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방으로 돌아온 에이스는 몇시간 전과 같은 위치에 쭈구려 앉아 부스스한 머리를 헝클였다.

'아, 기껏 심란한 마음 잡고 해장국까지 사다줬잖아. 그럼 된거야. 마르코가 여자랑 뭘하고 돌아다니던 내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야.'

고개를 더 깊게 숙이고는 헝크러뜨리던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닌거... 알잖아.'

"푸하아"


에이스는 지난 밤을 고뇌와 괴로움의 시간으로 보냈다. 어떻게해도 머릿속에서는 마르코와 여자에 대한 상상이 계속되었고, 알수없는 대상을 향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몸서리쳤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권리도 없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이 아팠다..

'마르코에게 여자가 생겼다면 오히려 축하해줘야할 일이라고.'

마르코와 함께 생활했던 시간동안 그는 에이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어 안정을 찾도록 최선을 다했다. 에이스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노총각 아저씨가 드디어 짝을 찾았으면 나도 기쁘게 축하해줘야하는데 꼴사납게 질투나하다니. 어쩌면 마르코에게 너무 기대고 있었는지도 몰라.'

고개를 들자 창문 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찌푸려졌다.

"아- 축하해주자. 그게 맞는거야."


'결국 축하한다고 못 했어.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붙여봤네. 에이스 너 쭈굴하다 진짜.'


*


"삿치, 이제 어쩌면 좋을까?"

'그런 이야기를 이런 상황에서 하고 싶니?'

마르코는 얼굴에 튄 피를 하얀 수건에 물을 적셔 슥슥 닦아나갔다. 그의 앞에는 눈 코 입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의 남자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 옆에는 운동장이나 공사판에서 볼 듯한 장비들이 줄지어져있었으나 핏자국은 없었다.

"어이, 가서 셔츠 새걸로 하나 가져와요이."

그는 얼굴을 닦은 수건에 다시 물을 적셔 이제 손을 닦고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이. 딴데 마음 돌려보려해도 여자한테도 전혀 느낌이 없어."

언제나 나긋하고 여유로운 얼굴의 조직 2인자가 저보다 훨씬 어린 애송이에게 손가락 하나도 못 건들이고 쩔쩔매는 꼴을 보고있자니 삿치는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푸하핫,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냥 밀어 붙여~ 괜한데서 떡 만들며 여렷 힘들게 하지말고. 네 실력에 안 넘어 오는 여자도 없었잖아? 게다가 여기 바닥에서 너 싫다는 놈 찾기가 더 어려울걸? 감사하다할거야."

가볍게 던지는 말에도 마르코의 얼굴은 펴지지않았다. 잘 다려진 새 셔츠가 고이 개어져 도착하자 입고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어낼뿐이었다. 끌어내려진 셔츠 뒤로 단단한 복근과 문신이 드러났다.

"이 녀석은 한동안 수족관에 보내줘요이."

셔츠를 갈아입은 마르코가 구둣발로 널브러진 사람을 툭툭 건들이며 말했다.

"그리고 삿치 난 진지해요이."

그 말을 끝으로 지하에서 사무실로 올라가는 동안 마르코는 아무말도 없었다. 침묵 속에 삿치는 괜히 입을 가볍게 놀린 것을 후회했다. 둘은 마르코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 마르코 미안해~ 네 녀석이 그러는게 좀 의외랄까 그래서 말이 막나갔네."

"의외?"

"그래 십여년 같이 생활하면서 한 번도 쩔쩔 매는걸 못 봤으니 의외지."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이렇게 생각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수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진지하게 만남을 가지거나 연락을 이어간적이 없었다.



질척- 착- 찌덕- 퍽-

"아~ 마르코, 제대로 좀 해 봐. 왼쪽으로 더!"

사무실 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떡 반죽을 만들고 있는 삿치는 짐짓 진지해 보였다. 언제나 왜 입고 있나 의문이었던 조리복이 꽤나 잘 어울렸다. 마르코는 삿치의 말을 들으며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질척- 퍽- 푸욱- 찌덕-

"아니지! 마르코! 한쪽으로만 치대면 안돼. 돌려가며 골고루해야 반죽이 차지게 만들어지지."

보다 못한 삿치가 직접 팔을 겆고 나서 야무지게 반죽을 돌려가며 치대기 시작했다.

"뭐, 이정도면 되겠다. 수고했어~ 이제 반죽을 적당량 떼내서 이렇게"

삿치는 자신을 보고 따라하라며 손바닥 위에 떡 반죽을 떼어다 둥글게 굴려나갔다. 진지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르코가 커다란 손을 꼼지락거리며 반죽을 굴리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삿치, 이거 왜 하는거야?"

