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로저와 요괴소년의 만남

감옥 안.



"... 거프 믿을 수 있겠나, 거프. 아기가 태어날거다. 이 나에게."



어둠 속에서 미소 짓는 로저. 그의 앞에는 해군영웅 거프가 램프를 들고 서있다.



"아쉽지만, 그 때에는 난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


"해병인 나에게 그걸 말해서 어떡하나, 로저!"



해군의 입장인 거프는 버럭 화를 냈지만 마저 말을 잇는 로저.



"그 어머니인-"


"너에게 관련되어 있는 여자는 극형일게 당연하지 않나!"



로저의 말을 끊는 거프. 하지만 로저는 담담하게 말 할뿐이다.



"그래서 너에게 말한거다, 거프."


"이, 이익..!"


"정부는 반드시 이 1년의 접촉을 화제로 삼아 그녀를 찾아 죽이겠지. 하지만, 태어날 아이에겐 죄가없다. 거프! 우린 서로 몇 번이나 죽이려 했던 사이지 않은가. 나는 너라면 동료와 똑같이 신용할 수 있다."


"이익...!"



한 껏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로저. 거프는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네가 지켜라."



그 한마디에 흥분해, 철장을 잡으며 소리쳤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아니, 말해주지, 내 아이를 부탁한다. 거프."



특유의 함박웃음을 짓는 로저. 그 해맑은 모습에 홀린듯이 당황하면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거프. 혼란스러운 얼굴로 문을 나간다.




* * *




잠시 후.


수갑을 차고있는 그의 앞에 나타난 하얀물체. 그가 고개를 들어 사람 형태가 되어있는 흰 물체를 바라본다.



"왔는가. 하얀 야차."


"별로야, 그 별명."



어느 새 그의 앞에는 열 서너댓 살의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소년은 달 빛이 없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도 은은히 반짝이는 흰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더욱 신비하면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보였다.



"모습은 그대로구만. 꽤 새월이 지났는데, 전혀 변하지 않았어."


"뭐, 그렇지."



무심한 목소리와 표정은 차가워보이는데 한 몫 했다. 어린 소년의 목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차가운 목소리다.


무심한 목소리였지만 이어지는 소년의 다음 말은 차가움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원한다면 내가 구해줄 수 있어, 로저. 지금당장."



여유로운 표정과 목소리. 조용하고 나직했지만 분명하게 감옥을 울렸다.


그에 피식 웃는 로저.



"아니."



그와 동시에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짓는 소년.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나직히 묻는다.



"... 건강 때문에?"


"그것도 있고."



소년은 흥미롭다는 듯이 빙글거리면서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죽음으로 새 시대를 여는 시작이 되어,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남고 싶어서?"



그 말에 당해낼 수 없다는 로저. 씨익 웃는다.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어, 흐흐흐."



소년은 잠시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본다. 로저도 잠시 아무말 않고 소년을 응시한다. 눈빛으로 무언의 무언가가 오고갔을 때, 로저가 입을 연다.



"페일. 내 아이를 부탁하네. 아까 거프에게 말했듯이 곧 태어날 아이에겐 죄가 없으니까."



웃음을 짓고 있던 소년이 다시 여유로운 무표정이 된다.



"거프녀석을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 그는 내가 더 잘 알아. 아이를 해치진 못할거야. 그런 녀석이니까. 문제는 그 녀석이 해군이니까. 곤란한 일이 생겨버릴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할 일도 분명 생길거야. 그 때를 대비해 부탁하는 거야."


"철저하군."



그 말에 너털웃음을 짓는 로저.



"아아, 부모 된 마음이랄까. 넌 부모가 없나...?"



부모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소년. 하지만 다시 여유로워보이는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있든 없든 지금은 중요한 건 아니지."


"죽은건가?"


"글쎄."


"이거이거 슬픈데... 내가 부모노릇 한 번 해줄까."


"감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을 놈이 농담할 여유는 있나보군?"



