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x 박하령] 下 - 2

그 말을 하곤 하령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했던 몸을 뒤 돌아 정빈의 처소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운이가 소리치며 하령을 돌아세웠고, 운이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령은 이미 얼굴이 다 젖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왜 그렇게 우실거면서 준 겁니까”

“흐으...”

“그렇게 아파할거면서 왜!!!!!! 준거냔 말입니다!!!!!!”

“운아, 운아..... 흐윽...”




운이가 말로 몰아붙이자 하령은 결국 주저 앉아버렸다.
그 손수건을 다 만들었다고 좋아하던 하령이었고, 그 손수건을 정빈의 처소까지 오기 전에 계속 보고 먼지를 터는 하령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분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찢고 짖밟은 것일까
그들이 이렇게 깨끗한 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뭐가 있기에 모든 희망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일까
그저 한탄하고 대신 화를 내 주는 것 밖엔 해줄 수 없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중전!!!, 잠시...”




정빈의 처소에서 뛰어나 온 원은 하령을 잡아야 된다고 머리보단 몸이 말하고 있었다.
원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본능적으로 뛰어나왔다.
뒤에서 누가 그를 부르던 그는 들을 수 없었다.
오직 본능이 이끄는대로 행동하였다.
하지만, 그런 원이를 기달리는 것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슬피 눈물을 흘리는 하령의 모습이었다.




“중전...”




하령은 원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그리곤 다시 웃어보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괜찮은 거....”

“오지마세요!!!,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애써 웃어보이는 하령을 보곤 원이 괜찮냐며 다가가자 하령은 소리를 치며 그를 밀어냈다.
소리를 다 지르고 난 후 정신이 든 것인지 깜짝놀라며 하령은 해명을 하려 말을 놀렸다.




“아, 그것이... 제가 땅에 앉아 있다 일어나서 더럽습니다. 그러니 다가오지마세요.”

“...어찌하여 저 손수건을 정빈에게 준 것이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정빈의 선물이라고..”




다시 그 손수건을 생각하며 아까의 일들을 떠올리자 눈물이 차오르는 하령이었다.
하지만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피가 흐를 정도로 주먹을 쥐고 눈물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령은 여전히 원의 앞에서 울 수 없었다.




“왜 그게 정빈의 선물이냔 말이다!!!!”

“....정빈도 전하의 여인이 아닙니까, 정빈이 그 것을 못 가질 이유는 없죠.”

“너는 항상....”




힘들게 눈물을 참고 있으면서도 환하게 웃으면 말하는 하령을 보고 원의 몸 깊숙이부터 화가 차 올랐다.
그냥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무엇때문에 말을 하지 않고 꾹 참고 있는 것인지 원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 전하것도 많이낡았지요? 제가 조만간 전하것과 정빈,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것까지 만들어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너의 것으...”

“그것을 갖고 저를 잊지말아주세요.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 듯 싶습니다.”

“왜, 꼭 떠날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냐”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 전하”

“그런데 꼭 말하는 것이”

“저는... 전하의 옆에 있을 것이옵니다. 언제든지 전하께서 저를 찾으시면 볼 수 있게 옆에 있을 것이에요.”





하령은 원의 옆에 계속 있으면 자신만 상처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학대하였다.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오고 목으로 무언가 넘어올 것 같은 고통이 심해져갔다.
아무리 오랫동안 참아도 괜찮았던 고통인데 오늘따라 더욱 하령을 괴롭히던 고통은 결국 하령을 집어 삼켰다.




“으윽...”




결국 참았던 신음이 터져나왔고 하령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원은 하령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멀리 있던 원보단 운이 더 빨랐고, 운은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 하는 하령을 안았다.




“중전 아니, 하령아!!!!”

“..하령이라 부르지마세요...”




원이 하령을 부르자 운의 몸에 기대있던 하령이 대답했다.
하령은 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하령아”

“하령이라 부르지마시라고요.”




순간 하령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안 가 다시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운이를 살짝 밀며 스스로 몸을 지탱하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원이와 마주했다.




“....하령이라는 사람은 이 곳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저는 이 궁궐 안에 중전이 아닙니까.”

“...”

“처음부터 이 궁궐 안에는 박하령이라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하령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말을 하면 할 수록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일반사람이라면 흉측한 모습이겠지만, 하령은 달랐다.
하령의 얼굴을 본 사람은 하령의 슬픔과 아픔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을 정도의 슬픔이 묻어져있는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하.”

“...”

“저는 이 곳에 아예 없던 것입니다. 아니, 이 곳엔 제 자리란 것은 없습니다.”

“하령...”

“지금의... 저는 박하령이 아닌 박하연이 아닙니까...”

“...”

