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따사로운 햇볕이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두 사람을 비췄다. 싱글침대 위 덩치 큰 성인 남성 둘이 마주안고 있었다. 그중 노란 머리카락의 사내는 가만히 자신의 품에 안긴 주근깨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눈빛을 빛내었다. 주근깨의 사내는 고른 숨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했다.

"에이스"

노란 머리카락의 사내가 나지막히 읊조렸지만 이름의 주인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날개뼈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허리까지 쓸었다. 품 안의 사내가 움찔거리며 작게 몸을 비틀자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내는 다시 손을 움직여 얇은 바지 위로 볼록하게 솟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히잇!"

드디어 품 안의 사내가 놀라 푸드덕거리며 눈을 떴다.

"하아.. 하아.."

"좋은 아침이야, 에이스."

놀란 에이스가 진정되지않는 숨을 몰아쉬었지만 마르코는 상관하지 않고 그의 이마에 입술을 찍었다.

"호색한."

"이런, 호색한이라니. 상처받는다고?"

"그치만 자고있는 사람한테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야?"

"그야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더 보고싶은거야 당연하잖아?"

"이이.."

마르코는 부끄러워서 발개진 에이스를 꼭 끌어 안았다. 마주한 그의 가슴에서 빠른 속도의 심장박동이 전해졌다.

"정말이지 아저씨가 이런 스타일인줄 몰랐어."

품 안에서 웅얼거리는 에이스의 목소리가 가슴을 간질렀다.

"나도."

에이스가 고개를 들려고 하자 마르코는 그의 턱을 에이스의 정수리 위에 올렸다.

"뭐하는 짓이야? 답답해."

"좋아해. 에이스."

"뭐라고? 이거 풀어!"

버둥거리는 에이스를 안고있던 마르코가 팔을 풀고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남겨진 에이스의 얼굴은 빨갛게 변해있었다.

*

"뭐야? 마르코, 오늘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쇼파에 앉은 검은 양복의 비스타가 유난히 밝아보이는 마르코에게 물었다. 비스타는 5번 대장으로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질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옆에 앉은 삿치가 말을 이어갔다.

"내버려둬. 그보다 에이스 교육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너한테 맏긴다고 하긴했지만 아버지에게 보고정돈 해가면서 하라고."

"아."

"그 잊고있었다는 듯한 반응은 뭐야? 정신차려. 지금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있지? 내일 전체 회의에서 사업현황이랑 조직관리에 대해 보고해야한다고."

두 사람이 떠나간 공간에 마르코는 코팅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잊고있었어. 녀석에 대한 감정때문에 생각하고 있지않았어.'

"하아."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직에 들어온건지 뭔.'

마르코는 주름진 미간을 문질렀다.

*

"그래서 좋았냐?"

"응."

"아이고, 머리야. 나도 모르겠다."

뒤로 벌러덩 누운 사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그 사람이 목적아니였어?"

"맞아."

"그런데 그 아저씨를 좋아해서 어쩌겠다고 그래."

"나도 모르겠어."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마르코에게 이런 감정따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는걸. 그러나 한 번 받아들인 감정은 너무 빠르게 커져만가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르코마저 그렇게 말해줘버려서, 너무 기뻐서 행복했다. 내가 그를 떠나갔던 이유도 다시 돌아온 이유도 다 잊을만큼.'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조각 없이 깨끗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거야."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너, 그래서 되겠어?"

걱정이 베어나오는 목소리가 귓바퀴를 따라 흘러들었다.

"응. 그러려고 돌아온거니까."

마르코의 집을 떠나기 전 난 한 통의 서류를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것을 본 것이다. 갈색봉투 속에 들어있던 하얀 종이에는 검은 잉크로 프린트된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나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모든 것이 적혀있었다. 출생일과 출생지, 그동안 거쳐온 보육원, 다녔던 학교, 학교생활전반에 관한 내용, 그동안 저질렀던 일들 그리고 부모. 나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들이었고 심지어 알지 못했던 부모에 관한 것들이 있었다.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중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져오던 부분은 부모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에게도 부모라 할만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생사여부를 표시하는 칸에는 '사망'이라는 단어와 그 날짜가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좀 충격이었다. 아무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라지만 이런식으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알게되었으니, 이제는 꼭 다시 만나 왜 날 버렸냐고 따져물을 수도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가족 속에 컸고 나를 낳고 죽었다. 계속해서 읽어내려가자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그는 한 때 뒷세계를 제패했던 사람이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문뜩 이 집에 오게된 날이 생각났다. 그날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날이었다. 학교를 빼먹고 거슬리는 녀석을 손봐주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져 뭐라도 사먹을 생각으로 골목길을 걷다가 그 사람을 만났다. 나에게 제 아래에서 날뛰어보라던 덩치가 크고 호탕하게 웃던 남자였다. 그렇게 주워져 도착한 곳이 이곳, 마르코의 집이었다. 그는 귀찮아했지만 내쫓지 않았고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다. 그랬는데 난 마르코가 따르는 사람의 경쟁자였던 사람의 자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정보가 혼란을 만들었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넘쳐났다. 물소리가 들렸다. 그날 난 바로 그 집을 나왔다. 그 사람이 왜 날 주워 마르코에게 던져줬는지, 마르코는 이 사실들을 알고있었는지, 그를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날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자신이 따르는 사람의 경쟁자였던 자의 자식을 곱게 봐줄리 없었다. 외로워졌다. 마르코가 날 바라볼 눈빛을 생각하니 몸이 떨려왔다. 눈앞이 흐려지고 뺨을 타고 뜨뜨미지근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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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4-01 21:33 | 조회 : 1,549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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