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르코가 집으로 돌아온 건 새벽 3시가 다 되서였다. 에이스는 마르코가 돌아올 때까지 깨어있을 생각으로 거실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그러다 마르코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왠 남자의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마르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에이스가 달려나가 술에 취에 몸을 가누지못하는 마르코를 부축했다. 남자는 마르코를 침대에 눕혀놓고는 사라졌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에이스는 침대에 모로 널부러져 누워있는 마르코를 바라봤다.

"마르코! 옷은 좀 갈아입고 자!"

에이스는 낑낑거리며 마르코를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는 그가 입고 있던 양복을 하나씩 벗겨나갔다. 자켓을 벗겨 옆에 두고 양말을 벗겨 바닥에 놓고 베스트의 단추를 풀어 벗겼다. 셔츠를 벗길지 바지를 벗길지 짧게 고민한 에이스는 그의 넥타이를 풀고 위에서부터 단추를 풀어나갔다. 방에는 마르코의 고른 숨소리와 에이스의 약간 거친 숨소리가 섞여 들렸고 마찰로 옷이 서걱이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렸다.

두근-두근-

에이스는 무슨 죄라도 짓느냥 쿵쾅이는 자신의 심장소리에 놀랐다.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갈때마다 그 소리는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목에서부터 풀기 시작한 단추는 이제 가슴팍을 풀 차례였다. 단추가 단추구멍을 빠져나오는 순간 마르코가 몸을 뒤척였다. 에이스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요동쳤다.

'나쁜짓 하는 것 같아. 저 정도면 됐어. 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에이스는 잠시 숨을 고 더 이상 마르코의 옷 벗기기를 그만두었다. 대신 벗겨 놓은 자켓을 집어 옷걸이에 걸었다.

"이게 뭐지?"

팔뚝부분의 색깔이 다른 부분과 조금 달랐다. 뿌연 무언가가 묻은 것 같았다. 자세히 보기위해 얼굴에 가져다대자 여자 화장품 냄새가 훅 풍겼다. 에이스는 그 자리에 우뚝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리며 불편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마르코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여자의 체취를 묻혀온적이 없었다. 가끔은 남자로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나 직접 목격한 그것으로 에이스는 속이 뒤틀렸다.

"우욱!"

에이스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방을 뛰쳐나왔다. 자신의 방에 들어간 에이스는 침대 옆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고개를 묻었다.

'생각보다 기분 나쁘네. 이거.'

머릿속은 방금 전에 본 여자의 흔적과 마르코가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무습이 떠올라 뒤죽박죽이었다.

"흐윽, 왜 이러냐고."

머리를 감싸쥔 에이스는 괴로움에 밤을 설쳤다.



마르코가 눈을 떠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자 액정에는 10시 23분이 찍혀있었다. 그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으윽, 속도 안 좋고 이제 다 늙엇군요이. 옷은 또 왜 이 꼬라지지?"

몸을 살펴보니 분명 하고있었던 남색 넥타이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셔츠는 벗다 말았는지 중간까지만 풀어헤처져있었으며 바지는 입고있는데 양말은 바닥에 있는 상황이 이상했다.

'이상한 술 버릇이라도 생겼나?'

마르코는 아직 숙취때문에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비적비적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주말이기에 에이스가 거실에서 쇼파에 눕다싶이 앉아 티비를 보고있을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자 찬 기운이 스믈스믈 기어나왔다. 물병을 꺼내 들고 유리컵에 반을 채운 후 벌컥이며 마셨지만 속이 좋지않은건 여전했다. 물병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거실에 있을 에이스를 찾아 나섰다.

'녀석이 돌아오고 제대로 이야기를 못 했요이. 적어도 무슨 이유로 그렇게 집을 나가 연락도 없이 지냈는지 물어야겠지요이.'

움직이지 않으려는 다리를 끌어 거실로 갔지만 적막하게 꺼져있는 티비와 텅빈 쇼파뿐이었다. 순간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말도 없이 사라진 전적이 있는 동거인과 있다는 건 다시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숙취로 울렁이고 열이 나던 것이 차게 식어갔다.

'녀석이 또!'

"에이스!"

마르코는 거실을 빠져나와 에이스의 방으로 향하며 그의 이름을 외쳐댔다.

"에이스!"

문 손잡이를 잡고있는 손에 땀이 베였고 불안한 심장이 요동쳤다. 벌컥 열어저친 방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텅빈 침대였다. 이상한건 잠버릇이 고약한 녀석의 침대가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마치 전날 아무도 사용하지않은듯했다.

"에이스.. 또!"

마르코는 이를 꽉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미간이 좁혀지고 이마에 주름이 졌다. 휴대폰을 찾아 침실로 향하는 발소리가 쿵쿵거리며 집안을 울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서 얌전히 넘기지 않겠요이."

침대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삿치를 누르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코, 깼어?"

문 앞에는 에이스가 부스스한 머리에 검은 봉지가 둥글도록 무언가 담아 흰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서있었다.

"어제 술이 과한것 같더라고. 해장국 사왔어."

마르코는 봉지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식탁 위에 늘어놓으며 태연하게 말하는 뒷모습이 미웠다.

"마르코, 오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나 어제 무리했는지 상태가 별로야. 어이~ 마르코?"

휴대폰에서는 언제 연결된 것인지 모를 삿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 별일 아니야요이."

이 말을 남기고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마르코는 주방에서 부시럭 거리는 에이스의 모습을 다시 한 반 확인하고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기댔다.

'하아, 정말 미쳤군요이. 아침에 안 보인다고 이렇게까지 불안해하다니. 에이스가 날 챙겨주기 위해 무언갈 해준다는 것에 또 기뻐하고. 일어나서 3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감정기복을 이렇게나 일으키다니요이.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요이. 난 저 녀석을 좋아하고 있는거야.'

마르코는 에이스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마르코! 어서 나와!"

문 밖에서 에이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코는 심호흡을 세 번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어서와 먹어. 뜨거울 때 먹는게 최고야."

에이스는 이미 숟가락을 움켜잡고는 전투적인 의욕을 보이고있었다. 그의 앞 빈자리에 김이 나는 콩나물 해장국과 쌀밥 한 공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르코는 대꾸없이 의자에 앉아 피어오르는 모락모락 피어올라오는 김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제 좀 많이 나간것 같긴 하던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봐?"

동면을 준비하는 다람쥐마냥 양볼 가득 밥을 넣고 말을 하는 에이스 덕에 여기저기 파편이 튀어나올것 같았다.

"아니요이. 잘 먹을게."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감정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르코는 당장 자신의 앞에 앉은 에이스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다.

'역시! 죄 짓는 기분야요이!'

좌절에 자기혐오까지 넘어가려는 마르코에게 에스의 얼굴이 다가왔다.

"어이, 마르코 정말 상태가 안 좋아보여. 괜찮아?"

"괜찮아요이."

마르코가 숟가락을 들고 국을 뜨자 에이스가 뒤로 물러나 다시 제 밥을 먹기 시작했다. 1년 만에 집에서의 재회와 식사는 숨 막히게 어색해 공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나 먼저 방에 들어갈게."

모든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에이스가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국만 떠 먹던 마르코가 그제야 에이스를 바라봤다.

'뭐야, 언제나 내가 밥 다 먹을 때까지 조잘조잘 떠들며 옆에 있어주더니.'

마르코는 꼭쥔 숟가락으로 국을 푹 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러니 꼭 삐진 것 같잖아요이! 이 나이먹고 유치하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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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5 16:52 | 조회 : 1,607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전개가 너무 느려요! 작가주제에 진도를 빨리 못 나가는건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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