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헤에~ 하긴 그렇겠지. 그나저나 새로 사람도 들어왔는데 여긴 환영회같은거 안해? 고기!"

마르코는 자신이 알던 에이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누군지 모를 모습이었다가 다시 늘 고기타령만 하던 친근한 모습을 하고있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났다.

"오늘 저녁에 회식하지 뭐."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을 흩뜨리자 에이스는 꽤나 준비한 것이였는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자 가슴 한 구석이 마치 그 머리가 된 마냥 간지러워졌다. 유리창 밖으로 일몰의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있어 지평선 위의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킬 것 같았다.


*


회식은 언제나 즐거운 것인지 한자리에 모인 식구들이 시끌벅적했다. 그 중심에는 당연 오늘의 주인공인 에이스가 있었다. 다른 간부들의 질문과 축하를 받으며 웃고 떠들고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르코는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그래?"

삿치가 맥주가 든 잔을 앞에 소리나도록 내려놓았다. 늘 조리복차림이던 그가 지금은 평상복이었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제 잔을 쭉 들키며 마르코를 살폈다.

"아니, 그냥. 뭔가 이상해서요이."

마르코는 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손에 잡히는 잔은 분명 시원한데 목구멍으로 넘어간 맥주는 몸속에 찬기운이 돌도록하지않았다.

"뭐가 이상한대?"

"저 녀석이 저렇게 잘 적응하고 어울리는게 좋으면서도 싫어요이."

'마르코. 드디어 깨달은 거냐!'

"어떤 점이 싫은대?"

삿치는 무덤덤하게 맥주를 마시며 물었다. 마르코는 잠시동안 말없이 잔 속 맥주 거품이 사라지는 것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에이스를 보았다.

"글쎄. 어떤 점이라."

손에 쥔 잔을 빙빙 돌리며 생각에 빠지자 삿치가 말을 걸었다.

"엇! 쟤 취했나본대? 잠들었어."

에이스는 주는 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고 취해 잠들어 상 위에 엎어져있었다.

"젠장."

마르코는 곧장 뻣은 에이스에게로 달려가 그가 깨지않도록 조심히 안아들었다.

"누가 애를 이지경이 될때까지 마시게하랬요이?"

나지막하게 물어오는 마르코의 질문에 왁자지껄 한 껏 흥이 올랐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한동안 마르코가 얼마나 저기압이었으며 그로인해 별 시덥잖은 이유로 이리저리 구른 적이 얼마인지 아는 그들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말이 없어 더 화가난 마르코가 입을 입을 때려던 순간 삿치가 끼어들었다.

"에헤, 애 깨겠다. 어서 들어가서 눕혀."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마르코가 자신이 안아든 에이스를 데리고 자리를 나섰다. 식당 밖에서 대기하고있던 차에 올라 에이스를 조심히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바르게 앉았다. 차는 매끄럽게 도로 위를 달려 불빛과 소음이 가득한 도심지를 가로질렀다.

에이스를 제가 지내던 침대에 눕혀놓자 잠시 뒤척이더니 이내 편한듯 움직임이 없었다. 마르코는 가만히 달빛이 들어 반짝이는 에이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찾아해매던 주근깨의 검은 머리 소년이었다. 왼손으로 가볍게 녀석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에이스는 이제 소년이라기에는 성숙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턱선은 날카로워졌고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가볍게 감긴 눈 아래 촘촘히 박힌 주근깨와 콧날이 있었고 그 아래 약간 분홍빛이 도는 입술이 벌어져있었다. 마르코의 시선이 그 입술에 고정되었다. 마르코가 자각했을 때는 이미 자신의 입술과 에이스의 입술이 가까워져있었다. 고른 숨과 거친 날숨이 뒤섞인 후덥한 분위기 속에 마르코는 에이스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미쳤군요이."

입술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는 걸 알아채고 바로 에이스의 방을 뛰쳐나와 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마르코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애를 상대로 지금 이게 무슨!"

