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그 요괴의 사정(2)

"그 쪽에도 링거 추가해."



그는 바늘을 뽑더니 내 팔목에 갔다 댄다. 여자는 반대 쪽 팔목의 혈관을 찾아 주삿 바늘을 꼽는다.


아....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바늘이 시리도록 차갑다.


누워서 링거의 액체가 내 몸 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팔뚝이 간지러웠다. 실제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거부 반응이 조금 있는데요."


"이 정도는 괜찮아. 여기서 조금 더 심해지면 문제겠지만."



약물을 투입할 때 외에는 무언가를 항상 시켰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형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복사' 혹은 '둔갑' 이라고 칭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여자와 접촉과 동시에 변하고자 마음을 먹으니 여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기분은 어때? 넌 최초로 열매의 능력을 썼음에도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고."


"잘 모르겠어요."


"아니지 복사복사 열매는 멀쩡히 있으니까. 열매 능력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네. 뭔가 감각은 어때?"


"아파요. 뼈도, 근육도 아파요."



아프다. 처음 변신했을 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로 온 몸이 아팠다.


그때도 그들은 경과를 지켜보다 괜찮다 싶었는지 조금 진정됐을 때 실험을 진행했었다.


그나마 지금은 익숙해졌는지 바닥에 쓰러져 헉헉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갈 기록하다 날 살피며 말한다. 나에게 거는 말이라기 보단 실험의 결과를 요약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프다라... 열매 능력자가 능력을 쓸 때마다 아프단 소리는 못들어봤는데. 뭐, 넌 완벽한 능력자는 아니니까. 아니지 사용된 열매도 버젓이 있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으니 악마의 열매 능력자라고 하기 보단... 그냥 네 고유의 능력이라고 하는게 맞겠지."



실험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그 다음 날에도, 그 다다음 날에도 여전히 주삿바늘이 내 몸을 휘저었고, 나는 여자와 남자로 번갈아가며 둔갑했다.


남자는 여전히 실험에만 몰두하며 무뚝뚝했고, 여자는 간혹 비뚜름하게 웃으며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게 '친절' 인 줄로만 알았다. 어쨌거나 무시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몇 번이라도 말을 걸어줬기에.



"오늘은 혈관이 아니라 골수에 투입해 볼 거야. 조금 더 아플지도 모르겠네."


"실험체에게 너무 정 주지 마라."


"하하, 정이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박사님, 한 명 쯤은 당근을 줘야 오래 버티죠."



당근을 준다는 말은 무슨 뜻 일까. '친절' 이라는 의미일까?


의미 없는 말을 머릿속에서 되뇌이며 나는 딱딱한 책상같은 침상에 몸을 뉘인 채 옆으로 돌아누웠다.



푸욱.



링거의 주삿바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주삿바늘이 내 허리부근을 찌른다.


몇 십초가 흐른 뒤, 이내 주삿바늘이 내 몸을 빠져나간다.



"경과는?"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는 지나야 알 것 같아요."



머리가 아프다. 속도 울렁거린다. 남자와 여자가 뭔가 더 떠들고 있는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로 밖에 안들린다.


나는 애써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깨기 전에 투입했던 괴수의 골수죠?"


"그래. 괴수치고는 꽤 미형이었지. 오히려 거대한 짐승같은 느낌이었어."


"소량을 투입했는데도 머리칼이랑 눈동자 색 그리고 송곳니가 자라 날카로워졌어요. 근데 이 정도 양이면..."


"복사복사 열매는 이걸 위해서였으니까. 투입한 약물 뿐이지만, 이때까지 잘 복사한 걸 보면 그것도 복사할 수 있겠지. 굳이 접촉이 필요 없어. 성공만 하면 그 국가 하나를 휩쓸어버렸던 거대한 괴수를 되살릴 수 있다고!"



남자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여자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는지 계속해서 내 모습을 살폈다.


하지만 이내 실험실을 나갔다. 기대가 넘친 나머지 광기에 찬 얼굴을 보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볼 줄 알았지만 남자는 하루 정도는 필요하다 여겼는지 나갔고, 여자는 실험실에 남았다.



"나도 나갈 줄 알았어? 걱정마. 시간마다 기록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변수라도 생겨 망치면 다시 해야될 텐데, 기록이 제대로 바쳐줘야 재실험을 할 수 있으니까."


"아파... 무서워...... 살려주세요."


