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태어나도 되었을까

둘이 만나게 된 그 후 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리엔은 24살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있잖아, 페일. 난 이쪽 세계 나이로 23살 일거야, 그렇지?"


"난 그런거 안 따져. 네 나이가 그거라면 그거겠지."



멀리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아무생각없이 대답하는 페일을 보며, 한숨을 지으며 말하는 신이.



"...... 근데, 우리... 그대로다?"


"그러네."



페일의 무미건조한 말에 흥분하는 신이.



"'그러네.' 라니....! 난 인간인데! ... 왜 그대로지? 왜 키가 안 자라?"


"... 여자들은 나이 안 먹는 거 좋아하지 않나?"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페일의 몸에 기대어 팔 다리를 버둥대는 신이.


그런 신이를 보며 두 앞 발에 턱을 올린 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꾸를 해준다.


어쩐지 신이는 그 말에 더 서글퍼진다.



"이건... 동안이라기보다 그냥 어린애잖아. 몸매 좀 봐. 완전 밋밋해. 한 번쯤은 어른이 되는 상상같은 거... 어른이 되고싶었단 말야. 근데 난 왜 이걸 너한테 얘기를 하고 있는거지...?"


"네가 다른 세계의 이질적인 존재라 나이를 안 먹는 거 아닌가? 이 세계의 몸이 아니잖아."



페일은 귀찮다는 듯이 아예 눈을 감고 답한다.



"뭐야, 그럼 난 영원히 늙어죽을 때까지 이 몸매야?"


"늙어죽지 않을지도. 그리고 나도 나이 안 먹으니, 같이 나란히 안 먹으면 되지. 안 그래?"



그의 간단한 말에 할 말을 잃은 신이. 다시 조용히 북실북실한 페일의 옆구리에 기댄다. 페일의 털 감촉이 나쁘지 않다.


신이는 중얼거리 듯이 잠에 취한 목소리로 페일에게 말한다.



"나이 안 먹는거 좀 무서운데... 근데 페일, 에이스 봤어? 요즘 많이 거칠어졌어. 눈빛도, 행동도, 말투도..."


"그렇겠지. 기억하잖아. 전에 마을에 가서 로저의 얘길 듣고 다니는 거. 분명 좋은 소리 못 들었겠지. 얼굴보니 최근에도 그러던 것 같은데."



심각한 분위기로 바뀐 신이와 페일. 공기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근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는 거야... 분명 보이는데. 이제 막 10살이 되었으니 돌아다니지도 못 하게 막아둘 수도 없고. 뭐, 이건 아기때 부터도 불가능한 거였고......"


"......"


"에이스 성격에 직접와서 얘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을을 죄다 싹 뒤집을 수도 없잖아. 굳이 따지자면 에이스를 욕하는 것도 아니라, 우리가 나서면 해적왕을 두둔해 버리는 게 되버리고 괜히 눈 밖에 나는 수가 있으니까. 내가... 뭘 해야 좋은 걸까."



진지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페일이 고개를 돌려 신이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얘기한다.



"해 주긴 뭘 해줘? 우리는 그저 뒤에만 있으면 돼."


"그게 끝?"


"그럼 언제고 그 녀석도 뒤돌아 볼 때가 있을테고, 그럼 우린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거야. 그게 가장 중요하지."


"정말 그거면 돼?"


"리엔. 내가 그 연구소를 나오고 몇 십년간 홀로 떠돌아다니며 가장 비참한 게 뭐였는 줄 알아?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거였어. 모든 걸 나 혼자서 버텨야했지. 지금 그 녀석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행운이다. 적어도 그 녀석은 혼자가 아니잖아."



그 말로 페일은 고개를 돌려 다시 앞 발 위에 올렸다. 신이는 그런 페일을 잠시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우릴 정말로 필요로 할 때. 에이스 녀석, 우릴 찾긴 할까... 우린 언제나 그 녀석의 뒤를 지키고 있는데."


"... 우릴 찾지 않는 것도 그 녀석 마음이지."