여전히 손바닥 위에 반죽을 둥글게 굴리면서 마르코가 느긋하게 물어왔다.

"헷, 떡 얘기가 나온김에 간식으로 준비해볼까해서."

"흐음. 그깟 이유로 날 이렇게 부려먹는단 말이야?"

"어이! 마르코. 그렇게 만들면 안돼~ 떡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 낳는다는데 그렇게 만들면 쓰나?"

"큼"

마르코는 순간 흥분해 손 위에 굴리고있던 둥근 반죽을 납짝하게 만들어버렸다. 삿치의 말을 아무렇지않은척 다시 손을 굴리는 마르코였다.

"맛있는 찰떡이 될거야. 그치, 마르코? 크크크"

사무실 가득 시곗소리와 간혹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만 채워졌다. 둥글게 빚은 떡 반죽이 한 쟁반을 다 채워갈 무렵 삿치가 입을 열었다.

"마르코, 그 녀석이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똑바로 마주보고 말 해. 네 감정에 대해 솔찍하게 알려주면 녀석도 어떤 반응이 오겠지."

묵묵히 손을 굴리던 마르코는 삿치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계속해서 반죽을 굴리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찐득하게 붙어오던 반죽은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되어 완벽한 구의 형태를 하고있었다.

"이게 진심이 되니까 어려워요이. 상대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게되고 부담스러워하거나 싫어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아. 그래서 다가가는 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조심하게돼."

덤덤히 이야기하는 마르코의 어깨 너머로 구름에 가려진 태양이 넘어가고 있었다.


*


"에이스, 그만 좀 마셔!"

에이스의 맞은 편에 앉은 사보가 보다못해 에이스의 손에 쥐여진 캔을 빼앗았다. 둘은 옥탑 평상 위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텅 비어버린 맥주캔 몇개가 에이스 주변을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사보. 왜 이러는 걸까? 진정이 안돼. 아저씨만 보면 얼굴도 모르는 여자랑 뭘 했을지 마구잡이로 생각이 뻗어나가."



새로운 캔을 따며 에이스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사보를 바라보았다.

"하, 낸들아냐. 뒤늦은 사춘기라도 왔나보지."

더 이상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사보는 에이스로부터 빼앗은 캔을 입에 댔다. 옥탑으로 불어오는 밤바람은 미지근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환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반짝이는 야경과 밤바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너무 마셨다. 자고 갈거지?"

"아니, 됐어. 집에 가서 잘래."

사보는 비비적 다가오는 에이스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에이스가 마르코에게 던져지기 전부터 알고지낸 두 사람은 어릴적부터 동네의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함께 놀고 자고 혼이났다. 둘은 때로 힘들때면 서로 기대줄수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1년 전 갑자기 찾아온 에이스를 아무말없이 받아주고 안아주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말해주기까지 기다려줄수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이 남달랐기에 사보는 에이스에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너, 지금 몇신줄 알아?"

쇼파에 벼루고 앉았던 마르코는 시계가 01시가 지나도 들어오지않는 에이스때문에 화가난 상태였다. 그는 녀석을 좋아하는것때문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기도 했다.

현관에 서서 겨우 신발을 벗어 휙 던져버린 에이스가 축 늘어진채 흐느적이며 차례로 옷을 벗으며 걸어 마르코에게로 향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마신거야?"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마르코가 바로 옆에 빨갛게 변한 얼굴로 술 냄새를 내며 서있는 에이스를 올려다보았다.

"마르코-"

에이스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마르코와 가까워졌다. 둘 사이의 공간이 좁아지자 마르코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랬더니 에이스가 덩달아 더 숙여오며 마침내는 쇼파 위를 짚고 있었다.

"마르코-"

마르코는 예상치못한 에이스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좋아하는 상대가 반라의 상태로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며 얼굴까지 붉혀 매혹적인 포즈로 덮쳐진 상태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마르코의 심장이 요동쳤다. 쉴세없이 두근거림이 이어지며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어디를 보더라도 다 에이스만 보였다.

'미치겠네요이. 이 녀석 왜 이러는거야? 하아- 일단 어딜 봐야할지도 모르겠어! 아래를 보면 에이스의 탄탄한 근육과 분홍빛의..@#♥& 흡. 후아- 위로 보면 녀석으 목젖부터 붉어진 얼굴..&*#@ 오른쪽, 왼쪽은 녀석의 팔 근육. 진짜 미쳐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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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6 19:59 | 조회 : 1,621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아... 원고를 날려버려 정말 멘붕왔었어요. 저장을 습관화합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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