에이스는 이미 성인이되었지만 마르코의 눈에는 여전히 꼬맹이에 불과했다. 그런 에이스에게 입술을 맞췄다니. 마르코는 가슴부근에서 타오르는 열기와 자기혐오 사이에 빠져있었다.



"마르코~ 어이, 마르코~"

에이스는 언제 일어난 것인지 일찍부터 주방에서 마르코를 부르고있었다. 정작 마르코는 어젯밤 자신이 한 도둑키스때문에 에이스를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않았다. 그랬기에 여전히 저 목소리를 들으며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하아"

'이게 무슨 짓이지요이. 내가 왜 그랬을까 요이.'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새웠는지 마르코의 눈 밑은 다크서클이 만들어져있었다. 마르코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가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마르코가 주방에 들어서자 앉았던 에이스가 반갑게 인사했다.

"마르코! 얼마나 불렀는지 알아? 아! 좋은 아침! 그건 그렇고 나 머리도 속도 너무 안 좋은데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

마르코는 그제야 에이스가 집을 나가고선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아 도우미에게 먹을건 필요없다고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일단 나가서 해장국 먹어요이."

마르코는 이마를 짚으며 말하고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에이스에게 건냈다. 그는 침실을 나와서는 물론이고 이야기하는 동안 에이스의 눈을 마주치지 못 했다.

"마르코, 어디 아파? 왜 그래?"

'저게 문제인거다요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고 반말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에이스의 태도가 마르코를 더 혼란의 상황에 놓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난 출근할테니까 학교알아봐요이."

"학교?"

카드를 받아든 에이스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어제 분명 조직에 들어가 같이 일하게됐다고 회식까지 했는데 12시간도 안 지나서 학교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은 에이스였다.

"우린 좀 더 큰 조직으로 만들어나갈거다요이. 그러니 주먹만 쓰는 놈은 필요없어요이."

마르코는 의도보다 차갑게 나간 것 같다는 생각에 에이스를 보았지만 에이스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대학가서 제대로 공부하란말이야요이."

마르코는 더 있다간 얼굴로 열이 오를 것 같아 급하게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 올라 타 운전석에 앉았지만 시동을 걸지않았다. 그대로 고개를 뒤로 졌쳐 기대었다.

"그러니까 미치겠네요이."


*


마르코가 떠나고 홀로남은 에이스는 거실 쇼파에 무릎으모으고 앉았다. 푹신한 쇼파가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마르코는 왜저러는거지?"

어제 오늘 보인 마르코의 이상 행동에 에이스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생각에 빠졌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지. 사보랑 같이 먹을까?"

휴대폰을 꺼내 사보에게 전화를 걸자 몇번 신호가 가지 않았는데 전화를 받았다.

"죽을래?"

휴대폰 넘어 들려오는 첫 마디였다. 사보는 아직 잠이 덜 깬듯이 목이 잠겨있었다.

"일어나. 밥 먹자!"

"...에이스 미쳤어? 지금 밥 먹자고 아침에 전화한거야?"

사보는 아침 잠이 많았다.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도련님일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를 마치고 옥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때문에 대학 시간표 역시 1교시는 피해서 짜여있었다.

"응! 해장국으로! 학교 앞에 해장국집 맛있다며?"

"하아"

건너편에서 포기의 의미를 담은 한숨이 들려왔다.

"기다려, 30분 후에 다시 전화 해."


뜨끈한 콩나물 해장국을 숟가락으로 퍼 먹으며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 에이스를 바라보는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에이스, 너무하는거 아니야? 밥 먹겠다고 자는 사람을 깨우다니."

뚝배기에 들어있는 숟가락으로 국을 휘져으며 사보가 볼맨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 또 있어. 나 너네 학교 들어가고싶은데 될까?"

에이스는 여전히 양볼 가득 음식물을 입에 넣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물어왔다. 그 소리에 국을 휘졌던 사보는 숟가락을 놓고 진지하게 에이스를 쳐다봤다.

"네가? 대학교에? 그 남자는 어쩌고?"

"음, 일단, 학교에 다녀야한대."

에이스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네 성적이면 가능할거야. 그래도 일단 1년 놀았으니 공부도 빡세게 해야 할테지만."

