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눈이 급속도로 떠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루피도 새하얗게 질려 뛰기 시작했다.

"눈사태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커지고 더 빨라져! 옆으로 도망쳐! 사선으로!"

"저 망할 토끼들 절대 용서 안 할거다, 제길! 루피! 첫째도 나미씨, 둘째도 나미씨, 셋째도 나미씨다! 알았지, 죽어도 지켜!"

"알았어!"

"저기! 툭 튀어나온 곳으로 가!"

하지만 그 툭 튀어나온 곳도 이내 눈에 묻힐 위기였다. 페일은 셋이 다시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몸으로 눈사태를 막았다. 페일이 잠시 시간을 벌어준 덕에 떠내려가는 나무를 붙잡을 수 있었고, 다들 그 위에 썰매처럼 올라탔다.

"페일!"

하지만 페일은 버티다 이내 눈사태에 휩쓸렸다.

"너무 걱정마, 루피. 페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니까, 이 정도에 죽진 않아."

"문제는... 우리다. 기껏 저 굴뚝산 기슭까지 왔건만 다시 마을로 되돌아가게 생겼다고! 어떻게든 멈춰봐!"

상디에 외침에도 조용하던 루피가 갑자기 맨 앞자리에서 급히 외쳤다.

"앞에...! 바위다!"

"뭐? 이 상황에서?"

"안돼! 루피 넌 나미씨를 업고 있잖아!"

상디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루피에게 당부했다.

"리엔양이랑 나미씨 잘 지켜야해! 너 같이 단순하게 다루면 안된다고!"

그리고 바위에 부딪혔고 상디는 공중에 뜬 루피와 신이의 덜미를 붙잡아 바위쪽으로 던졌다. 루피는 신이를 붙잡고 가볍게 착지했고 눈사태에 휩쓸린 상디에게 손을 뻗었다.

"그렇게 멋대로 하지말라고!"

하지만 딸려 올라온 것은 상디의 장갑.

"에에에엑!"

그리고 눈사태는 이내 그렇게 그쳤다.

루피는 나미와 같이 묶어두었던 끈을 풀고 나미를 내려 놓고 본인의 잠바까지 덮었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신이에게 건넸다.

"리엔, 잠깐만 나미를 부탁해. 상디랑 페일 데려올께."

"응, 하지만 빨리 와야해. 아무래도 나미, 열이 더 오른 것 같아."

"응."

.

.

.

.

.

얼마지나지 않아 루피는 양팔에 상디와 페일을 들고 왔다. 상디, 그리고 페일은 인간의 모습으로 기절한 상태였다.

"페일은 내가 들게, 루피."

그렇게해서 신이는 페일을 업고 천으로 단단히 고정했고, 루피도 아까처럼 나미를 업고 상디를 들었다.

상디는 뼈가 몇 군데 부러졌기에 깨어나도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페일은 외상은 없어보였기에 나미나 상디보단 상태가 나았지만 눈에 꽤 오래 파묻혀 있어서 그런지 온 몸이 차가웠다. 그 때문인지 깨어나지 못했다.

도중에 어제 만났던 와포루란 녀석을 만났지만, 라판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상디와 페일을 구할 때 루피가 도와준 적이 있다고 했던 녀석들이었다.

덕분에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제 이 굴뚝 같은 산만 오르면 돼. 하, 거의 절벽이나 다름 없는 걸."

루피와 신이는 같이 절벽을 올랐다. 루피는 나미를 업고 옆구리에 끼고있던 상디의 옷자락을 이로 물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고, 신이는 그 옆에서 페일을 업은 채 오르기 시작했다.

"루피, 괜찮겠어? 아, 미안. 말하면 상디 떨어지겠군."

묵묵히 산을 오르던 루피와 신이. 언제부터인가 루피의 손과 발이 까져있었다. 절벽같은 건 어렸을 때부터 질리도록 올랐다. 어째서? 신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루피를 바라봤지만 이내 납득했다.

루피는 지금 두 사람을 들고 있었다.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본인의 체중까지 3배 이상의 체중을 견디고 있는 거였다.

