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패기수련

오늘도 역시 에이스를 돌보고있는 중이다.


오도도도하며 앞질러 기어다녔기 때문에 돌보는 역에 이어 잡는 역까지 늘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기쁜 건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단 점이다.


에이스는 내 머리카락만을 언제나...


... 입에 문다.


안고있으면 매일 잡아당기거나, 입에 넣고 씹고 빨고 한다. 덕분에 내 머리에서는 에이스의 침이 마를 날이 없다. 물론 덤으로 침냄새까지.


그런 날 보다못한 다단이 나섰다.



"어이, 리엔. 잠시 와 앉아라."



언젠가 이리 말하더니 직접 가위를 들고 남자아이 머리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싹둑 잘라버렸다.


공부할 때 방해된다는, 자르라는 엄마 말에도 꿋꿋이 기르던 머리라 아까웠지만 내 머리카락이 아까운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에이스. 에이스는 내 머리를 허우적 거리며 손을 놀리다 잡히는 게 없자,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이스는 어릴 때부터 남 달랐다. 포기할 줄 몰랐고 고집도 셌다. 에이스는 굴하지 않고 내 앞머리를 붙잡았다.


그렇지만, 짧아서 빨 수는 없었고 그저 잡아당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다행이었달까, 일단 반은 성공했으니까.



패기 단련은... 진전이 좀 있었다. 성공은 했지만, 완벽은 아니었고, 다듬어야 할 부분들도 많았다. 사소한... 문제점도 있다.


일단 견문색 패기. 가장 쓸모가 있다.


견문색 패기로 에이스가 잠시 눈 앞에서 사라져도 기척이나 특유의 소리로 금방 어디있는 지 찾아낼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에이스가 도움이 되었달까...


장황하게 설명하자면... 에이스와 나와의 거리를 재어 측정하고,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붙잡을지 셈하고 계산해 정확히 낚아 올린다.


이걸 하루24시간 매일매일 반복한다. 심지어 잘 때도 깊게 잠들지 않고 긴장한 채 잠드니, 재능이 없어도 늘지 않을 리가 없다.


아, 그리고 역시나 했지만, 패왕색 패기는 없었다. 당연한 거였다. 사람을 이끄는 건 애초에 내 성격상 아니다. 타고나질 못했다. 리더십... 친구 한 명 사귀귀도 힘든 재주를 가졌는 걸..


아무튼 패왕색의 패기는 없었지만, 무장색 패기는 있었다. 사소한 문제점이 있다면 발전이 없단 정도. 거의 본능적으로 기를 움직여 발견한 이후로 한 번도 써보지도 못했다.




* * *




"... 에이스가 어디갔지? 견문색으로는 이 근방인데. 기척이... 좀 더 세심하게 단련해 둘 걸."



아무리 둘러봐도 우거진 나무와 내 키를 넘는 풀들도 있기에 찾기가 쉽진 않다. 측정하고 계산하는 것도 일단 보여야 가능하다.



"이걸로 공격을 미리 예측도 한다 그랬나?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깊게 다루는거야? 역시 실전 바탕인가? 막 치고 받고 싸우는..."



아무튼 이 근방이었으니 뒤져보면 나오겠지만 좀 서둘러야 할 듯 하다.



"견문색 패기를 지금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좀 더 연습해 둬야겠어. ... 이런 식으로 아기 찾는데 써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겠지."



말로 투덜거리면서도 손은 빠르게 수풀과 나무 근처를 헤집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조급하게 서두르는 이유는... 이곳이 맹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곰과 호랑이 악어... 내 세상에선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자연에 잔뜩 널려있다.



"아아아아, 이 근처인 건 확실한데. 왜 이리 조용하지? 이 시간은 낮잠을 잘 시간도 아닌데... 그나저나, 난 에이스 '오빠'를 원했지, 에이스 '아들같은 동생' 을 원한 게 아니란 말야. 뭐, 그래도 미래를 바꿀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해야겠다만..."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불안하다. 아까, 에이스를 찾으려고 견문색 패기를 썼을 때, 맹수로 느껴지는 기척과 특유의 소리...... 둘이나 있었다.


