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다렸어. (임/준 시점)


"멍청이."
"..아니거든."
"맞는데."
"아이씨, 진짜."

자꾸만 멍청이라고 놀려대는 강준후때문에 나는 아니라고 답하기에 바빴다.

강준후는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화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지만, 강준후의 얼굴을 보고 나도 웃음이 베시시 하고 나와버렸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싫진 않았다.

평소에 무뚝뚝한 강준후가, 지금 나를 보면서 웃고 있으니까.


*


"..음?"

오랜만에 잠을 꽤 편하게 잔것 같았다. 물론 몸은 조금 찌뿌둥 했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손목에 있던 쇠사슬이 걸려 침대에만 꼼짝 못하게 되었다.

"...."

아직 강준후가 오지 않았네.

...이 시간대면 강준후는 꼭 오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건지.

"..!"

'드디어 미친건가.'

오지 않으면 다행인 강준후를 왜 기다리고 있는거야.
아니, 그냥 익숙해서 그래.

"하아.."

침대에 앉은 나는 잠시 멍 때렸다.

'미쳤어. 아임수.'

다시 한번 강준후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마음을 다짐하며, 잠시 방을 둘러보았다.

이 방은, 정말로 텁텁했다. 제정신인 사람도 정신병에 걸릴것 같으니까.
팔에 꽁꽁 묶여있는 사슬은 팔목에 자국 날때까지 세게 묶여져있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렇게 묶여있어서.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테니까.

-

몇 시간, 몇분이 지나도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가만히 따분하게 누워있는 내 기분은 정말 뭣 같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생각은 왜 강준후가 오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었다.

오지 않아서 다행인데..., 자꾸만 기분은 왜 이러는 걸까.


"...."

지금 내 모습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묶여있는 개 같다.


*


"준후선배!"
"어."
"무슨 생각 하길래 그렇게 멍때려요?"
"..그러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여자들에게 보여주기가 일쑤다.
여자후배는 일부러 더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하려고 애쓰는게 티가 났다.

내가 생각하는건 당연히 우리 임수지.

"술 안 마셔요?"
"난 괜찮아, 너희들끼리 마셔."

'임수 보고싶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임수에게 가지 못했다. 아침에 잠시 들렀다 갈걸.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루라도 안보면 미치겠으니까.

"야, 조금 양보해주지 그러냐."

동료는 다리를 툭툭 건들며 귓속말을 하고, 째째하다는듯 쳐다본다.

"..난, 꼬신적 없는데."

-라고 말하자 친구녀석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런 반응에 익숙한듯이 싱긋. 웃고 의자를 빼고 나선다.

"음.. 난 이만하고 가야겠다."

재미없어. 임수가 없는 자리는.

"선배, 벌써 가요?"
"응, 일이 있어서."

여자들은 아쉽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에 따라 남자들은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너 같은것들 상대해줄 시간 없어, 빨리가서 우리 임수얼굴 봐야하니까.'


*


철컥.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문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번쩍 띄였다.
나는 그 상대가 강준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이 온 개마냥 꼬리를 잔뜩 흔들기 마련이다.

"임수야, 나왔어."

그전에는 그렇게 듣기도 싫었던 놈의 목소리인데, 왜이렇게 반가운거야.

"왜이렇게 늦게왔.."

강준후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도 그에 따라 잠시 말을 멈췄지만.
다시 놀란표정에서 기쁜 표정으로 바뀌는 강준후가 얄미웠다.

"..나, 기다렸어?"

금세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왜 내 입은 끝내 열지 않는거야.

"임수야. 나 없어서 외로웠어?"

강준후는 신나서 묻는다.
바보같았다. 왜 그런말을 오늘 보자마자 한거야, 나는.

"..임수야."

강준후가 점점 다가온다.
강준후의 손길이, 손이 나를 쓰다듬으려고.

강준후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술냄새가 난다.

"..술 마셨어?"
"어. 조금?"

조금은 개뿔. 많이도 마셨으면서. 뭐, 걱정할 건 없었다. 강준후는 예전부터 술을 잘 마셨으니까.

"...왜 자꾸 물어봐. 진짜 나 기다렸어?"

큰일이다. 물어보고 싶은데 묻지도 못한 심정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답답했다.
사실 궁금했다. 아침부터 안오고 어디로 간건지.
강준후는 내 마음을 아는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잠깐 친구들좀 만났어. 만나서 술잔좀 기울었지."
"안 물어봤.."
"네 표정이 말하고 있잖아."

강준후의 말에 나는 뭐라고 답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내 표정이 말하고 있다는건.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모르겠어."

강준후의 손이 내 뺨에 닿는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떻게 되있다는거야.
정말로 그렇게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냐고.

"...나, 기다렸지?"

강준후의 억압적인 물음이어도, 억지로 답하라는 물음이어도..
나는 순순히 답할 수 있었다.

기다렸다고.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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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1-31 13:41 | 조회 : 5,269 목록
작가의 말
즈믄달

저도 기다렸어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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