도중에 루피는 쭈욱 미끄러져 손발이 전부 까졌다. 붙잡고 있는 절벽엔 피가 잔뜩 묻었다. 안그래도 맨손, 맨발이라 보고 있는 사람이 아플 지경이었다.

신이는 이를 악물었다. 어쩐지, 짐이 된 기분이었다. 루피를 따라가기 위해서, 에이스를 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수련해 둔 것이 헛것이 된 기분이었다.

"안되겠어. 루피! 내가 먼저 올라갈게. 손자국을 깊게 남길거야. 파인 흠 사이로 손과 발을 딛고 뒤따라와."

루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이를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는 루피 바로 위로 올라갔다. 신이는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무장색 패기가 이런 느낌이었었나?

눈을 뜸과 동시에, 절벽을 향해 주먹을 곧장 내질렀고 주먹은 바위절벽에 깔끔하게 박혔다.

그리고 동시에 손목에 저릿한 통증이 팔에서부터 등줄기까지 타고 올랐다. 손은 강화됐지만, 힘이 강화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있는 힘껏 절벽을 쳐야했기 때문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신이는 주먹을 바위에 박으며 절벽을 올랐고, 루피는 신이의 뒤에서 주먹이 박혔던 흠에 손과 발을 딛으며 올랐다.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 * *

"닥터 리누, 항체 반응이 있어."

"아, 그렇군. 원인은 뭐지? 대답해봐."

"게스티아."

"그래, 게스티아다."

신이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 정상까진 무사히 도착했었다. 루피도 같이 기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차가운 눈밭이 아니다. 신이는 지금, 침대에 누워있었다.

좀 전에는 분명, 더 춥고 차가운 바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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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황머리 여자앤 네가 봐라. 정말이지, 해발 5천미터의 드림 록을 맨손으로 올라왔다고? 무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검은 머리 남잔 전신 동상에 손발이 까지고, 하얀 머리 녀석도... 멀쩡해보이지만 전신 동상이군. 이 둘은 당장 물 데워서 집어넣어!"

"닥터 리누, 금발머리 이 녀석은 출혈이 심해. 흉골 6대와 척추에 금이 갔어. 내가 수술해도 돼?"

"그래. 제일 위험한 건 이 주황머리 여자애군. 죽기 직전이야. 쵸파. 페니콜과 강심제, 그리고 티아실린을 준비해."

"감염됐어?"

"그래. 이 섬의 병원체가 아냐."

"그보다, 닥터 리누. 이 검은머리 아이도 다친 걸까? 외관상으로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어이, 꼬마 아가씨. 어디 아픈 곳은 없냐?"

닥터 리누라고 불린 사람은 신이의 뺨을 몇 번인가 찰싹거리며 때렸고 신이는 희미해진 의식의 끈을 붙잡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 손목."

그러자 의사라고 칭한 닥터 리누가 신이의 팔을 들어올리며 손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끄흐으윽..."

"뭔가 이상해, 닥터 리누."

"아아, 그래. 보이냐, 쵸파. 이 여자애 손목. 뼈와 겉으로 보이는 피부는 멀쩡한데, 근육과 인대가 엉망이다. 좀만 더 무리했으면 손목이 작살났을 거다. 아무래도 이 여자앤 두 번다시 제 손을 쓰고 싶지 않았나보다."

그건 아닌데. 신이는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쓴 거냐, 손목을?"

"... 손을 절벽에 박으며 올라왔어. 있는대로 힘을 줬더니... 지금은 뭔가 힘빠지고 몸이 떨려..."

"전신 근육통이야."

순록과 닥터 리누는 경악한 얼굴로 신이를 바라봤다.

"검은 머리 녀석보다 이 여자애가 더..."

"...... 생각보다 더 정신이 나간 꼬마 아가씨였군."

.

.

.

.

.

그렇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러고 지금은 침대니 다들 치료가 된 거겠지?

신이는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성 안이 소란스러웠다. 아까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땐, 루피랑 상디, 페일은 이미 회복이 된 건지 털인형과 같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 털인형? 내가 잘못봤나?"

신이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켜 걸었다. 한참을 헤매다보니 옆 방에 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미는 이미 일어나 눈이 쌓인 복도를 걷고 있었다.

