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탈출 (준/임 시점)

"...네, 네. ...알겠어요. ..간다고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버렸다.
미간이 잔뜩 찌그러졌다. 갑자기 몰아져오는 두통에 머리가 띵하기도 했다.

"...후우.."

그 여자를 오랜만에 만나야 한다니.
짜증스러움과 가증스러움도 있었고.

옷걸이에 느슨하게 걸려져 있던 코트를 한손으로 들고 방문을 나섰다.


*


오랜만에 시내로 걸어가자, 카페 유리에 비친 그 여자가 앉아있었다.
내 표정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은채, 카페에 들어갔다.
초라한 옷차림, 초라한 머리스타일.

그렇게 잘났던 엄마는 평범한 아줌마로 바뀌어 있었다.

"..준후야."
"...."

억지로 반가운 웃음을 짓는 그녀가 정말로 미웠다.
토 나올 정도로.

"우리 아들 더 멋있어졌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난리도 아니.."
"본문만 말해요."

가증스러운 말을 내뱉기 전에 바로 막아버리는게 대책이다.

엄마는 잠시 뜨거운 커피잔을 쎄게 쥐었다.

"...준후야."

힘없이 내 이름을 부른 엄마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눈치보듯 내 표정을 살짝 바라보다가.

"...엄마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 엄마도.. 엄마노릇만 하게 해줘."
"......."

엄마노릇?
웃기시네.

"물론 준후 너가 나를 싫어하겠지만.."
"그냥 싫어하는게 아니라 가증스러운 건데요."

차가운 표정, 아니. 무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답했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놀란듯이 잠시동안 아무말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건 이 얘기를 하러온게 아닌 것 같은데."
"...무슨."
"..후우....,"

귀찮아.

"당신이 날 만나러 온건 아마도 돈 때문이겠지. 그걸 내가 모를줄 알아?"

큰 눈을 뜬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곡을 찔러겠지. 아마.
여기에다 건방진 표정까지 하면 완벽해. 아주.

"그럴줄 알고 챙겼어요.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돈."

흰봉투를 꺼냈다.
큰 액수를 넣어, 당신이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게. 엄청 많이 넣었어요.

테이블에 봉투를 올려놓았다.

내 생각대로 엄마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강준후. 너.."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화를 참아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 예전처럼 크게 한번 성질좀 내봐요. 어머니.

"..왜, 아들한테 이런 구실 받으니까 기분이 안좋아요? 아니, 이제는 당신 아들조차 안보이겠지."

일부러 성질을 돋구는 것도 있었지만 진심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남은 재산. 다 내가 가져서 배아팠어요? 당신같은 여자가 이렇게 찾아오는거 보니까. 안 봐도 뻔하네. 돈 달라고 광고하는 거잖아."

하고픈 말들을 속사포같이 쏘아댔다.
아마 이런걸 펙폭이라 하나.

짝.

차진 소리가 울렸다.
잠시동안 허공에 멈춰있던 엄마의 손은 어쩔 줄을 몰랐다.

"...아."
"...."

익숙해.

"..주, 준후야. 일부러 그런게 아니고.."

됐어. 그냥 빨리 끊어버리는게 해결법이겠지.

"..돈 드렸으니까 되셨죠. 이제는.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준후야.."
"..그땐 다신 안 봐드릴거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자리에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카페를 나갔다.
빨라진 발걸음에, 숨이 조금 찬 소리와 함께.

빨리 이 곳을 피해서, 너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갈래.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임수야. 임수야.. 보고싶어....


*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곧 바로 답할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다고.

나는 이곳에서 아마 점점 미쳐버리는 것 같다.

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내 정신은 오락가락했다.

답답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tv나 과학책에서 나오는 실험쥐가 아마도 이런 심정일 것이다.


그때였다.

다시 들려오는 발소리가 내 귀를 의심했다.
그 거친 발소리는 점점 가까이 와, 문을 거차게 열었다.

강준후?


괴로운듯한 표정과 거친 숨소리를 가지고 있는 강준후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번엔 또 뭐야.

"...뭐야.. 또."

이번에는 또 무슨 이유로 나한테 찾아온거야.
네 입에서 내뱉는 말로 나를 고문시키려고?
나를 억지로 안으려고?


강준후의 코트자락에서 싸한 알콜냄새가 확 풍겼다.

"..너 술마셨어?"
"...응."

그래, 지금 네 상태를 보니 정말 많이 마신 것 같다.
술에 강한 너가 이렇게 취한걸 보니. 얼마나 흥청망청 마셔댄 거야.

"..임수야.."
"..왜."

강준후의 취기가득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임수.. 임수.. 임수야..."

취하려면 곱게 취할것이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난리야. 강준후.
그렇게 애틋하게 이름부르면 좋을 줄 아냐.

"..강준후, 네 방으로 가. 지금 나 풀어줄 거 아니면."
"...나, 나.. 너무 괴로워. 미칠 것 같아."

강준후의 미간은 일그러져서 눈은 그에 따라 괴롭다는 듯이 대조되어 있었다.

너가 그렇게 괴로울때, 나는 더 괴로웠다고.

그런 강준후는 내 허리를 두손으로 붙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내손은 어느샌가 강준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있었다.

정말 미쳤나봐. 강준후가 이런저런 짓을 해도, 나는 아직도 강준후에게 옛정이 남아있는거야?

"..으음.. 임수..야."

갑자기 고개를 들은 강준후는 이성을 잃은듯이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럴수록 다른 한쪽손은 사슬에 걸려있어, 그 팔목만 더 아파올 뿐 이었다.

"..강준후, 아파..!"

내 목소리를 들은 강준후는 잠시 멈칫 했다.

"..우리 임수...., 아프면 안되지.."

이 말을 한 뒤, 사슬에 묶여있는 내 다른손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사슬을 만지작 거리며, 마치 사슬을 푸는듯한 강준후의 행동에 내 심장은 벌렁벌렁했다.

나, 이제 나갈 수 있는거야?

찰랑.

사슬이 침대와 부딪혀, 쇳소리를 냈다.

아, 풀어졌다.

뭐야, 이렇게 간단하게 풀어져도 되? 그것도 모르고 고생한 나는...

몰라, 이제 됬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갈 수 있다고.

침을 꼴깍 삼키며 강준후를 봤다.

술에 잔뜩 취한 강준후는 침대에 얼굴을 파뭍고 있었다.

이때야. 그래, 지금 나가면..


..나가면... 되는데....,

왜그럴까.

잠시 한자리에 서서 멈춰있었다.
발이 땅바닥에 붙어있는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이때다싶어서 나가야 하는데.. 왜....,

"...임수야.."

내 이름을 부르면서 칭얼대는 강준후의 목소리-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러는건 말이 안되잖아.

너한테 무슨 미련이 남은걸까. 그렇게 원했던 자유인데.

거봐, 내가 말했지. 이곳에 있는뒤로 아마 점점 미쳐버리는 것 같다고.

"...강준후.., 이 망할놈아..., 다 네 탓이야."

다, 네 탓이라고. 이 개새끼야.


진짜.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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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0 21:38 | 조회 : 4,811 목록
작가의 말
즈믄달

임수는 끝내 기회를 줘도 안나가여ㅠㅠ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엇지만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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