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편 페일은 무얼 먹을까

"자아, 아름다운 나미씨도 돌아왔겠다, 금방 식사를 차릴테니 다들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얘기해봐!"

상디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향하며 외쳤다. 밥이라는 말에 할 일없이 배에 퍼져있던 일행은 금방 시끄러워졌다.

"나는 고기! 뼈있는 고기면 더 좋고!"

"나도 고기! 라고 하고 싶지만, 축제 때 계속 고기만 먹어서 말이지. 밥 종류가 먹고 싶다고."

"난 상큼한 걸 좋아해. 과일이 들어간 요리 같은 거. 뭐, 귤이 가장 좋긴 하지만."

"난 매콤한 거! 나 매운 거 좋아하거든! 아, 그리고 최근에 야채도 못 먹었더니, 야채 종류도 먹고싶네... 나도 우솝처럼 밥 종류로 괜찮아?"

"난 배를 채울 수 있는 거면 어떤 거든 상관없어. 술이 있으면 더 좋고."

루피, 우솝, 나미, 신이, 조로가 차례대로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얘기했다.

"어이, 페일. 넌 먹고 싶은 거 없어?"

상디가 주방 쪽에서 고개를 내민 채 묻는다. 시끌벅적한 일행들 사이에서 페일의 목소리가 없다는 걸 주방에서도 알아차렸기 때문인지, 단번에 일행의 시선이 조용한 페일에게로 몰렸다.

갑자기 한꺼번에 몰린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페일은 시선을 아래로 깐 채 대답한다.

"... 내 건 됐어. 별로 배 안고프니까."

그 말에 상디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너 저번에도 안 먹고 조로 쪽에 합류하지 않았나? 내 요리가 맛 없어서 그런거야? 축제 땐 먹던 것 같은데."

"그건 아냐."

"배고프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나미씨의 마을에서 축제가 끝나고 항해하는 며칠 간 네가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원래 난 한 번 배를 채우고 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간 잘 안 먹어."

그 말에 일행의 충격적인 시선이 페일에게로 몰렸다. 특히나 루피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한 얼굴이었다.

"뭐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게다가... 난 요리같은 거 먹어본 적 없으니까, 뭐가 맛있는 지도 모르고 무슨 종류가 있는 지도 잘 모른다고."

그 말에 일행은 더욱 충격에 빠졌다. 신이는 떨리는 목소리를 물었다.

"그치만... 예전에 다단 일가에서 다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었고, 이번 축제 때도 먹었다며. 그게 음식이잖아."

"그 산적 일가에서는 내가 뭘 먹기도 전에 다들 음식을 몇 개씩 들고 입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던데, 나는 굳이 그래야할 필요성을 딱히 못 느껴서 술만 마셨지. 이번 축제 때도 그랬고."

신이는 납득했다. 약육강식을 가훈으로 여기는 다단 일가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몇 개씩 집어먹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페일이 음식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 술을 시작하게 된 것도 형제의 잔을 나눈 뒤였지만. 처음에는 알코올 향이 나서 불쾌했는데, 끝 맛이 달달해서 자꾸 생각나더라고."

"오오! 너, 술 좀 먹을 줄 아는구만?!"

생각없이 반색하는 조로에 나미가 조용히 조로를 쥐어박는다.

신이는 어쩐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먹어본 음식이라곤 술이 전부였던 거다. 형제의 잔을 나누기 위해 반강제로 먹였던 술이 맛있다고 할 정도로. 하지만 술이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어째서 깨닫지 못한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봐왔는데, 왜 음식을 먹지 않았단 걸 몰랐던 걸까. 신이는 이마를 짚으며 자책하다가 퍼뜩 생각이 들었는지 페일에게 다그친다.

"그럼, 너 이때까지 뭘 먹어 온 거야?"

"... 고기."

"고기?"

고기라는 말에 루피가 반색했고, 신이와 나머지 일행들은 의아해했다. 상디는 어쩐지 표정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역시 내 요리를 안 좋아하는..."

"... 물론 요리는 아냐."

"하지만 방금 고기라고..."

"요리되지 않은 고기. 내가 모습을 변할 수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잖아? 배고플 때마다 맹수의 모습으로 변해서 사냥해 먹었어."

담담하게 말하는 페일에 말에 일행은 할 말을 잃고 페일을 쳐다봤다. 경악한 표정과 충격을 먹은 표정들이 섞여있었다. 다그치던 신이도, 추궁하던 상디도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

신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치만... 그 때는?"

"그 때?"

"아니, 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줘."

"... 아아. 실험체였을 때? 그 땐 먹지도 않았어. 혈관이나 위로 직접 주사했지. 씹지도 삼키지도 않았는데 배가 차는 기분은 더러웠지. 아마 그래서 지금도 이 몸으로는 잘 먹지 않는 걸 지도."