"리엔! 일어났구나!"

"나미? 뭐하는거야?"

"의사 말로는 3일간 여기 더 있어야 보내준다는데, 그럴 순 없지. 비비가 더 이상 울상짓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도망친다고? 근데 성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지금 누군가랑 싸우고 있나봐. 루피가 아까 내 겉옷 빌려갔거든."

"뭐? 그럼 도우러가야되는 거 아냐?"

신이가 급히 밖으로 나서려하자, 나미가 그런 신이를 끌어당겼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리엔, 손 꽤 심각한 거 아냐? 그렇게 붕대를 칭칭 감고선 도우러가겠다니."

"아, 생각보다 심하진 않아. 피부도 뼈도 멀쩡해."

피부와 뼈만 멀쩡한 거지만. 신이는 더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다. 나미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신이를 봤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

"싸움은 거의 끝난 것 같아. 그리고... 나 아까 와포루라는 인간한테서 이거 뺏었는데, 무기고 열쇠라네... 보물 열쇠인 줄 알았는데 김빠져라..."

"그 와중에 그걸 또 훔쳤어? 그보다... 와포루라면 어제부터 우릴 끈덕지게 쫓아다닌 인간인데. 지금이 세번째로 마주친 거야."

"정말? 끈질긴 인간이네."

"그 인간 이 나라의 왕이랬는데, 악덕 정치를 펼치다 국민을 두고 도망치고 해적질하다 다시 돌아온 거라는데. 들어보니까."

"최악이야."

콰앙!

나미와 신이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끝났네, 끝났어."

"날려버렸나 봐."

* * *

싸움은 끝났지만, 도르돈이란 사람과 상디와 나미 그리고 신이는 닥터 쿠레하, 그러니까 닥터 리누라는 의사한테 도로 잡혀와 병실에 누워있는 신세였다.

"저 노랑머리 청년, 역시 더 심해진 상태였어. 무리를 하니까 그렇지. 아, 도르돈 너한테는 부탁할 게 있다. 와포루의 부하였다면 무기창고 열쇠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치료에 대한 댓가다. 열쇠, 갖고 있나?"

"그건... 곤란하군. 그 열쇠라면 와포루가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녀서. 그 밀짚모자가 와포루를 날려버렸다면 열쇠도 같이 날아갔을 거다."

"뭐? 사실이야? 곤란한데."

아. 그거. 신이가 눈을 크게 뜨며 나미를 바라봤다. 나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닥터 리누를 응시했다.

"닥터 리누, 저희 선원 치료비는 전부 무료로! 그리고, 날 지금 당장 퇴원시켜주지 않겠어?"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 그러는 거냐? 치료비는 너희 배 짐과 가진 돈 전부. 그리고 앞으로 이틀 간 안정!"

"나미씨, 맞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싸움이 끝나고 올라온 비비가 옆에서 거들었다.

"걱정마, 전혀 죽을 기분이 안드는 걸."

"그게 이유가 안되잖아..."

나미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무기고 열쇠고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무기고 열쇠, 필요하겠죠? 아까 슬쩍했는데."

"이 나에게 흥정을 하다니, 배짱도 좋군. 질리는 꼬마 아가씨야. 그나마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좋아, 치료비는 필요 없다. 다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앗! 그럼 열쇠는 못 줘요! 돌려줘요!"

하지만 이미 열쇠는 닥터 리누의 손 안에 있었다. 그녀는 투덜거리며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난 이제부터 볼 일이 있어서 방을 비울거야. 안쪽 방엔 내 코트가 있는 옷장이 있고 별로 파수병 같은 걸 세우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척추나간 녀석 치료는 끝났지만, 알았지? 절대 도망가면 안돼. 그리고 마을 녀석들은 따라와. 시킬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내 방을 나갔다. 거세게 닫은 문이 부서질 듯 했다. 신이와 비비는 입을 헤 벌리고 닫힌 문을 바라봤고 나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코트 입고, 상디 데리고 이 틈에 도망치래."

"그런 것 같아."

"내 귀에도 그렇게 들렸어."

