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저씨!"

부스스한 까만 머리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박혀있는 소년이 쇼파에서 일어나 거실에서부터 뛰어나왔다. 소년은 날이 10월의 입구임에도 검은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잘 다녀왔어요? 오늘은 뭐 했어요?"

아이처럼 매달려오는 소년에게 마르코는 저리 떨어지라는 듯이 손짓하며 짙은 회색 자켓을 벗었다.

"별일없었어요이."

침실까지 따라온 소년은 침대에 걸터 앉아 옷장 앞에서 하나씩 옷을 벗어내고 있는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래요? 아, 소매에 핏자국!"

소년은 마르코의 흰 셔츠 소맷단 끝에 묻은 피를 찾아내고선 과장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당황한 마르코는 황급히 양쪽 소맷자락을 끌어다 확인하기 바빴다. 핏자국은 오른손 소매에 방울져있었다.

'이런, 다음부턴 좀 더 조심해야겠군요이.'

"아저씨, 나도 같이 일하면 안되요?"

"안돼. 아직 꼬맹이인 주제에 이쪽일이 뭔지 알고 그런 소리하는감? 넌 그냥 열심히 학교다니고 대학교도 가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요이."

"칫"

소년이 갑작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메트리스가 울렁거렸다. 소년은 그렇게 방 문을 소리나게 닫고 사라졌다. 어느덧 셔츠까지 탈의한 마르코는 비죽비죽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욕실로 향했다. 남은 옷을 다 벗어 바구니에 담고 샤워기의 꼭지를 돌렸다. 미지근한 물이 떨어지며 머리카락을 적셔나갔다.

'에이스, 저 녀석을 어떡한다.'

에이스는 한 동네에서 주먹자랑 좀 하고다니다 조직의 1인자이자 조직원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에게서 거둬졌다. 그를 조직의 2인자인 자신에게 맡긴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에이스와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함께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녀석이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하지만 에이스는 보란듯이 조직에 들어오고자 기를 썼다.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고요이. 하-'

어느덧 머리카락은 완전히 적셔져 비죽하던 모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르코는 꼭지를 돌려 찬 물이 나오도록했다. 물은 금새 차가워졌다. 약간 지나칠정도로 차가운 물이 머리와 몸으로 떨어졌다. 물방울은 탄탄한 근육을 따라 흘러내렸다. 한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찬물을 맞고있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가운을 걸치고 욕실을 나섰다. 주방에는 평소라면 지금쯤 식사 준비를 마치고 달려와 어서 밥 먹자고 보채야할 에이스가 보이지않았다.

'이 녀석 제대로 삐졌나보네. 하여간 아직 애야. 이런데 무슨 일을 하겠고.'

바닥에는 마르지 않은 마르코의 몸때문에 여기저기 물자국이 나있었다. 그는 삐져버린 아이를 찾기위해 집안을 뒤지고 다녔다. 덕분에 바닥은 온통 물기가 가득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에이스는 보이지않았다.

'이 녀석 어딜간거야! 왜 아무데도 없는 거냐고!'

집 안 어디에서도 에이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마르코는 초조하고 불안해져갔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왔던 녀석은 갑작스레 떠나갔다.


*


"에이스~ 밥 먹자!"

노란 머리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옥탑에 펼쳐진 상에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올려두고 있었다.

"난 고기 많이!"

끼익거리는 옥탑방문을 열며 방금 씻은 듯한 에이스가 얼굴을 먼저 내밀며 나왔다. 그는 삼선 슬리퍼를 끌고 곧장 상으로 달려들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골목마다 노란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 불빛이 구석 구석 숨어있던 그림자를 찾아 땅바닥에 그려놓았다.

"사보! 이거 엄청 맛있어! 얼마만에 고기야."

에이스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신경도 쓰지않고 양볼에 고기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야, 천천히 먹어! 나도 좀 먹자!"

에이스와 사보는 고기가 사라질때가지 말 한 마디 없이 오로지 먹는 것에 집중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나는 소리는 우물거리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 젓가락질 소리 뿐이었다.

"으어~잘 먹었다! 사보 고맙다!"