계속 몇 미터 근방을 헤집고, 찾아댔다. 그렇게 찾는 것이 지쳐갈 즈음.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앉았다.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킨다.


찾고나서 울자. 찾고나서 울자. 찾고나서, 다친데 없는지 확인하고, 안심해 울자. 지금 울어봤자 찾는 데 독이 될 뿐이다.



"하아아, 에이스... 어디간거야. 너 원래 이렇게 힘든 애였니... 빨리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까지 커라...... 몰랐어. 다단이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



그도 그럴것이 다단이 아기 때부터 키우는 장면은 잘 없었으니까. 한 번에 스킵되었다고 하나...?


나는 그루터기 위에서 무릎을 세워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 힘드네..."



그리고 동시에 다시 견문색 패기를 쓴다.



.......!


어...! 저 쪽에....?!


벌떡 일어났다.



"에이스--!"



아니나 다를까 에이스가 있었고.. 그 앞에는 원치 않았던 불청객까지 있었다.


호랑이.


그러고 보니, 이 근방은 호랑이의 영역이었다. 약 호랑이의 대 여섯배 되어보이는 크기였다. 굳이 말하자면 에이스를 한 입에 넣고도 어느정도 남을 수 있는.



'꺄아아아아아아아악!'



'헉' 하는 느낌에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에이스는 소리를 들었는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던 호랑이를 앞에두고 옆을 돌아본다. 아무리 말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라지만, 그래도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나?


어떻게 안울고, 저렇게...



"뱌?"



순진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눈을 맞춘다. 그리고...... 날 향해 오도도도 달려... 아니, 기어온다.


자, 잠깐......!



"오, 오지마 에이스!...... 호랑이를 자극하면 안 돼. 천천히... 아니, 아냐. 가만히, 가만히 있어. 내가 직접 갈게. 거기 있어 에이스."



하지만 갓난 아기인 에이스가 알아들을 리 없다. 오히려 반가운건지 더 빠르게 온다. 호랑이를 자극했는지 호랑이도 다가온다.



"꺄아아아악!"



이번엔 아예 비명이 목 밖으로 터져나온다.


나는 달려가 중간에 에이스를 낚아채 안는다.


그리고 견문색으로 이리저리 피한다. 호랑이가 발을 치켜든 각도, 꺾이는 관절,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 눈으로 미리 계산하고 예측해 본능적인 감으로 피한다.


한 대라도 맞으면 골로간다!



"으어어어.....!"



몸을 한계치까지 뒤틀며 간신히 피하기에 눈 앞으로 호랑이의 앞발이 스친다. 귀 옆에도. 하마터면 에이스한테도 해가 갈 뻔 했다.


하지만, 내 감각이 늘은 것이지 절대로 체력은 늘지 않았다. 이빨이 다가오는 순간, 피하지 못한다. 에이스가 위험해진다.


그 순간 눈을 질끈 감는다.


에이스를 안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고 기를 감은 채 힘껏 내려친다.



"저리가아아!"



퍽.



... 어쩐지 꽤나 묵직한 타격감에 눈을 떠보니 호랑이는 주먹에 맞아 기절해있었다. 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무장색이었다.


물론 힘은 그대로고, 기만 옅게 두른 것이기해 힘이 많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무장색 패기를 둘렀다. 패기의 강도는 확실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약한 힘으로 엄청 단단한 돌을 내려친 거랄까.


게다가 먹잇감이 반격할 거라곤 생각 못하고 방심했겠지.


덕분에 에이스와 나는 살아남았고...... 호랑이도 살아있다. 패기를 둘렀다 해도 내 힘 자체가 그리 세지 않으니 몇 분 뒤면 깨어날 거다.



"...... 영역에서 빨리 나가자, 에이스."



하지만 에이스는 호랑이에 미련이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내 품에서 버둥버둥거린다.



"어우으으으으!"


"에이스 좀만 더 크면 원작대로 호랑이 잡게 될 거야. 그러니까. 빨리 조용히 나가자?"



