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삿치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선 에이스의 꼴이 보기 싫었다. 에이스는 닦아낸다고 닦아냈지만 얼룩덜룩한 핏자국이 흰 셔츠 여기저기 남아있었고, 검은 머리칼에도 묻었는지 조금 엉켜있었다.

'지금 이 모습을 마르코가 보기라도 한다면.. 으아, 끔찍하다.'

몸서리쳐지는 생각에 짧게 헛기침을 했다.

"하, 왜 나갔어?"

"나도 식구 아니야? 아버지로부터 자식으로 인정받은지 세 달이 지날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 이제야 겨우 나도 내 몫을 하는데 이게 말이나 돼? 혹시 마르코가 무슨 말 한거야?"

"무슨 말은 무슨."

"마르코한테는 내가 일하는거 말하지마."

"마르코가 신경쓰이긴해? 녀석한테 말도 못 할거 왜 그러는거야? 이번이 벌써 여덟번째야."

"마르코 문제만 빼면 문제없잖아. 내가 날뛰어주는 덕분에 사업도 착착 진행되고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고 말이야."

에이스가 탁자 위에 올려진 바구니에 담긴 사과를 꺼내 물었다. 붉은 사과가 베어지고 연노랑의 과육이 나타났다.

'그건 그렇지. 확실히 에이스가 일을 하고난 후부턴 잡음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고있어서 속도도 빠르고 돈도 덜 들고 많은 부분에서 좋은 효과를 보고있긴하지.'

"언제까지 마르코 몰래 이럴거야? 마르코가 알아차리는 것도 시간문제야."

삿치가 에이스가 집은 사과 옆에 놓인 사과를 꺼내 들었다

와그작

"으으음 아직, 음! 캑!"

"야! 에이스, 그냥 다 먹고 말해."

꿀꺽

"하, 죽는 줄 알았네. 히힛."

"웃지마. 너 웃는걸로 봐줄 문제가 아니야."

"좀 봐주라."

머리 아픈 꼬맹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삿치에게 에이스가 얼굴을 들이 밀었다.

"봐주는 김에 옷도 좀 부탁할게~"

"야! 에이스! 너 진짜!"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시 와그작 사과를 씹는 에이스를 삿치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르코 방이야?"

"응. 삿치, 너 무슨 꿍꿍이야?"

"어? 뭐가?"

"얼마전부터 내가 어디 있는지 왜 그렇게 물어보고 다녀?"

"가, 간식 좀 줄까하고 그러지."

"흐음"

"금방 올라갈게~"

사각이는 볼펜과 종이의 마찰음이 수화기 넘어로 들려왔다. 아마 그는 서류를 보느라 금속테 안경을 반짝이며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삿치가 통화 종료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스, 나 좀 봐주라. 네가 씻으러 가는거 망보다가 내가 먼저 죽겠어."

삿치는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잡고 축 늘어졌다. 뒤로 넘긴 그의 앞머리가 조금 흐트러져 보였다.

"히힛 언제나 고맙워, 삿치. 그럼 난 이제 씻으러 갈게~"

지나치게 하얀 형광등 빛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복도는 어지러웠다. 터벅 터벅 소리를 내며 샤워장에 도착해 피로 얼룩진 셔츠를 벗어 내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물줄기 아래 섰다.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힘차게 움직였다. 그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물줄기가 사라지며 대신 붉은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아, 머리에도 튀었었나보네.'

손가락을 진득하게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집어넣고 움직이자 더 붉어진 물이 흘러내렸다. 에이스는 붉은 물이 턱에서 가슴을 지나 다리를 타고 바닥에 닿아 한동안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흘러 내리다 이윽고 소용돌이 치며 사라져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

물기를 닦아내고 샤워장 밖으로 나오자 탁자 위에 새 옷이 놓여있었다. 에이스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삿치는 마르코 몰래 그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마르코의 위치를 파악해 마주치는 것을 방지하거나 지저분해진 옷을 대신해 입을 새 옷을 준비해주거나 에이스가 처리한 일의 뒷 마무리를 해주는 등 날뛰는 에이스를 마르코가 알아차리지 못 하도록 손쓰고 있었다. 소매에 팔을 꿰자 닦이지 않은 물기가 얼룩을 만들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 5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음, 오늘은 뭘 먹을까? 아까 들으니 마르코는 오늘도 늦게나 들어올 모양인데 혼자 먹는 것도 질리네.'

에이스가 일을 시작하고 하나 둘씩 쌓여있던 문제가 해결되면서 마르코도 덩달아 바빠져 그는 몇달째 야근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는 것도 아침에 잠깐이거나 아예 못 보는 날도 많았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탈의실 문을 돌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었을 때 복도 맞은 편에서 검은 그림자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밀었던 발을 뒷발 옆으로 옮기며 살며시 문을 닫았다.

타각

타각

"응,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타각

"오늘도 야근이지. 피곤해 죽을 것 같아. 삿치가 너무 열심히 해줘서 일할게 산더미 같이 있어."

타각

타각

쿵-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던 목소리가 점점 크고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르코의 목소리였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참았다. 어린시절 문방구에서 100원짜리 과자를 처음 훔치던 날처럼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베어왔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문 밖을 지나치는 그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그래도 간식 가져온다고 연락왔었어. 내 방으로 와. 응."

쿵-

타각

쿵-

타각

쿵-

타각

발소리가 줄어들며 그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문에 기대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식은 땀이 맺힌 이마에 까만 머리카락이 몇가닥 달라붙었다.

'큰일날뻔했네. 이렇게 갑자기 마르코가 방을 나오다니. 예상 못 했던 일이군.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어. 아직은.'

가쁜 호흡을 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에이스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꽉찬 느낌이었던 복도는 다시 어지러울정도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

띠릭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침실이 아니라 에이스의 방이었다. 지금 새벽 2시가 지났으니 아마 녀석은 자고 있겠지만 잠든 모습이라도 보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 혹시라도 깰까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열자 침대에 홀로 누운 에이스가 있었다. 그믐이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한 조각 없이 완전히 어둠이 깔렸지만 녀석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에이스"

피곤에 잠긴 목소리가 간신히 터져나왔다.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걷어차여 발밑에 구겨진 이불을 살며시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조금 뒤척였다.

"에이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녀석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마르코는 소리없이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뻗어 에이스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가닥가닥이 손가락에 얽혔다 빠져나갔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조금 떨어진 곳에 단단히 두고 고개를 숙여 잠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짧은 입맞춤을 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각이 여전히 입술에 맴도는 듯했다.

'잠든 백설공주에게 키스한 왕자의 기분을 알것 같군.'

"공주님, 눈 좀 떠봐."

그러나 에이스의 눈꺼풀이 올라가 그 뒤에 숨은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마르코를 바라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우"

한 숨을 내쉰 마르코가 몸을 에이스를 가두고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다시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정말.'

가까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한참 달달하게 깨 쏟아져야할 시기에 야근때문에 잠든 녀석 입술에 도둑 뽀뽀라니 마르코는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일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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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4-05 21:16 | 조회 : 1,530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다시 고민되기 시작하는 수위는 어디까지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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