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에이스가 반길 집을 생각하며 현관문을 돌린 마르코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집안은 캄캄한 어둠이 깔려있었고 차가운 공기만이 씁쓸하게 반겼다. 에이스가 없음을 확인하고 방으로 돌아가 넥타이를 풀었다.

'어딜간거지? 이 시간까지 밖에 있은 적은 별로 없는데.'

욕실 바구니에 옷을 던져넣고 차가운 물이 살갗에 닿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감각이 오늘도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조금 오래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 때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물줄기를 약하게 만들었다.

"에이스?"

"응. 마르코가 먼저 왔네. 옷 갈아입고 올게."

타박이며 걸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게 식었던 몸이 미지근해져갔다.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바로 에이스의 방을 찾았다. 그는 이제 막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입었던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풀석

주인의 허락도 없이 녀석의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어디갔다 오는거야?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었던 적 잘 없잖아."

"대학 들어가라며. 공부하고 왔어."

에이스는 여전히 옷가지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돌아온 후 나와 제대로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심술이 났다.

'얼마나 보고싶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계속 자기 할 일만하고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준다 이말이지?'

"이리와."

에이스에게 손을 내밀자 그가 쭈볏 손을 마주잡으며 순순히 옆에 앉았다.

"나 좀 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에이스가 느리게 고개를 들어 간신히 눈을 맞춰왔다. 귀가 빨갛다.

"풋"

다시 고개를 숙여버린 에이스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웃지마."

품에 안긴 녀석의 얼굴이 더 빨갛게 변하며 작게 반항을 해왔다. 그러나 벗어날 수는 없었다.

"푸흐흐 아, 좋다."

"널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푸덕이던 에이스의 움직이 멈췄다. 대신 나이트가운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자자."

"뭐?"

에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다시 그를 꼭 끌어 안았다.

"자자고."

"자, 잠깐만!"

그대로 이마에 입술을 찍고 눈가에도 입을 맞추었다.

*

"너무 그렇게 '나 행복해요.' 하고 티 내고 다니진 마."

"그렇게 티 나?"

"응, 무지."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따라온 삿치가 웃으며 말했다. 화창한 날씨와 순조로운 회사상황,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소소한 삶이 단꿈을 꾸게 만들 것 같았다.

"삿치, 있지 나, 행복하다."

말을 하는데 얼굴이 구겨졌다. 여태 지어본적 없는 표정이었다. 어색하면서도 쑥스러웠다.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인 삿치에게 조차 말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래. 그러냐."

"응."

"그 꼬맹이 녀석 대단하네. 천하에 마르코를 들었다 놨다하는구만."

그 뒤로도 삿치가 뭐라 말을 했지만 어젯밤 일을 생각하느라 들리지 않았다. 어젯밤 결국 에이스의 방에서 쫓겨났지만 부끄러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몸짓으로 충분했다. 아침 식사 시간 밥을 먹으며 조는 모습을 보니 에이스도 아마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꾸벅이면서도 고기를 우물거리는게 꼭 병아리 같았다. 출근길 배웅하려 현관에서 꼼지락거리던 녀석에게 키스를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꿈만 같았다. 함께 있는 작은 시간들이 행복을 만들었다.

"드디어 맛이 갔네. 갔어."

방까지 따라 들어온 삿치가 쇼파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흰 조리복에 구김이 졌다.

"쯧, 부디 이 평화가 오래 가길."

*

퍽!

"끄아악! 아악! 윽!"

대낮임에도 어스름한 건물 한 구석 빛이 닫지 않는 곳에 젊은 흑발의 남자가 무게있는 주먹을 날리며 급소만을 골라 중년의 남자를 제압하고 있었다. 중년 남자의 비명소리가 공허한 공간을 채웠다. 그의 주변에는 이미 쓰러진 남자들이 소리없이 누워있었다.

"후우-"

젊은 남자가 근처에 굴러다니던 의자를 바로 세워 앉았자 의자는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손끝에서 점성이 있는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길래 말했잖아. 좋게 말할 때 돌아가라고. 왜 일을 만들어."

"크윽."

젊은 남자의 발 밑에 놓인 중년 남자가 몸을 움직이려하자 신음이 터저나왔다. 그는 잘 들어가지도 않는 힘을 주어 가까스로 몸을 웅크렸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붉은 자국이 어지럽게 생겨났다.

"이봐, 우리가 누군지 몰라?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할거아니야. 객기로 저승간다고 그러더니 쯧."

"죄, 죄송합니다. 쿨럭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아아 이거 참 곤란하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가 좀 빨리 출세를 해야해서 말이야. 어쩌는게 좋을까?"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흐흑"

"흐음"

그때 젊은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부드럽게 화면을 쓸어 전화를 받았다.

"에이스! 너, 지금 어디야? 말도 없이 혼자 가버리면 어쩌자는거야? 어? 네가 아무리 형님들이 예뻐해주시고 실력있다해도 이 건은 혼자 무리라고. 무모한 짓 하지말고 어서 돌아와!"

전화기 건너 상대는 에이스가 답할 틈조차 주지않고 열심히 자기 말만 하기 바빴다. 그런 전화를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서 듣고있을 때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에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툭, 툭

푹-

"그아악!"

"에이스? 에이스? 무슨 일이야? 어?"

땅에 떨어진 전화기를 주워 화면을 보자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미안. 전활 떨어트렸어."

귀와 어깨 사이에 전화기를 고정한 후 에이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핏방울이 멎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옆에 보이는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손을 닦았다.

"그래서 지금 도대체 어디야?"

채근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여기, 칠용 건물야."

"뭐? 거기 지금 혼자 있다고? 야, 빨리 나와. 걔네가 신생이긴 해도 너 혼자선 무리야."

"아, 정리 끝냈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건물 안을 휘졌는 바람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농담이지? 네가 아무리 날아다녔다지만 너 혼자?"

"안돼?"

"아니, 안되는건 아니지. 일단 애들 보낼테니까 돌아와."

"알았어."

차가운 바람이 감도는 건물 안, 그곳에는 한 명의 남자가 홀로 서있었고 그의 주변은 어지럽게 칠해진 핏빛 자국과 수 십명의 쓰러진 남자들이 얼기설기 어지럽게 누워있었다. 홀로 서있는 남자의 눈은 공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제 손에 묻은 피를 닦은 휴지를 잔뜩 구겨 구석 어딘가로 던지고선 건물을 빠져나갔다.

"후아- 얼굴도 모르는 남자지만 그 사람 피이긴한가."

발끝에 걸린 작은 돌멩이를 구둣발로 밟자 아스락이는 작은 소리가 났다.

"재능있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지만 부모에 대해 알고난 이후 이따금씩 이런 일을 하고나면 쓸모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때면 마음 한 구석이 끝 없는 늪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악명 높은 뒷세계 남자의 숨겨진 아들. 왜 태어났는지 의문이 일었고 무엇을 해야할지 어둠속을 헤매었다. 무엇을 하던 그 남자의 그림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한 없이 쓸쓸해졌다.

"아, 마르코 보고싶다."

에이스는 한 발자국 앞, 밝게 내리쬐는 태양빛은 아직 너무나 눈이 부셔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숨으며 유일한 빛인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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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4-04 18:07 | 조회 : 1,420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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