"흠 그래? 알았어. 너도 좀 봐주라."

대책없이 해맑게 웃으며 해장국을 퍼 먹는 에이스가 사보를 바라봤다. 사보는 에이스의 저런 모습에 약했다.

"그래. 나 말고 누가 있겠냐. 많이 먹어라."

둘은 뜨거운 해장국을 뚝배기채 들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

"삿치, 나 왜이런걸까요이"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거냐.'

삿치는 진지하게 물어보는 마르코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쇼파에 기대어 의자에 앉은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마르코는 짐짓 심각한 얼굴이었다.

'네가 그 애송이와 살던 몇년간 나 한테 한 이야기며 보인 반응이며 보면 딱 한 가지밖에 없지.'

"그런 어린애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이."

"마음가는데 나이가 중요한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르코가 삿치를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마음? 내가 걜 좋아하기라도 한다는거야요이?"

'이 둔탱이가 드디어 알았나'

"그럼 그게 좋아하는 거지."

마르코는 눈을 감았다.

'좋아한다라. 내가 그 꼬맹이를.'

가슴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심장의 울림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젠장. 아무리그래도 애 잖아요이."

"성인이야. 너만 애로 보고있어."

마르코의 좁혀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삿치는 제 친구이자 이 바닥에서 이름난 남자가 나이차이나는 꼬맹이에게 절절매는 모습을 감상했다. 마르코는 담배늘 꺼내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필터만 입술에 물고 까딱였다. 마르코는 전날 이곳에서 에이스가 자신의 담배를 뻿어 물었다 입에 물려준것이 떠올리고 있었다.

'저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삿치, 오늘 가자요이."

마르코가 물고있던 담배를 손에 쥐고 책상 위를 탁탁 치며 말했다.

"어? 어딜 가?"

마르코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손장난을 그만두고 다리를 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더 파라다이스"

'흠, 안 가는게 좋을테지만 나야 나쁠게 없으니.'

"아, 그래. 그럼 몇시에 갈까?"

"6시요이."

"오케이. 알았어. 오랜만에 메리나 만나볼까."

오늘 밤 오랜만에 화끈하게 놀아볼 생각에 신이난 삿치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빠져나갔다. 정작 놀아보자 먼저 제의한 마르코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미간을 좁힌채였다.


*

"오늘 늦을거야요이."

화면 속에 적힌 문장을 읽고선 휴대폰을 뒤집어버렸다. 자신이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얼굴도 안 보고, 집에도 늦게 들어온다니 에이스는 그런 마르코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마르코가 저를 대할때 느껴지던 특별한 느낌도 다 식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왜 서운해하는 거야. 밥이나 먹고 정신차리자."



룸은 가운데 마르코가 앉아있었고 양 옆으로 왠만한 남자라면 다 넘어갈 듯한 여자들이 앉아있었다. 그 옆에 삿치가 앉아 한 여자와 농밀하게 이야기 중이었다. 마르코는 여자가 따라주는 술을 가만히 받아 마셨다. 여자는 마르코의 환심을 사기위해 애교섞인 목소리로 그의 팔에 몸을 밀착했다. 덕분에 여자의 가슴이 물컹하게 닿아왔다. 그 모습을 본 반대편의 여자가 질세라 끈적한 손길로 마르코의 허벅지를 쓸었다. 결국 마르코는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던 여자의 손목을 잡고 일어섰다. 여자가 호텔로 가기 위해 차에 타자 뒤따르던 그는 돌연 다시 차에서 내렸다.

"마르코~ 응? 왜?"

여자가 밖에 선 마르코를 불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한 번 보고선 발길을 돌렸다. 다시 룸에 들어서자 삿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깜짝이야! 뭐야? 왜 돌아왔어?"

"미치겠어요이."

마르코는 연거푸 술을 들이부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를 품을 수 없었다. 여자와 관계를 한다고 생각하면 에이스가 떠올랐다. 자신의 품 안에서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헐떡이는 모습이 떠올라 미칠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습이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 술에 취하지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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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4 19:18 | 조회 : 1,72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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