"죽일 생각은 하나도 없어. 죽지 마, 절대 죽지 마. 악착같이 버텨. 난 이때까지 쏟아부은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재실험은 곤란해. 네가 진도가 가장 많이 나갔어. 그러니까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처음이 아니라고? 나랑 비슷한 처지를 가진 이가 더 있다고? 하지만 실험실에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전의 실험체는? 실패한 실험체는 다 어디간거지? 실험에는 실패했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 어디?"


"뭐?"


"이전에... 실패한... 실험체, 어디?"



고통에 목소리가 잠기고 말이 끊겼지만,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하는 듯 했다.



"흐음... 이걸 말해주는 게 네가 버티는 게 도움이 될까... 어때, 궁금해?"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어떤 이야기든 듣고 싶었다. 그만큼 버티기가 버거웠다.



"죽었지, 180명 정도 전부. 열매도 없었을 때고, 그들은 처음부터 희석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받아들였거든. 지금의 너처럼. 그 죽은 자들은 다 어디있는 줄 알아?"



여자는 빙글거리며 유리문으로 가까이 왔다. 조금 전까지 내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이젠 여자의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자는 허리를 숙이며 침상을 벗어나 몸을 잔뜩 구부리고 주저앉은 나와 시선을 맞춘다. 즐거운 듯 해맑은 얼굴이었다.



"모두 네 몸 속에 있어."


"... 뭐?"


"네가 처음 깨어나기 이전에, 소량으로 투여했지. 전부 죽었던 그들에게서 체취했기에 충분히 희석되었고 넌 살아남을 수 있었던거야. 그러니까 네 목숨은 180명의 이들을 짊어진거야. 그러니까 버텨."



고통 속에서 버티고 버틴 무언가가 툭 하고 끊긴 느낌이었다. 뭔가 이제 더 이상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느낌이었다.


온 몸이 뒤틀리고 돌아오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몸이 부풀고, 입이 길게 찢어지고, 이빨과 손톱 발톱이 길고 날카롭게 자랐고, 네 발 임에도 머리는 2미터 가까이 되는 천장에 닿았다.


새하얀 털을 가진 거대한 짐승.


여자는 벌써 결과가 나올 줄 몰랐는지 미소가 사라졌다.



* * *



"하아..."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서 피투성이 손을 털었다.



"붉네."



하늘도, 내 손도.


내 밑에는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건물에 깔린 누군가의 손이 삐죽 나와있었다. 나는 그 건물 잔해에 털썩 앉았다.



"뭘 하면 좋을까."



중얼거리며 내 몸에 걸친 옷을 바라봤다. 하얀색으로 된 원피스. 실험실에서 입고있던 옷 그대로였다. 역겨웠다.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옷부터 바꿔야겠네."



천천히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키고 계속 걸었다. 필요하면 괴수로, 다른 동물로, 인간으로 모습을 계속 바꿔가며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을 때 드디어 사람들이 사는 곳에 왔다. 옷은 이미 넝마가 되어있었고, 넝마로 옷가게에 들어가봤자 쫓겨날 게 뻔했기에 근처 빨래를 널어놓은 곳에서 대충 훔쳐입었다.


그 다음에는 배고픔에 아무 음식점에 들어갔다.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내가 들어간 곳은 주점이었고 험악한 아저씨들이 어리다는 핑계를 들어 시비를 걸어왔다.



"어린 놈이 주점에 들어오고 말야."


"낄낄낄, 가만 있어봐.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보호자도 없이고. 팔면 딱 괜찮게 값을 받을 것 같은데? 그 높으신 귀족 나리들께 말야."



그 말과 동시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보면 주점에 있는 모두가 한패인 듯 했다.


나는 단숨에 그들을 제압했고 근처 정부 기관에 넘겼다. 운좋게도 그들은 현상금이 걸려있었고 묵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옷과 무기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이 떨어지고 필요하다 싶을 때, 현상금이 걸린 이들을 정부에 넘겼다. 그렇게 필요하면 쓰고 부족할 땐 사냥을 했다.


잠조차도 밤이슬을 맞지 않을 만한 동굴 같은 곳에서 체온 유지가 잘 되는 괴수로 변해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했을 때, 로저가 찾아왔다.


그는 한창 떠오르는 신인이었고, 적지만 그를 신뢰하는 동료가 그의 옆에 있었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며 동료가 되어달라 청했다.


그는 현상금 사냥꾼인 나를 향해 웃으며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너, 내 동료가 되라!"


"... 난 현상금 사냥꾼이야. 여차하면 널 넘길 수도 있지."



