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그 요괴의 사정(1)

"날 알고 있는 몇 안되는 녀석들이 날 요괴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살짝 달라. 편의상 요괴라 했지만, 글쎄. 사실 나도 내 종족이 뭔지는 잘 몰라. 어쩌면 인간이었는지도 모르지."


"......"


"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이름부터 할까. 로저, 내 이름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페일."



소년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그에게 물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며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fail 이라는 뜻이야."


"... 뭐? 잠깐,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세상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확히는... failure subject."



로저는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문다. 무슨 뜻인지는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실패한 실험작."



착각일까, 입꼬리를 말아올린 소년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 * *




눈을 천천히 떴다. 보이는 거라곤 3면의 새하얀 벽과 1면의 유리벽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이 나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름, 나이, 과거. 무언가 동떨어진 느낌.


아무것도 아는 게 없기에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두려웠다.



"일어났군. 기억나는 건?"



안경을 쓰고 마른 체형의 중년 남자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말을 처음 듣는 기분이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자의 옆에는 남자보단 젊어보이는 단발의 여자가 팔짱을 낀채 묻는다.



"말은 못하는 걸까? 잘못되지 않았으면 가능할텐데."


"...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말을 한지 꽤 됐는지 혀가 텁텁하고 목소리가 탁했다. 그럼에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에요. 악마의 열매의 힘을 일부 복용하고도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바다에 전혀 거부반응이 일지 않았어요."


"...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지. 과연 모습이 변하고 난 뒤에 다시 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살짝 신경질적인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실험체라는 건 나라는 건가? 나는 만들어진 생명체인가? 아니면 그냥 생명체에 실험을 한 건가?


내 손을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자, 여자가 눈치를 챘는지 유리문 쪽으로 다가온다.



"궁금한거라도 있으려나?"


"나는 뭐지?"


"흐음... 뭐라고 대답해 줘야할까?"


"인간이... 맞아요?"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마치 억지로 짓는 웃음처럼.



"우린 아직 생명을 '창조' 하진 못해. 그저 비슷하게 흉내를 냈을 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넌 다 죽어가는 꼬맹이었지."


"그럼 난 인간..."


"그럴까? 넌 이곳에 왔을 때, 갈색 머리와 벽안을 가진 아이였어. 지금 넌 백발에 금안을 가졌지. 무엇보다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니?"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다.



"인간이었을 적의 모습도 없고,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도 없는 상태인데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인간인 우리조차도 널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는데."



여자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저 지극히 사실만을 말할 뿐이었다.



"실험체한테 이상한 감정 심어주지마. 실험 계속 진행해야되는데 변수가 생기면 어쩔꺼야?"


"제가 이런 논리적인 토론 좋아하신다는 거 알잖아요. 가뜩이나 이런 외딴데에서 실험하느라 골이 빠지겠구만."



남자는 파일에 끼인 종이를 넘겨보며 한마디 했다.



"그 열매는 있던 자리에 도로 갔다놨지? 그 열매는 더 이상 필요 없어 다른 인간으로 둔갑하는 건 문제 없어보이니까."


"좀 아깝긴 한데. 팔면 안되나요?"


"정신차려라. 우린 지금 숨어있는 거니까. 악마의 열매같은 거물을 파는 순간 추적들어가면 우린 끝이다."


"그런 거라면 실험이 끝나고 팔아도... 복사복사 열매 정도라면 쓸모없는 것도 아니니 꽤 값이 나갈 텐데."



여자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칭얼거렸다.



"실험에만 집중해라. 그깟 것에 정신 팔지 말고."


"알겠습니다아! 근데... 너무 욕심 아닐까요?"


"확실히 이 이상은 욕심일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직 끝을 보지 못했어.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아. 지금 실험 결과가 좋을 때 탄력받아 최고든 최악이든 끝까지 가봐야지. 그래야 다음에 다시 실험을 하더라도 발전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제멋대로 떠들다가 실험실을 나갔다. 그렇게 깨어난 첫 날 이후로 지옥같은 날이 펼쳐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 그랬던 것처럼 깨어나지 않았을 때 실험이 이어지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처음 본 그들은 내 생의 전부였었다.

2
이번 화 신고 2018-02-01 15:54 | 조회 : 1,434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이 편은 신이가 트립되기 이전, 에이스가 테어나기 전의 만남 입니다!ㅇㅅㅇ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