"인간적으로 고마우면 내것도 좀 남겨주지! 자! 마셔."

사보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까만 밤 하늘과 그 아래 반짝이는 인공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 에이스에게 맥주 한 캔을 건냈다. 고기 만찬 후 맥주 한 캔으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은 두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즐기는 것이었다.

"오~ 땡큐."

에이스는 받아든 맥주를 땄다.

딱!

흰 거품이 부글거리며 올라왔다. 에이스는 멀컥이며 맥주를 넘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남겨지는 시원함이 기분 좋았다.

"에이스, 너 언제까지 여기있을거야?"

사보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주변을 닦으며 물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발 아래 펼쳐진 반짝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이제 곧 나갈거야. 그럼 오늘이 그립겠지~"

즐거운듯 웃는 에이스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사보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이 닿아 씁쓸해보였다.

"그 사람에게 돌아갈거야?"

"응. 이제 가볼 때가 된 것같아. 그 남자에게."

에이스는 오른손에 들고있던 맥주캔을 한 번 흔들고선 다시 벌컥이며 남은 내용물을 몸 속으로 들이부었다.


*


벽에 걸린 시계가 12시 45분을 나타내며 째깍이는 소리를 냈다. 마르코의 사무실은 황량하다고 표현할 만큼 있는게 없었다. 사무용 책상과 의자, 컴퓨터, 손님용 테이블 하나, 3인용 소파 하나 벽에 걸린 시계가 20평 사물실 집기의 다였다.

똑똑

"아직 있지?"

방 주인의 대답이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삿치였다. 그는 소파에 널부러져있는 마르코에게로 다가갔다.

"하아, 정말 미치겠네."

삿치는 머리가 아픈듯이 손을 머리에 얹고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이마에 팔을 올리고 눈을 감은 마르코 옆에 쭈구려앉았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거야? 언제까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여기서 이렇게 지낼거냐고?"

마르코는 대답이 없었다.

"너 그날 이후부터 너무 막 나가고 있는 건 알고있지? 애들이 무서워서 곁에 가지도 못하겠다고 난리야."

마르코가 느릿하게 입을 땠다.

"상관 마요이."

"잘도. 내 성격에 네 놈이 이러고있는거 두고보는 것도 지쳤다. 애가 자기 발로 나간걸 어쩌겠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얘기했어야했어요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했기에 나가버린거야요이."

"아주 좋은 부모 나셨네. 아버지가 주워다 던저준 녀석, 그만큼 신경써줬으면 된거야. 네가 진짜 보호자도 아니고, 그냥 같이 살던 꼬맹이 녀석 반항에 너무 깊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삿치가 쭈구렸던 다리를 펴고 일어나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마르코를 보고 말했다.

"... 그렇게 생각이 안돼요이.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요이."

마르코는 얼굴에 얹어진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또 어디서 떠돌아다닐 녀석을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이."

'기분이 아니라 마음이겠지.'

삿치는 고개를 가로져으며 생각했다.

"아~ 난 모르겠고, 너 조절 좀 하며 다녀. 네 나이가 몇인줄 알아? 기분 안 좋다고 막 가다 골로간다."

"푸흣! 아, 벌써 그런감? 애랑 살다보면 내가 몇 살인지 얼마나 늙었는지 잊어버리게 돼요이."

"간다. 너도 왠만하면 오늘은 집에 들어가."

발걸음을 옮기던 삿치가 문 앞에 우뚝 멈춰섰다.

"들어간 김에 며칠 안 나와도되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다시 적막이 감도는 방에는 문 밖 복도를 걷는 삿치의 발자국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마르코는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어이! 마르코!"

한쪽 면이 전부 유리인 사무실로 강렬한 햇빛이 쏱아들어왔다. 삿치는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쇼파에 누워 잠을 자던 마르코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부드러운 가죽이 단단하게 몸을 받쳤다.

"걔! 걔가 왔어!"

마르코는 다짜고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 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걔라니?"

삿치는 답답한 듯 열을 올렸다.

"그 애 말이야! 아버지가 주워다준 애! 걔가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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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22 16:28 | 조회 : 3,16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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