그를 넘긴다는 말에 주변의 동료들이 움찔하며 여차하면 무기를 꺼내들 듯 긴장한다. 그는 동료들을 진정시키면서도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네가 누구든 뭘 하든 상관없어. 판단은 내가 해."



내가 이때까지 상대하던 현상수배자들과는 달랐다. 올곧았다.


그가 꺼려졌다. 정확히는 싫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을 그가 갖고 있다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앞으로도 그는 더욱 반짝이겠지.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을까. 그는 나와는 다르게 꿈과 목표가 있다. 곁에 있어봤자 질질 끌려갈 뿐이겠지. 버틸 자신이 없다. 그와 나는 다른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니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꺼져."



몇 십년이 지난 뒤, 해적왕 로저가 잡혔다는 소식이 온 세상에 떠돌았다.




* * *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의 전부야, 로저."



로저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웃음을 터뜨릴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히려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어가는 그가 고마웠다.



"너도 꽤 힘든 삶을 살아왔구만."


"너에게 들을 말은 아닌데."



나는 바로 반박한다. 로저는 한차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잇는다.



"그래도 난 나의 삶에 만족한다. 적어도 내가 결정한 일에 후회해 본 적은 없지. 너도 그런가?"



그 말에 나는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 아니."



로저는 다시 한참 웃다 진지하게 말한다.



"그런 자네에게 미안한 부탁이네만, 그래도 내 아이를 부탁하네."



끈질기군. 어차피... 할 것도 없고. 이번에는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 들어주도록 할까.



"... 그러지, 뭐. 장소는?"


"사우스 블루의...... '바테리라' 라는 섬이다..... 고맙군."



로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씨익 웃었고, 나는 조용히 감옥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 온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최악의 해적왕이 처형되었다.



* * *



"포트거스 .D. 루즈. 해적왕의 아이를 품고 있는 여인."



나는 지금 루즈의 집 앞에서 루즈를 마주보고있다. 루즈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돈다.



"... 누구시죠."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루즈... 로저의 부탁으로 아이를 보호하러 왔다."



로저의 아는 사람이니 만큼 바로 경계를 푸는건가? 루즈의 얼굴에는 경계의 빛이 사라지고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짓고있다.



"그 이는 돌아오지 않겠죠..."


"죽었으니까."



루즈는 아이를 위해서인지 동요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담담하다. 마음속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냥 참고있는 거구나.



"당신은... 인간인건가요?"



예리하다. 아니면 그렇게도 이질적이게 느껴진건가?



".... 요괴다."



그 말을 마치자 마자 모습을 변형시켜 괴수 모습을 보여준다. 흰색털이 바람에 휘날린다. 짐승에 가까운 모습.



".....!"



놀라는 루즈.



"이 모습도 아까 모습도 전부 나야. 내 모습들이지. 무섭나?"



루즈는 잠시 놀라다가 다시 돌아온다. 미소짓는 얼굴로.



"아니요."


"... 그런가."



배짱 좋은 여자다. 이미 굳게 마음먹은 이상, 아마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무서워하지 않겠지.



"... 부탁이 있는데요."



루즈가 내 머리의 이마 부분을 껴안으며 눈을 맞대고 말한다.



"사진... 찍어도 될 까요? 아이를 지킬 분이 생기니 남기고 싶어져서요.."


"... 그러던지."



루즈는 특유의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위험 할까봐 사진 한장 남기지 않고 있었던건가... 그녀답다.


사진기는 몰래 해군에서 훔쳐왔고... 찍힌 사진에는 내 동물형 모습과, 루즈의 모습이 찍혔다.




* * *



약 20개월간 루즈의 근처에서 루즈를 지켰고, 곧 거프가 왔다. 나는 모습을 감춘 채, 멀리서 루즈와 거프를 지켜봤다.


루즈는 에이스를 마지막 힘을 다하여 출산하고, 하혈을 하고 죽었다... 마지막으로 에이스와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은 채.


옆에서 울고있는 에이스는 거프가 데려간다. 루즈가 마지막까지 들고있던 사진 한 장도 함께.


나는 루즈가 아닌, 에이스를 부탁받았다. 난 거프를 몰래 뒤쫓았다.


그리고 풍차마을에 도착했을 때, 거프는 코보로 산을 올랐고 나는 다단이 사는 산 어귀 근처에 내 거주지를 만들었다.



약속대로 에이스를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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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2 08:07 | 조회 : 1,399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이 편은 신이가 트립되기 이전, 에이스가 테어나기 전의 만남 입니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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