일행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다들 하나 둘 페일하고 신이에게 묻는다.

"실험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리엔은 알고 있었던 거야?"

신이에게까지 질문이 향하자 페일이 만류한다.

"이제와서 내가 실험체였다는 건 중요한 게 아냐. 지금은 어쨌든 실험체가 아니니까."

페일의 한 마디에 다들 조용해졌다. 그 조용한 분위기를 먼저 나서서 환기시킨 건,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상디였다.

"그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은 즐거운 식사시간 전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어두워서야. 그래, 넌 뭘 먹고 싶은 거야? 설마 지금도 생고기를 먹고 싶다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난 요리 종류도 모르고 먹어 본 적도 없다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먹어봐야지, 맛있는 요리를.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언제까지 생고기를 뜯을 거야?"

페일은 말없이 상디를 응시했다. 하지만 상디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미 주방으로 들어가버린 뒤였다. 페일은 포기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리엔하고 같은 요리면 됐어."

상디가 제대로 들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다시 묻지는 않는 걸 보니 제대로 들은 듯 했다.

"실험체라면... 만들어졌다는 거야?"

"... 그건 아니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한 거지."

우솝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고, 그 옆에 있던 나미가 정정하며 우솝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루피가 모처럼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페일은 가족이라던가, 있어?"

"기억이 없어. 실험체 이전의 기억이. 그리고, 기억이 있다하더라도 시간이 꽤 지났으니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겠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

"그런가.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가족이니까! 형제잖아, 우리?"

넉살좋게 웃으며 말하는 루피에 페일은 결국 못이기겠다는 듯 조용히 미소짓는다.

이때까지 가만히 페일을 바라보던 신이는 조용히 일어나 페일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페일."

"......?"

"난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했으면 좋겠어."

"......"

페일은 의아한 얼굴에서 놀란 얼굴로 신이를 바라봤다. 언제부터인가, 신이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페일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해. 페일은 속으로 되뇌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익숙해졌는데.

페일은 어쩐지 울지 않는 본인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기분이들어, 신이의 눈을 보기가 힘들었다. 남이 울어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 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진심이야. 그러니까, 평범해지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우리, 오랫동안 서로를 봐왔잖아. 가장 오래 봐왔던 사람인데, 만난지 얼마 안된 동료들만큼이나 모르잖아."

"... 그래."

페일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미안하다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어쩌면 미안하게 만들 일을 몇 번 더 벌이게 될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제대로 사과해야 할 듯 했다.

페일은 가끔 신이의 저 올곧은 눈이 무서웠다. 말하지 않은 것들을 이미 알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행복이라... 헛된 생각, 헛된 꿈이지."

몇 십년간 바라는 것이 없었기에 이제는 행복이란 게 뭔지도 모르겠다.

몇 십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쓸모를 이용하려는 자들도 있었고, 불쌍히여겨 거두어주려는 자도 있었고,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야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빌어주는 사람이 생겼는데,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스스로도 자제해왔는데, 어쩐지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언제부턴가 이 항해가 지속될 수 있도록 바라고 있다.

"리엔.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

.

.

.

.

페일에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므라이스가 담긴 그릇이 올라가 있었다. 모두의 바람대로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볶음밥에 계란을 둘러 과일 소스를 뿌려 마감한 오므라이스였다.

다들 숟가락을 들지 않고 페일만 집중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페일은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숟가락을 들어 얇은 계란과 볶음밥을 같이 한 숟가락에 떠서 입에 물었다.

"어때? 처음 먹어본 요리는?"

상디가 일행 중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만만하면서도 긴장한 얼굴로 묻는다.

"... 맛있어. 조금 혀가 아픈데..."

"미안, 내가 상디한테 조금 매콤하게 해달라고 했거든."

신이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페일은 계속해서 숟가락을 들었다.

"요리란 거, 맛이 다양하네. 배가 차는 감각도 싫었는데, 아니... 지금도 싫은데, 맛있어서 계속 먹게 돼."

"당연하지! 누가 만들었는데."

"이 모습으로 먹을 걸 먹어보는 건 기억하는 한 처음이야."

"내 요리가 첫 시식이라니 그거 영광이네."

상디가 넉살좋게 말을 받으며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페일이 제대로 볶음밥을 먹기 시작하자 일행들도 그제야 안도한 얼굴로 숟가락을 들었다.

페일은 처음엔 빠르게 나중에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볶음밥 한 그릇을 깨끗히 비웠다. 루피는 아예 그릇을 쌓으며 먹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오늘도 잘 먹었다고, 상디."

"맛있었어."

식사가 끝나고 잘먹었다고 인사하는 일행을 뒤로하고 페일은 말없이 상디를 바라보다가 이내 빈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 저녁에도 부탁해."

3
이번 화 신고 2018-03-11 03:14 | 조회 : 1,565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담편은 아무래도 공강인 목요일날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요ㅜ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