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요괴의 일상

오늘은... 해변가로 갈까. 뭐랄까, 어제도 해변가에서 잠만 잤지만. 저번에는 숲으로 갔었다. 에이스가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었다.




* * *




동굴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키겠다고 약속한 꼬맹이는 어떤 여자아이가 잘 돌보고 있다.


덕분에 할 일도 없고, 이렇게 며칠에 한 번씩 정말 배가 고파 아사할 지경에 이를 때 대충 사냥해 먹는 식이다.


일단 숲으로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몸을 인간으로 변형시킨다.


쓸데없이 큰 덩치에 잔 나무가지들이 이리저리 쓸리기 때문에 사냥할 때, 잘 때 외에는 주로 인간형의 모습으로 다니는 중이다. 쓸려도 상처는 나지 않겠지만 눈이라도 맞으면 귀찮고 아프다.


기분이 묘하다. 숲이 쓸데없이 조용하다.


사냥이라도 하려고 했건만 사냥해먹을 만한 작은 동물의 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내가 자는 사이에 무심코 기척을 냈던가?


눈을 살짝 감고 귀를 기울인다. 굳이 견문색이라고 해도 틀린 건 없겠지만, 그저 타고난 청력이 뛰어났다고도 할 수도 있다.



"호랑이..."



근처에 이놈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 조그만 동물들이 사라졌지. 그러고보니 여기가 호랑이 영역이긴 하군. 빌어먹을 놈 조용히 사냥할 것이지, 왜 주변 사냥감들을 죄다 도망가게 만든 거지? 귀찮게...



"... 먹어버릴까."



관두자. 이곳의 영역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호랑이를 죽여버리면 내가 호랑이의 영역을 다스려야 할 지도 모른다.


배는 고프니... 호랑이 영역 말고 다른 곳에 가서 사냥을 해야하나... 하지만 마주치기라도 하면 귀찮다.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건... 인간의 기척 같은데. 누구지? 겁도 없이 호랑이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은. 구경이라도 할까?"



나는 짐승의 모습으로 변한 뒤, 기지개를 한 번 키고 몸을 웅크렸다. 근육이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발을 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귀에선 바람소리가 들리고 옆에서 보이는 나무는 형태도 없이 지나쳐간다. 꽤 빠른 속력으로 달린다. 덕분에 장소로 금방 도착했다.



"어디 멍청한 인간 잡아먹히는 꼴 좀..."



... 에이스가 있다.


그 옆에 호랑이도 있다.


호랑이가 날 응시하며, 경고차원으로 낮게 으르렁 거린다. 나도 마주하며 으르렁 거린다.


호랑이 주제에 나랑 몸집이 비슷하다. 아니, 조금 더 큰가.



'뭔, 호랑이가 뭘 먹고 이렇게 컸어? 쓸데없이.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살 것 같은 덩치야......'



덩치대로라면 단숨에 덤벼야겠지만 호랑이는 왠지 그러지 못한다. 본능 때문이겠지. 덩치는 작아도 호랑이를 압도하는 내 살기 덕분에 시간을 좀 끌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밑에 에이스다. 갓난아기인 에이스가 내 살기를......


내려다보니 놀랍게도 에이스는 웃고있다. 아무리 그래도 울지도 않다니... 아무튼 도움이 됐다.


... 호랑이가 지금은 못 덤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단순한 시간끌기다. 기싸움이지만 곧 저 호랑이는 덤비겠지. 처음봤기에 경계했지만, 처음봤기에 서열을 가려내려 할테니... 살기로만 느껴서 순순히 물러났으면 좋겠지만, 압도적인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여기는 호랑이의 영역이니까. 제 집이니까.



"나 참. 에이스, 넌 갓난아기가 어떻게, 어쩌다가 호랑이의 영역까지 들어온거냐. 깊숙히 있는 곳이라 기어오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 할테지. 그저 혼자 투덜투덜 거리면서 입으로 살짝 물어든다.


에이스가 버둥버둥거린다.



"어, 어이. 가마히 좀 이써......!"



입에 문 에이스 때문에 말하기도 힘들다.


그 와중에도 호랑이는 덤빌듯이 노려보며 근육이 수축되어있다. 이런...