* * *




골 .D. 로저. 해적왕의 아들, 포트거스 .D. 에이스. 원래라면 골 .D. 에이스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어머니의 성을 따른 내 이름.


미리 말하지만 난 로저가 싫다. 어머니에겐 빛을 졌었지만, 큰 빚을 졌지만... 로저는 없다. 날 멋대로 만들어놓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세상이 무슨 얘길 하도록 냅뒀다.



날 버렸다.



아니, 그 전에는 사실 아는 게 그다지 많이 없었다.


다단에게 물어도 다른 일을 시키려 들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회피하는 게 눈에 선했다. 왠만하면 얘길 하려들지 않았다.


리엔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모른다고 했다. 예전부터 날 많이 돌봐주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지만 나랑 나이 또래가 비슷했다. 왠지 아는 게 많을 것 같고 표정도 그렇게 보였지만, 로저는 리엔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을 거다.


리엔은 왠지 나이가 많고, 말투도 행동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챙겨주고 돌봐주었는데... 리엔이란 이름 외엔 나이도, 정체도 아무것도 모른다. 아는 게 없다.


한 가지 날 키워준 빚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나랑 나이도 얼마 차이나지도 않아 보이는데. 기억도 잘 안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리엔의 곤란한 표정을 보고싶지는 않다. 좀 궁금하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 페일이었다. 페일은 큰 흰털의 짐승으로 변하고 이따금 동물로도 변하기도 했다. 왠지 그나마 잘 알 것 같았다.


로저에 대해서.



... 해서, 물었건만 눈을 감고 자는 척 만한다.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지나도 묵묵부답이다... 무시다, 이거.


그래서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털을 뽑기도 했다 귀에다 소리도 질러보고 꼬리도 잡아당겨 봤다. 마침내 코에 딱밤을 먹였을 때, 그제야 반응을했다.


눈을 뜨고... 내 공격을 피한다. 가끔은 눈도 뜨기 귀찮은지 감은 채로 피하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 피하다보면 그마저도 귀찮은지 꼬리로 슬쩍 민다.


알고 싶다. 그저 그 뿐이었는데 왜 얘기해 주지 않은 걸까. 로저가 미운건가. 아님, 나처럼 로저가 원망스러운 건가.


페일은 리엔처럼 모른다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아는 사이다. 그런데 왜 대답을 피할까.



딱 한 번. 페일이 입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넌 들을 준비가 안됐어. 그런 눈빛으로 물어봤자 내가 뭐라고 말하든 네 좋을대로 해석할 텐데, 뭐하러 입 아프게 설명할까."



이 말 뿐이었다.


뭐가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걸까. 난 이미 준비가 되었는데. 무슨 말이든. 이미 날 버렸다는 건 알고 있는데. 이 이상 실망하고, 원망할 게 어딨어.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아주 많이.




* * *




"골 .D. 로저? 해적왕 말하는 건가?"


"나도 알고 있다고? 너 말이야, 왜 이렇게 많은 해적들이 이 바다에서 설쳐대고 있는지 몰라? 전부 로저라는 녀석의 탓이라고!"



로저의 탓?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어째서?"



양아치 중 한명이 말을 잇는다.



"귓결에 들은 얘기로는 녀석이 처형당하기 직전에 하나뿐이 대 비보인가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서, 그걸 믿은 바보같은 해적들이 날 뛰는 세계가 됐다는 거지."



다른 양아치 녀석들도 입을 맞춰 거든다.



"그 녀석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이라고?"


"어쩔 수 없이 쓰레기란 사실인거지."


"처형을 당했으면 곱게 죽을 것이지, 바다를 해적 맘대로 휘젓게 하다니... 살아있어도 민폐, 죽어서도 대 민폐! 세계 최악의 쓰레기야! 기억해두라고."



그러고나서 낄낄거리는 양아치들. 분하다. 살아있을 땐 제대로 말도 못 할 녀석이 죽고나서 낄낄거리는, 이죽거리는 면상이 짜증난다.


웃으면서 뒤돌아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주먹을 그러쥔 손은 부들부들 떨린다.