“그런데도 저는 전하의 곁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언제나 부르면 그 자리에 있는 아이가 될터이니...”




한참 후, 그 자리에는 혼자 멍하니 서있는 원이만 남았다.




***




“...”



처소로 돌아온 후 반시진동안 창 밖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하령이었다.
그리고 운이는 그런 하령이를 보며 망설이다 결심을 한 것인지 하령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련님”

“...”

“도련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러자 창 밖에서 시선을 떼고 하령은 운이를 쳐다보았다.
운이는 만족한다는 듯이 웃어보이곤 말을 이어갔다.





“도련님, 저와 돌아....”

“운아, 너는 본가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네?”

“오늘부로 너는 내 호위무사가 아니야,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도련님!!!”



쨍그랑-




함께 이 궁궐에서 도망가자고 말할 운이었다.
그런데 운이 보단 하령이 더 빨랐고 하령은 운이는 호위무사의 작위를 풀어주었다.
그 소리를 듣고 운이는 소리를질렀고, 한상궁은 놀라 찻잔을 깨버렸다.
하령의 시선은 마치 이 세사람의 이별을 말해주는 찻잔의 유리 조각으로 돌아갔다.




“운아, 너가 가지 않는다해도 보낼것이야.”

“진짜 왜 그러십니까!!!”

“운아, 너는 우리 집 종이 아니더냐, 그러니 내 말을 듣거라.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는 명령이니...”





하령의 말대로 운이는 하령의 집안의 종이었고,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한상궁이었다.





“마마, 운이와 함께 가세요.”

“... 한상궁”

“마마께 그것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해 말해 드리는 것이옵니다. 부디 미천한 노인네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한상궁에겐 미안하지만 저는 안 갑니다.”

“마마!!”

“대신 한상궁에게도 명령할 것이 있습니다.”






한상궁은 하령의 평상시 장난끼 많고, 온화한 표정이 아닌 굳은 의지가 보이는 표정에 흠칫하고 놀랐다.
그리곤 하령의 말에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상궁, 지금부터 대비마마의 상궁으로 들어가세요.”

“마마!!!!”

“도련님!!!!!”

“이제 두 사람에게 제 명령을 다 하였습니다. 이만 다들 제가 말한 곳으로 돌아가 주세요.”




하령은 그 소리를 하곤 정말 환하게, 너무나도 아름다워 잊을 수 없을 정도의 미소를 띄우며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넋이 나가 가만히 있는 두 사람을 병사를 불러 데려가라 명하였다.


넷이서 있던 따뜻한 공간은 차가운 바람에 한 사람이 먹혔다.
남은 셋은 서로를 의지하며 겨우겨우 버티고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바람에 의해 두 사람이 먹혀 사라졌다.
두 사람이 없어진 공간에는 써늘한 냉기와 쓸쓸해 보이는 하나가 남았다




***



“마마, 그만 일어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누가 왔습니까?”

“예, 대비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아... 들어오시라 하세요.”






그 둘을 그리 보내고 하령은 이부자리에 누워 눈물이 흐르면 흘려보내고 아무 것도 하지않았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든 하령을 대비가 찾아왔다.




“중전...”

“아, 오늘도 아침문안을 빼 먹었네요. 송구하옵니다.”

“그게 문제입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면 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대비 눈에 보이는 하령은 더 이상 예전의 하령이 아니었다.
혼이 빠져나가 남은 잔 감정들이 조종하는 목각인형처럼 보였다.
전과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만 따뜻한 온기는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




“하아, 대체 무엇이 중전을 이리도 망쳐놓은 것입니까...”

“제가 망가지다니요. 저는 멀쩡합니다.”

“.... 중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예?”




어제 대비에게 오기로 되어 있던 한상궁이었다.
하지만 대비에겐 한상궁이 오지않았고, 한상궁은 현재 행방불명이라는 것을 도저히 지금 상태에 하령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망가지면 이 아이가 잘못 될까 걱정이 앞섰다.





“한상궁이 사라졌습니다.”

“지, 지금... 뭐라 말씀하신 겁니까... 제가 잘못 들은 것이지요? 그렇죠? 대비마마”

“...”

“왜 아무 말씀 없으신거에요!!! 뭐라 말 좀 해 보란 말입니다!!!!!”

“...”

“아아...안 됩니다. 아니 된다고요...”




한상궁의 소식을 접하자 발악을 하던 가여운 아이는 끝내 주저 앉고 말았다.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눈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오르는 눈물에 그 가엽고 작은 아이는 점차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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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01 02:26 | 조회 : 1,209 목록
작가의 말
1603

와 진짜 이 편 쓰면서 엄청나게 느끼는 거지만 사극 정말 좋네요ㅠㅠ 진짜 이거 때려치고 사극만 쓰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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