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이스. 어느날 갑자기 내게 던져진 꼬맹이. 고기를 좋아했고, 언제 어디서든 잘 잤다. 아버지가 주워오기 전까지 길에서 꽤나 험하게 생활했다고 알았지만 아이는 순진했고, 자신의 감정을 솔찍하게 말하며 가식이 없었다. 직선적으로 요구하는 폼새만이 예전 생활이 어떠했을지 가늠하게 만들었다. 교복을 맞추고 학교를 등록하며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궤도에 올려두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여겼다. 아이는 그런 나의 생각에 부흥하듯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재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환경이 받쳐주지 못 해 엇나간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되었다. 밝고 활기찬 아이는 언제나 나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집에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와 함께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 퇴근 후 도우미가 차려 놓고간 다 식은 음식을 밀어 넣던 것과 아이가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 차린 음식을 먹는 것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헤실거리며 다가와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주근깨가 도드라지는 얼굴로 이야기하면 무심하게 들어주는 것이 일상이 되버렸다. 늦은 밤까지 서류정리며 잡무 처리 후 아이방에 들러 켜진 불을 끄고 녀석의 이불을 정리해 주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냉기만 가득하던 집에 녀석이 들어오고 언제나 밝고 따뜻함이 넘쳐났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야근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가끔 직접 세탁을 하는 녀석의 눈에 나쁜 것이 보일까 일처리에 조심을 기했다. 그렇게 빛나던 평범한 일상은 그날, 10월의 어느날 끝이 났다.
녀석이 사라지고 찾기위해 열을 올렸다.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들여 만든 모래탑이 갑자기 덮쳐온 파도에 쓸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려 화가 난듯, 짜증이 치밀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불안하고 초조함으로 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격은 날카로워졌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아무도없는 깜깜한 집, 차가운 겨울 한기만이 가득차 나를 반기는 그런 집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가져본 적 있다는 것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녀석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던 집이 지금은 집이라는 껍데기만 남고 속은 텅 비어버린 차가운 벽일 뿐이었다. 따뜻하고 맛이 느껴졌던 식사는 어느새 무맛의 무기질 덩어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칼칼한 입안을 달래기위해 담배와 술이 늘었다. 오늘 나를 이렇게 만든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어, 어디? 어디야?!"

조리복을 차려입은 삿치를 향해 소리치자 열려있던 문 때문에 복도까지 그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한테 갔다던대"

"뭐? 아버지한테는 왜?"

쇼파에서 일어나 삿치에게 다가가는 사이 에이스가 어째서 아버지를 찾아간것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녀석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며 화가 난 상태임을 알았다. 삿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위에 위치한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작동해 빠르게 에이스를 향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의 단순한 음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있어 구둣소리조차 나지않았다. 그로부터 직선으로 나아가 거대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마르코요이."

대답이없자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발끝을 들어올렸다 내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바지주머니에 넣은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자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기위해 팔을 들었지만 삿치가 손목을 잡으며 도리질을 했다. 잠시후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문을 밀고 들어선 내부에는 편하게 침대에 기대 누워 링거를 꼽고있는 아버지와 그 옆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에이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띄어있었다. 에이스 역시 웃고 있었으나 자주보던 꾸미지않은 모습이 아니었다.

"마르코, 너한테 던져줬다 사라져버렸던 녀석이 다시 돌아왔다."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끝났다. 나의 새 아들이 되기로했다. 다시 잘 키워라. 마르코"



탁.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마르코는 의자에 앉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뒤 따라들어온 에이스는 볼게 없는 방을 한 번 휙 둘러본 후 쇼파에 앉았다. 담배를 피울지 말지 고민을 하며 라이터를 굴리다 결국 불을 켰다. 담배 끝이 붉게 변하며 연기를 만들었다. 마르코가 숨을 들이마시자 담배 끝에 달린 붉은 선이 빠르게 타들어갔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일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나간 이유가 뭔지 물어야하나? 화를 내야하나? 기뻐해야하나?'