"이익......!"



녀석들이 뒤돌아본다.



"뭐야? 왜 네가 화를 내는데? 눈 안 깔아? 그보다 너 누구야, 꼬맹이?!"



퍽-!




... 난 녀석들을 반쯤 죽여놓았다.







바닷가 벼랑위.


잠시 앉아 바닷바람을 쐬고 있자니 다단이 다가온다.



"너, 마을에 내려가 뭔 짓을 한 거냐? 에이스."


"하?"


"마을의 불량배들이 아이한테 죽을 뻔 했다고, 때 소동이라고!"



그 녀석들은 아이한테 맞은 게 창피하지도 않은가 보다. 이리저리 소문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이번엔 얼굴도 못 들게 망신을 한 번 제대로 줄까.



"뭐야, 죽은 줄 알았더니."



다단은 툭 내뱉은 내 한마디에 흥분한다.



"뭐라고?! 네가 문제를 일으키면 질책 받는 건 바로 나라고?! 듣고있어, 에이스! 정말이지 잘도 이런 성가신 애를 맡기셨구만."



다단도 똑같다. 내가 골칫덩어리 일 뿐이다. 솔직히 맡겼다해도 다단이 날 돌봐준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얼굴을 봐온 건 리엔이다.


리엔은... 나한테 엄마같은 형이다.






마을 뒷 거리.



"로저에 대해 알고 싶다고?"


"... 응."


"녀석은 말이야, 그냥 거짓말쟁이에 살인자라고! 해적왕이라니 웃기고 자빠졌어."



난 이 대답을 들을 걸 뻔히 알면서도 또 묻는다. 왜 그럴까... 다를거라는 기대라도 한 걸까.


다른 한 녀석도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말을 한다.



"해적왕이 아니라, 헛소리왕이지!"



똑같아. 다 똑같아.



퍽.



"으윽--!"






술집 안.



"로저? 기분 더러운 이름 내뱉지 마라 꼬맹아, 술 맛 떨어진다. 꺼져버려."



녀석이 술냄새를 풍기며 말한다. 짜증나.



"뭐냐, 그 눈깔은?!"



어느 새, 난 녀석을 또 노려보고 주먹을 그러쥔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아버진데. 아니, 아버지라 부를 가치도 없는 놈이긴 한데, 그가 남겨둔 거라곤 이거 뿐인데.


이상하게도 분노가 치민다. 녀석에게 향하는 모든 말이 날 향해 말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양.



퍽.



"뭐하는 거야! 이 망할 꼬맹이가!?"



술집은 또 싸움터가 된다. 이번에는 나도 맞는 걸 피할 수가 없다.






다시 벼랑위.


이번엔 거프다. 왜 다들 내가 가만히 바닷바람을 쐬는 걸 못 보는지. 뭐 원인제공은 나겠지만. 아아, 아까 얻어터진 얼굴이 쓰리다.


할아범은 내 뒤에서 호탕한 웃음을 날린다.



"으하하하하핫! 에이스. 뭐냐, 그 한바탕 한 꼴은? 여기 앉아도 되겠지?"


"맘대로."



그러더니 거프는 뒤에서 바위 위에 자리를 잡는다.



"어이, 에이스. 최근 자제가 안 되는 것 같더구나."


"... 할아범에겐 손자가 있지? 그 녀석은 행복해보여?"


".... 아, 루피말인가? 건강하게 자라고있지. 약간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한데..."



결국 아무 걱정없이 행복하단 거군. 맘에 안들어. 화를 낼 수록 나만 비참해지지만, 그렇다고 화를 안낸다면 빌어먹을, 내가 성자가 됐겠지.



"할아범. 나는 태어나도 됐을까?"



할아범의 눈이 커진다.



"으응? 그거야, 너.... 살다보면 알게된다."



잘 모르겠다. 지금도 난 살고있는데. 살아도 되었는지 확신이 안 든다.



리엔은 지금 해변가에 있을까.

2
이번 화 신고 2018-02-06 21:58 | 조회 : 1,41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오타지적 환영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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