이미 다른 일행은 전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미와 비비, 신이는 코트를 여미고 상디를 질질끌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끌고가도 되는거야?"

"괜찮아. 상디는 생각보다 튼튼하니까. 것보다 밖에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자."

"근데 페일은? 치료했을 때부터 안보였는데."

"페일은 이미 동료들이랑 있어. 동상 말고는 다친 곳이 없다던데?"

페일이 강하긴 하지. 신이는 끄덕이며 납득했다. 걱정스러운 건 이쪽이었다.

상디, 의식은 없지만 어쩐지 안색이 좋지 않아보이는데. 신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봤지만, 그렇다고 업을 수도 없었다. 신이의 손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행이도 보초병은 없었기에 금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루피는 여전히 쵸파를 동료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아직도 동료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쵸파는 어딘가에 숨어버린 채 나타나질 않았다.

동료마저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와중, 드디어 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고싶지 않은 건 아냐. 하지만 난 순록이라고! 뿔이랑... 발굽도 있고, 코도 파랗고! 그야... 해적이 되고싶지만, 난 인간 동료도 아니라고! 이런, 괴물이라고!"

"......"

"난 너희들과 동료가 될 수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인사를...... 너희들에겐 고맙게 생각해. 권유해줘서 고마워. 난 여기에 남을 테니, 언젠가 마음이 다시 내키면 여기에......"

"시끄러워! 가자!"

시끄럽다는 권유라니. 어떻게보면 엄청 강압적이잖아? 신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루피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덕에 갈등하던 쵸파의 마음이 확실히 섰나보다. 쵸파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일행을 바라봤다.

"나, 닥터 리누에게 인사하고 올게! 나, 바다에 갈 거야!"

* * *

눈물 그렁한 눈으로 닥터 리누에게 달려갔던 쵸파는 지금, 완전한 순록의 모습으로 썰매를 끌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출항을 반대 당한건지 닥터 리누에게 쫓기고 있었다.

"모두들 썰매에 올라타! 이대로 로프웨이의 줄을 타고 산을 내려갈거야!"

"뭐어어? 인사는 한 거야? 언제 다시 돌아올 지 모른다고!"

"... 괜찮아!"

동료들은 전부 달리는 썰매 위로 부랴부랴 올라탔다. 그리고 수직으로 뻗은 산에 고정시킨 줄을 타고 곧장 내려갔다.

"이런 게 있을 줄 알았다면 맨손으로 산을 오르진 않았을텐데."

신이는 짜게 식은 눈으로 로프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썰매는 금방 산을 내려왔고 바다 위에 정착해있는 메리호까지 단숨에 나아갔다.

모두들 배에 안전히 올랐을 때, 포격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설마 대포까지 쏘며 위협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일행의 고개가 들리는 순간. 모두 멍한 얼굴로 한 곳을 바라봤다.

수직으로 뻗은 드림 록 위, 분홍색의 꽃잎이 휘날리고 있었다. 거대한 벚꽃나무였다.

"... 예쁘다."

쵸파는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 닥터의 연구는 실패작이 아니었어. 30년의 연구는 성공이었던거야."

닥터 리누가 아닌 쵸파를 돌보았던 의사를 말하는 듯 했다. 6년 전, 닥터 리누의 제자가 되기 전, 처음 쵸파에게 애정을 주었던 닥터 히루루크. 그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가 나라로 인해 죽은 사내였다.

신이는 쵸파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파란 가방을 내밀었다.

"아, 쵸파라고 했지? 이거 썰매에 있던 거 가져왔는데."

쵸파가 놀란 눈으로 가방을 바라본다.

"이거, 네가 챙겨준거야?"

"그럴리가. 난 의료도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걸."

아무래도, 닥터 리누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왕 보내주는 거 기쁜 얼굴로 보내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알고있었다는 거네. 네가 출항할 거라는 것을."

신이는 조명빛에 비춰진 벚꽃나무를 보며 맥주잔을 들었다. 어린애 몸이지만 이런 좋은 날에...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3
이번 화 신고 2018-03-16 20:00 | 조회 : 1,726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오타지적 환영ㅇㅅㅇ 자꾸만 늦어서 죄송해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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