"마르코."

먼저 입을 연것은 에이스였다. 그는 답답했는지 검은 넥타이를 살짝 잡아 풀어내렸다. 그리고 마르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주오는 그의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마르코는 언제나 저를 아저씨라 부르던 꼬맹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 물고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입에서 때냈다.

"마르코? 지금 이름 부른거야요이?"

"응. 마르코."

확인사살을 하듯 정확하게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며 웃어오는 에이스를 보자 그동안 머릿속을 떠돌던 모든 생각들이 어디론가 흩어진것 같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 둔 담배가 타들어갔다.

"잘지냈어?"

"잘지냈어? 너!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건감?!"

이어지는 에이스의 질문에 놓았던 정신이 돌아와 그를 다그쳤다. 담배는 어느덧 필터 앞에 붉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떻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 밤 중에 사라질 수 있어요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이?!"

들고있던 담배를 잿덜이에 비벼끄고 의자에서 일어나 쇼파로 향했다. 의자에서 쇼파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는지, 발을 옮겨도 그 발이 공중에만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쇼파 앞에 선 마르코가 앉은 에이스의 팔을 당겨 끌어 안았다. 품에 안긴 에이스는 얌전히 자신에게 안겨있었다. 잠시 안도감을 느끼고 그를 떼어냈다.

"그리고, 마르코가 뭐야요이. 누가 이름으로 부르래요이.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꼬맹이가."

"나 이제 성인이야."

이름부르는것은 기본이요, 이제 말까지 놓기로 한 것인지 반말을 하는 에이스를 보자 벙찐 표정이 되고말았다.

"큼! 저기~ 여러분~ 관객 한 명 있습니다~"

문 앞에 선 삿치가 손을 들며 과장되게 말했다.

"언제부터 있었던거야요이?"

에이스에게서 떨어저 책상에 기댄 마르코는 태연한척 물었다.

"처음부터 있었다만?"

"아... 무슨 일로요이?"

"에이스 담당교육 네가 직접 할거지? 이런 일이야 네가 하는 일이 아니긴 하지만 얜 특별히 그치?"

"그래요이."

"알겠어. 그럼 마져 좋은 분위기 만들어."

삿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않고 터뜨리며 방을 나섰다. 그의 웃음소리와 발자국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 울림이 사라질때까지 에이스와 마르코 둘 다 말이 없었다. 째깍이는 시계바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디서 지냈어요이?"

마르코가 담배곽에서 담배 하나를 집어 올리며 물었다.

"친구네 집에서 지냈어.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즐겁고 재밌게."

가슴 속에서 울컥 화가 치밀었다.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저는 즐겁고 재밌게 지냈다는 말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지지

붉은 선을 만들며 천천히 담배가 타들어갔다. 담배는 마시지도 않았는데 입안은 벌써 텁텁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에이스가 쇼파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마르코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 걸린 담배를 뺏어다 입술로 살짝 물었다.

"켁! 켈록! 켈록! 하! 이런걸 왜 하는거야?"

기침을 얼마나 해댔는지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에이스는 빼앗은 담배를 마르코의 입술에 물려주었다. 에이스의 그런 의미 모를 행동을 가만 지켜보던 마르코는 그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손에 들어온 건 함부러 놓는게 아니야요이."

마르코는 담배를 물고 에이스를 내려다보았다.

"아가, 네가 이쪽 일을 하겠다고 했으니까 오늘 알려줄건 이거요이. 그게 빼앗은 것이든 본래 내 것이었든 그건 끝까지 내 것인거요이."

말이 끝나자 에이스는 예전의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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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3 19:11 | 조회 : 2,578 목록
작가의 말
하루, 날

15세 가벼운 묘사도 포함인데..; 그럼 앞으로 적을 건 왠만하면 다 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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