불안하다. 여기는 영역이 부딪히는 곳이 아니다. 온전히 호랑이의 영역 안이란 말이다. 곰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아까 맹수의 기척은 둘이었다.


이상했지만, 한 팔에 에이스를 안은 채로 알아보겠다며 위험 속으로 뛰어들을 순 없다.


그래도 어쨌든 그렇게 무장색 패기, 써버렸다.




* * *




문제는 그때 쓴 무장색 패기...... 지금은 쓸 수가 없다는 점이다. 상황이 상황이라 쓰게 된 건가..?



"한 번 더 호랑이를 만나야 하나...?"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미쳐가나 보다.



"운이 좋았어... 두번 째로 만난다면 놈도 신중해질테고, 난 골로 가겠지."



그나저나.. 정말 그때 그 맹수는 뭐였을까. 내가 잘못 느낀 걸까?


모르겠다. 내가 계속 이 세계에 있는 이상 다시 마주치겠지.이내 머릿속에 걸리던 생각을 치운다. 만나고나서 걱정하자.



... 조용히 펜을 들었다. 깃털 펜.


정말 만화에서만 봤던 거다. 잉크를 계속 찍어 사용해야 되는 것과, 종이의 질이 안 좋아서 번지는 느낌이 좀 나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기록할 수 있는 필기구는 이것 뿐. 이것마저도 처음 온 날 다단에게 졸라서 겨우 용돈을 받아 산거다. 집안일을 돕는다는 조건으로.


수첩. 잉크. 펜. 이 세가지를 사며 용돈을 받는데에 집안일을 하는 건 좀 불리하다 싶지만... 내가 살던 곳과는 달리 이런 필기구는 꽤 나름 비싼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방이라도 잊어버릴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잊어가기 전에 이야기의 큰 흐름과 윤곽을 정리하고, 하나하나 세세히 원작을 떠올리며 적어 내려갔다.


한글로 정리했지만 글은 번역 될 것 같지 않다. 한글 그대로 쓰이는 거다. 영어로 쓸까 했지만 영어는 이곳에서도 공용어다. 사람들한테 들키면 곤란해진다.


괜찮다. 영어 잘하니까. 영어를 읽고 번역하는 건 아무문제 없다.



"말하는 것마저 영어로 해야만 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말하고 듣는 건 알아서 번역되니 다행이다. 나는 한국어로 듣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듣고 말한다. 위화감도 거의 없고, 그들도 느끼지 못한다.


혹시나 해서 영어로 말해봤지만, 영어로 말해도 대화가 된다. 그저 내가 힘들 뿐. 그들한테 어떻게 들리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나는 새끼 손가락 손톱의 4분의1 만한 크기보다 더 작게 수첩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만, 아까운 수첩은 벌써 거의 채웠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 전부 다 적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원작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리고 맨 뒷장에 에이스ㆍ사보ㆍ루피 의 어른 모습을 그렸다. 셋이서 웃고있는 모습.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 헤어진다. 서로 다시 만났을 때 웃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 바꾸고 싶다. 그렇게 되면 누가 해적왕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딴 건 누가 되든 상관없다.



"바꿀 수 있을까..."



사보와 루피는 살지만 에이스는 죽는다. 셋이 같이 있을 수 없다.


금방 눈물이 차오른다.


눈에 눈물 때문에 에이스의 웃는 얼굴 그림이 흐려진다.


수첩에 이마를 맞댄다. 그리고 눈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미소짓는다.



"안녕, 에이스..."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바꿀 수 있는데 슬픈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



황급히 노트를 닫고, 노트를 감싸 앉는다. 나무에 기대앉아 무릎을 세운다.


눈물을 흐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든다.


에이스가 옆에서 날 쳐다본다.


이런... 내가 우는 걸 눈치 채버렸다. 같이 울 듯 울먹거린다.



"우으으우으으으으으..."



나는 다시 활짝 웃는다. 에이스도 따라 활짝 웃는다.



"약속할게 에이스. 바꿀거야. 너의 삶, 너의 운명. 바꾼 대가가 내 목숨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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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3 17:02 | 조회 : 1,388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오타지적 환영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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