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훈계

해안가.


모래사장 위에 신이, 에이스 둘이 나란히 페일에게 기대고 있다. 페일은 좀 무거운지 잠시 끙끙거렸지만 둘을 떨쳐내는 게 더 귀찮은지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신이는 눈을감고 에이스가 찾아 온 이유를 말하길 기다렸고, 에이스는 페일의 하얀 털에 푹신하게 기댄 채 하늘을 바라봤다.



"... 있지, 나 살아있어도 괜찮을까."



그 말에 페일은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떴고, 신이는 기댄 채로 고개를 에이스 쪽으로 휙 돌린다.


사실, 에이스가 한 말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랄 문제는 아니었지만, 좀 전까지 신이와 페일이 고민하고 얘기하고 있던 것이 에이스의 상담 문제였으니 적잖아 놀랐다.



"...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드디어 왔군. 사춘..."



신이는 페일의 새하얀 콧잔등을 가볍게 때렸다.


페일은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신이는 잠자코 에이스가 말하길 기다렸다.


신이 특유의 조용한 목소리가 에이스의 화를 가라앉혔는지 에이스도 한결 편안한 얼굴이었다.


어느새 페일도 인간형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 옆에 셋이 나란히 앉는다.



"... 둘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을 사람들은 내가 죽기를 바랄거야."



그렇게 말하는 에이스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에 신이는 씁쓸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을 이었다.


"... 마을 사람들의 말 너무 신경쓰지마. 애초에 널 향한 말도 아니고, 그들도 막상 로저 앞에서 그런 소리 못 해."


"알아, 어린애 취급하지마. 리엔. 내 정채를 모르기 때문에 날 향한 소리가 아닌 거 알아. 로저 앞에서도 말 못 한다는 것도 알아. 내가 화나는 건...!"



에이스는 신이의 앞에서 진정을 하던 것 같았지만 다시 분노를 조절하지 못 한다.



"내가... 분한 건 전부, 전부 다야! 뒤에서만 욕해대는 것도 화가 나고, 그 녀석이 아버지란 사실도 짜증나서 속이 뒤틀려. 근데, 근데 제일 화가 나는 게 뭔지 알아? 그 녀석을 아버지라 인정한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그 녀석에 대해 욕을하고 안 좋은 소릴하면 꼭 나한테 하는 거 같아서... 화가 나.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다고!"



신이는 할 말을 잃는다.


10년동안 보아왔다. 스토리도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일까. 이렇게까지 말하는 능력, 감정. 어린애 답지 않다. 어려웠다, 현실이란 건.



"에이스. 난 로저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건 알아. 로저는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 세상은 넓어.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거야,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신이는 더욱 나지막한 소리로 조근거린다. 이 말에는 조금 놀랐는지 에이스가 신이를 바라본다.



"리엔은 로저가 싫지 않아?"


"만난 적이 없으니 싫다 좋다 할 수 없지만, 꿈도 없는 사람들이 언제나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살아 바쳐온 사람을 입에 올릴 가치가 없다는 건 잘 알지."



신이는 에이스를 위로하는 동시에 악담한 사람들을 비판한다.


에이스는 신이를 잠시 바라보다 율을 바라본다.



"그럼, 페일은? 페일은 그 녀석을 만나 본 적이 있는 거지?"



인간형 모습을 하고 있는 율은 에이스를 무표정으로 바라 본다.



"... 로저는 민간인을 이유없이 함부로 해치지는 않았다. 물론 그가 해적의 새 시대를 연 것은 맞아."



그 말에 에이스는 놀란 눈으로 페일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로저는 나쁜 건가?"



그 말에 페일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렇게까지 길게 말하는 게 귀찮았는지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 강조하듯 말을 끌었다.



"나쁘다...? 그럼 착하다는 기준은 뭐지? 선량한 일을 많이 한 사람?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사람? 남을 위해 사는 사람?"


"......"


"로저는 그저 세상에서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옳다 믿는 일에 거침 없고 주저하지 않았지.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자유로웠기에 함부로 제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잡혀서 사형당했잖아!"



에이스는 화를 내다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 날 버리고."



그런 에이스를 보다가 다시 짐승의 모습으로 변형하는 페일. 큰 몸집에 위압감이 엄청나, 에이스가 찔끔한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신이가 먼저 알아차리고 긴장한다.



'위험해...!'



에이스는 평소와 다르게 잠만잤던 페일이 이런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는 게 못마땅해보였지만, 위압감에 감히 덤빌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 어리광을 잠자코 들어주자니, 화가나서 못 견디겠군. 그가 욕먹는 것도 싫다, 칭찬 받는 것도 싫다. 무엇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난 그저... 궁금할 뿐이야. 그 녀석은 무슨 생각을 갖고 대해적 시대를 연 건지. 해적이란 게 가족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정도로 좋았던 건지."


"... 로저는 잡히지 않았다. 건강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자수한거다. 비록 병으로 스러져도 스스로 새 시대를 열어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 위해. 로저는 죽는 순간까지도 받아들여 웃으며 죽었다. 로저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인간이다. 로저에 대해 투정하는 것도 들어주자니 화가 나는데, 로저가 무책임하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꼬맹이?"