작게 실소하는 소년. 그에 조금 더 진지해지는 로저.



"아무튼 내 아이를 지켜주겠다는 것에 대한 대답을 아직 못 들었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차갑게 대답하는 소년.



"그건 아까 거프에게도 제대로 못 들은 대답 아닌가."



그 말에 다시 쿡쿡 웃는 로저.



"그 녀석은 못 들은 척 하지 않을거다. 그런 녀석이니까. 하지만 넌 제멋대로에 전혀 예측할 수가 없는 행동들이 많았으니까. 성격도 행동도... 자유로운 구름같이. 얽매인 것도 얽매이지 않은 것도 아닌. 하지만 약속 하나는 한번 하면 잘 지켰으니까... 나는 그 점이 맘에들어서 동료 제안을 했던 것인데... 결국은 실패했지. 그러니까 이번엔 꼭 약속을 받아야겠다. 하얀 야차!"



잠시 굳은 소년의 얼굴.



"... 화난건가? 내 아이를-"


"화 안났어."



로저는 잠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다. 소년이 다음말을 하도록 묵묵히 기다린다.



"넌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야."



로저는 '왜' 라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인가?"


"그것도 있고, 너도 알지 않나 로저. 그저 너에 대해서만 말해도 악마. 악귀라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인간. 소리를 들을 텐데. 아이는 어떨까. 아버지란 작자는 하루라도 더 살아남을 생각은 커녕 최악의 해적왕으로 남을 생각 뿐이라니."



소년은 숨이 찬건지 잠시 말을 멈춘다.



"로저, 너는..."


"물론 아이에 대해선 할 말이 없군. 어떤 변명을 할 생각도 없어. 내 아이니까 잘 견뎌주길 바랄 뿐.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해군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자수하는 게, 죽음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며 당당히 선포하는 게 덜 비참하지 않겠나?"



웃으면서도 진지한 그의 말에 소년은 잠시 눈을 감으며 말을 잇는다.



"글쎄, 잘 이해가 가진 않아. 자식도 없고, 죽음도..."



눈을 감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로저.



"믿을 게 너 뿐이다. 뿔뿔이 흩어져 제 삶을 살아가는 동료들에게 그들의 삶을 포기하게 하면서까지 부탁할 순 없어."


"내 삶은 어떻게되든 상관없다는 뜻인가?"


"아니, 그 반대야. 조금이라도 삶의 목표를 부여해주는 것."



눈을 뜬 로저. 마치 본인이 살아가는 것처럼 의지가 가득한 눈빛이다.



"자네는 너무 죽어있어. 내가 왜 하얀 야차라고 부르는 지 아나?"


"그쯤 해둬."


"평소에는 산시체처럼 무감각하다가 전투를 할 때만 눈에 생기가 돌아. 살아있는 걸 느끼려는 것처럼."


"그만!"



소년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눈빛은 그대로 고요했다.



"넌 예전부터 특이했지. 신원도 나이도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맞아."



아무렇지도 않게 수긍하는 소년.



"과거에 대한 얘기도 극도로 꺼려했고. 그래서 내 동료들은 널 그닥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나는..."


"궁금해?"


"......!"


"알려줄까?"


"... 알려 줄 텐가?"



로저의 눈빛이 살짝 떨린다. 소년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감옥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댄채 팔짱을 꼈다.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내일이면 죽은 목숨 일 테고, 거창한 것도 없어. 오히려 단순하고 재미도 없어서, 왜 이런 걸 들으려 했나 후회 할 지도 모르지. 그만큼 그저 그런 얘기야."


"재미가 있고 없고는, 내가 듣고 판단하지."


"뭐, 좋아. 정 그렇다면야."



소년은 과거를 회상하려는 듯 샛노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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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31 22:48 | 조회 : 1,663 목록
작가의 말
나른한 고양이

이 편은 신이가 트립되기 이전, 에이스가 테어나기 전의 만남 입니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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