......! 저쪽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그 여자애다. 일단 그 여자애에게 맡겨야겠다. 정 위험하다 싶을 때에는 직접 나서면 되니까.


잠시 버둥대는 에이스를 살짝 내려놓고 인간형 모습으로 변해 근처 수풀에 숨는다. 자칫 위험하다 싶을때 호랑이를 덮칠 수 있는 거리에.


드디어 여자애가 에이스를 발견한다. 입을 크게벌리고..



'꺄아아아아아아악!'



소근거리는 톤으로 소리없는 비명을 질러댄다. 에이스는 여자애를 바라본다... 그리고 여자애한테 기어간다.



"뱌?"


"오, 오지마. 에이스."



응...? 하긴 저 여자애도 꼬맹이니...



"호랑이를 자극하면 안 돼. 천천히... 가만히, 가만히 있어. 내가 직접 갈게 거기있어, 에이스."



아, 걱정하는 건가. 그치만 에이스가 알아들을 리 있나.


에이스는 알아듣지 못하고 기어가고 있는 중이다. 호랑이도 쫓아간다.



'이런.....!'



나가려는 찰나, 여자애는 에이스를 낚아채 안은 상태로 앞발을 피한다. 위태롭다.


하지만 나설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지금 나와서 호랑이와 싸우더라도 저 여자애와 에이스는 말려든다. 조금만 도망쳐서 거리를 벌려줬으면 좋겠다.


딱 세 걸음만 크게 뛰어주면 망설임 없이 쫓아가려는 호랑이의 목덜미를 찢어발길 수 있다.


하지만 여자애는 피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중이다.



'이런... 못 도망가는 건가!'



다리를 보니 서 있는게 고작이다. 이제는 피할생각 마저 없는건지 손을 들어올려...



"......!"



그리고 주먹으로 내려친다.....?!


호랑이 기절.



'무슨...?'



덩치만 집채만한 호랑이는 머리를 쥐어박힌 채 쓰러져있고 여자애는 냅다 줄행랑친다.


나는 잠시 이참에 호랑이의 목을 물어뜯어 버릴까 하고 고민했지만 관뒀다. 역시 영역관리는 귀찮다.



"저 여자애 덕에 기절해서 네가 산 거야. 고맙게 여기도록. 대신 이 정도는 받아가지."



나는 기절한 호랑이의 귀 한 쪽을 물어뜯었다.




* * *




호랑이 귀 맛없었지... 지금은 해변가다.


여긴 명당이다. 햇빛 덕에 모래는 반짝거리고 따뜻하다. 잠이 잘 온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조금 짠 비린내가 나지만 털을 간질거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


갈매기 소리에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여유로움도 좋다.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자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가 사이로 스며든다.


귀를 조금 더 기울이면 숲쪽에서 에이스의 옹알이가 들리는 듯 하다.



"에이스라..."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약속 때문이라도 지켜보고 있지만.



"네가 과연 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약속 때문에 자격이 있든 없든 지켜야하는 입장이지만.



"이왕이면 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으면 좋겠네."



아비보다 더 강인하고 올곧게 자랄 수 있을까?


조만간 여자애를 만나볼까... 그 아이는 어째서 에이스의 곁을 지키고 있는지. 단순히 얹혀사는 입장에서 돌봐주는 걸까. 아님,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지금까진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지만 만약,



"그 목적이 쓸데없고 하찮은 것이라면..."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다단 오두막집 근처다.


여자애는 나무 밑에 앉아있다. 에이스도 옆에있다. 수첩을 안고 무릎을 세우더니 고개를 들어 나무에 기댄다.


여자애는 에이스를 보더니 웃는다. 에이스도 웃는다. 둘이서 마주보고 웃는다. 말소리도 뚜렷이 들린다.



"에이스, 바꿀거야. 너의 삶, 너의 운명. 바꾼 댓가가 내 목숨이라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갓난아이에게서 뭘 보고?


그러다 내 기척이 느껴졌는지 두리번거린다.



눈이 마주쳤다.



조만간이라는 게 지금 당장이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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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4 17:48 | 조회 : 1,222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오타지적 환영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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