"......"



평소라면 꼬맹이란 말에 덤벼들었겠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른 페일의 모습이기에 아무 말도 못 한다.



"겨우 이 정도에 찔끔거리는 녀석이기에 꼬맹이라고하는 거고, 어리다 하는 거다.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됐다는 내 말도 귀담아 듣지 않고, 마을에 내려가 캐물었지. 그래, 좋은 소리가 나오더냐? 로저가 무책임 하다라... 로저가 정말 책임이 없었더라면 넌 루즈가 낳고 나자마자 몇 년도 채 안 돼 발칵 되어 죽었을거다."


"......!"



에이스의 표정이 굳어가며 어두어진다.



"넌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거라 생각하나, 꼬맹이? 해군인 거프가 널 어떻게 알고 옮겨놨을 거라 생각한거냐! 로저의 부탁이었다. 태어날 아이는 죄가 없다며 변호했지.
내가 왜 여기에 남아 고생을 하고 있다 생각하나, 꼬맹이? 이 섬을 나가지 못 해서? 천만에. 이것 역시 거프에게만 맡기는 것이 불안한 로저가 나에게 부탁한거다.
솔직히, 지금이야 정이 들었을지 모르나, 예전에는 생판 남의 아이를 맡겨달라는 부탁이었다."


"......"


"겨우 세상이 널 축복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삐뚤어지겠다 라는 그딴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세상은 넓고, 바다 역시 넓다. 지금 네 고통이 전부라 생각하지마라. 네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많다. 앞으로는 더 힘들다, 로저의 꼬맹이."



그 말이 페일은 말이 끝나자마자 끓어올렸던 기세를 가라앉혔다.


옆에있던 에이스가 반쯤 멍한 얼굴로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한다.


거의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눈빛으로 묻는다. 매일 무표정에 해변가에서 자는 모습만 봤을테니.


지금의 모습도 무표정인 페일의 평소모습과는 보인다. 당황스러울 거다. 하지만 에이스는 더는 묻지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페일은... 강하구나."



신이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에이스에게 다시 웃으며 묻는다.



"어때? 에이스. 아직도 로저가 나쁘다고 생각해?"



하지만 에이스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을 듣는다.



"... 나쁘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한테는. 책임... 졌다고는 아직 인정 못해."



어떻게 보면 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로저가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뭐, 네 입장에서 나쁘다고 하는 것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기준, 정의를 세우지도 못한 채로는 언제까지나 그 생각에 갇혀사는 거다."


"정의...?"


"네가 옳다 생각하는 기준이나 길 같은 거다. 신념같은."


"잘 모르겠어. 난 아직 내가 살아있어도 되었는지 어머니에게 목숨 빚을 지면서까지, 태어나도 되었을까 확신도 안 들어. 답답해."



그 말에 가만히 있던 신이가 대답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했던 사람은 없어. 에이스. 모두 세상에 필요해서 태어난 거야.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칭송을 받지만은 않아. 어디서는 욕을 먹고, 어디서는 칭송을 받고, 어디서는 희망이 되어주지."



옆에서 페일도 거든다.



"가치 또한 절대적이 아니야. 사람들이 멋대로 정하는 가치니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거든 그저, 다른 사람에게만 피해만 주지마. 그건 가장 최악이니까. 네 양심에 아니라고 생각되면 하지마. 그 양심이 무뎌지기 전에."



그 말에 에이스가 조용히 묻는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란 뭐지?"


"그건 네가 판단할 몫이지, 에이스."



그 말에 실망하는 에이스.



"뭐야, 치사하긴."



팔짱을 낀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삐친 모습이 귀여워, 신이는 한마디 덧붙인다.



"이것 하나만 알아둬 에이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도둑이든 살인자든 어떤 최악의 인간이라도,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 셋 이상이 된대."


"... 슬퍼할 사람? 나한테도?"


"그 어떤 사람이라도."


"......"


"가족이든 친구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죽음은 그다지 기쁜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슬퍼해 줄 사람이 셋 이상. 그러니까, 넌 널 위해 슬퍼해 줄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면 되는거야."


"날 위해 슬퍼할 사람이라도 있을까?"


"있어,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


"......"



페일은 아무 말없이 의기소침해진 에이스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혀를 차며 한마디 보탰다.



"정 없다 생각하면, 만들어라. 널 위해 슬퍼해줄 사람. 널 위해 죽어줄 수 있을 정도로의 소중한 사람."


"응!"



에이스는 그제야 명쾌한 대답을 하며 숲쪽으로 달려간다.




다시 해변가에 신이와 페일만이 남아있다.



"... 이걸로 에이스의 성격이 바뀌는 걸 기대하면 욕심이겠지."


"...... 성격이 그리 쉽게 바뀌면 난 로저를 따라나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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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8 00:37 | 조회 : 1,212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썸네일 바꿨는데... 전에 것이 낫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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