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995년 06월 11일(20) 누나의 이름



1988년 07월 19일


엑시서로 활동하면서 키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법실력으로 단숨에 엑시스 최강 3인에 이름을 올렸다. 엑시스 활동을 하면서도 소년은 복수를 위한 계획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조력자이자 강력한 애완동물을 만들기로 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줄 파트너 격 존재를 말이다. 하지만 숲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흔하디흔한 생물을 파트너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초월자가 된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서려면 평범한 생물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부여하려한 것이 사고할 줄 아는 능력이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고등생물이라 치켜세우며 이 세계에 군림하고 있지만 사고란 인간에 국한된 능력이 아니라고 소년은 보았다. 인간도 결국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다른 동물보다 조금 우수한 뇌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인지력과 사고력이 보다 높은 단 몇 개채의 몬스터를 합성하는 것만으로 평범한 인간의 지능은 거뜬히 뛰어넘는 생명체가 탄생할 것이다.


소년은 이미 한 달에 걸쳐 제국의 곳곳에 마법진을 펼쳐놓은 바 있었다. 파트너의 재료로서 도마에 오른 몬스터는 많았다. 나무 위에 둥지를 트는 님블, 황야에서 서식하며 우두머리의 명령에 철저히 따르는 세블로우, 드래곤의 머리를 가진 도마뱀 드라질 등등…. 그들은 하나같이 지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몬스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의 하나가 바로 크리커터였다. 보통, 크리커터는 인간의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습성이 있어서 세상에 널린 서적으로는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학자의 아버지를 두고 있던 소년은 크리커터에 대해 연구한 고대인들의 문서를 곧잘 읽었다. 때문에 크리커터가 다른 몬스터들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앨딤산, 동굴 깊숙한 곳에 홀로 선 소년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는 거대한 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소년이 손가락을 튕기자 지면에 마법진이 잇따라 빛을 뿜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와 문양은 같았지만 가지각색의 띠를 두른 빛의 나선이 오색 찬란히 휘어 오르며 공중에서 뒤얽혔다. 그것들은 나란히 늘어서서 마치 소년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낮게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서먼.”


소년이 한마디 중얼거리자 마법진 위로 차례차례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슬립.”


몬스터들이 소환됨과 동시에 소년은 그들을 잠재우는 마법을 걸었다. 소년의 의지에 따라 몬스터들은 소환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워 잠에 들었다. 자신이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무사태평 잠든 몬스터들을 보고 소년은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너희들은 한 몸이 될 것이다. 각자 개개의 육체는 가지지 못하겠지만 하나의 고등생명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자신이 그 중 한 부위가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광일 것이다.


“크르르르르르르…….”


낮게 목을 울리는 짐승의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주위에 쓰러져 잠든 크리커터들 사이에서 홀로 일어나 있는 몬스터는,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피를 닮은…… 순수한 적색의 털. 소년은 처음 보는 몬스터에 놀라있었다. 크리커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 중 여왕 격인 개체가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붉은 털을 가진 크리커터는 소년이 읽은 어떤 서적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드 크리커터는 숨겨진 세상의 지식을 접하는 충격이었지만, 소년이 진정으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법이란 원래 행사한 사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력이라는,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한 뒤에는 높은 확률로 그 결과가 따라오는 법이다. 하물며 한 마을 주민들의 마력을 통째로 흡수한 소년이다. 실패할 가능성을 따지는 편이 통계를 확립함에 있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소년의 마법은 강력했다. 그런데도 저 붉은 털의 짐승은 자신의 네 다리로 서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며 연구대상에 의한 고양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마법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마법을 버티는 몬스터가 있다니! 그것이 소년에게는 흥미로서, 더없는 흥분으로 다가왔다. 거역할 수 없는 흡인력에 소년은 몽유병자처럼 그에게로 한걸음씩 다가갔다. 레드 크리커터의 눈이 명백한 경계의 빛을 띠며 소년에게 향했다. 그 눈빛을 받으면서도 소년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 생명체를 연구하는 상황에서는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실험자는 피실험자를 연구하며, 피실험자는 실험자가 하는 데로 가만히 있는다. 실험자와 피실험자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꾸며져 있지만 결국은 강자와 약자의 존재인 것이다. 소년은 그 관계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느꼈다. 소년은 흥미가 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생명체든 뭐든 간에 속을 갈라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눈에 새겨 넣듯이 연구에 몰입했다. 거기서 연구 당하는 개체의 동의나 의사는 일체 개입되지 않았다. 소년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이 얼마나 확실한 상하관계란 말인가!


소년이 열 걸음 밖까지 다가오자 레드 크리커터가 뛰어올랐다. 그의 발톱이 소년에게 닿는 것보다 빠르게 푸른빛을 띈 소년의 손가락이 그를 향했다. 소년의 옷에 피를 튀기며 레드 크리커터는 땅바닥을 굴렀다. 그런데도 그는 얼마 후 다시 일어섰다. 치명상을 입혔을 생각인데도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그는 일어섰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년의 지적 호기심이 한층 부풀어 올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육체를 갈라서 연구하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어깨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레드 크리커터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낱 짐승이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니. 하지만 소년의 눈에는 혼동의 여지없이 붉은 입가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어째서 웃을 수 있는 거지? 생존의 여유가 보이지 않는 열세의 상황에서 그저 허탈하게 웃는 것인가? 하지만 소년의 그 생각은 꿈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백 년간 크리커터의 여왕으로 군림한 레드 크리커터이다. 그에 걸맞은 관록과 능력을 갖춘 그가 아무런 대책 없이 미소를 흘리다니……. 소년은 그를 너무 얕보고 있었다. 소년의 옷에는 그의 피가 묻어있었지만 소년이 그에 대해 의식할 정도의 지식이 없었다. 그렇기에 크리커터의 여왕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고 소년은 영문을 몰라 눈썹을 찌푸린 것이다.


다음 순간, 몸이 튀며 소년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주위에는 죽은 듯 잠들어있는 몬스터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레드 크리커터는 온데간데없었다. 곧바로 서치 마법을 걸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레드 크리커터는 이미 한참 전에 동굴을 빠져나가 있었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다도 소년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몬스터들 중에서도 보기 힘든 부류에 속하는 크리커터. 그들 중에서도 한층 특이한 변종 몬스터를 애완동물의 일부분으로 만들면 파트너의 희소성이 한껏 치고 올라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기회를 소년은 아깝게 놓친 것이다.



-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한숨이 나와.”
“…….”
“왜 그래? 따귀 한 대 맞은 사람처럼.”
“…그때 도망친 레드 크리커터가 제 왼팔을 문 것입니까…?”
“왼팔을 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지? 네 왼팔은 잘 움직이고 있지만?”
“…사실 어릴 적에 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리레프 산맥 부근에서 흉악한 몬스터가 발견되었다는 민원을 받고 사냥하러 나선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경험을 쌓는 것을 중시한 아버지는 저를 그곳에 데려가셨고 그곳에서 저는 갑자기 뛰쳐나온 레드 크리커터에게 왼팔을 물리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냥을 따라나선 마법사들이 저를 구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한 나머지,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의논을 거치지 않은 탓에 데트로 사이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제 팔과 레드 크리커터가 융합하게 된 것입니다.”
“호오, 융합이라. 데트로 사이드 안에 들어가면 십중팔구가 소멸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용케 살아남았구만?”
“…….”
“알았어, 알았어. 답하면 되잖아?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네 질문의 답은 ‘그렇다’야.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레드 크리커터라는 녀석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만? 그러니 내가 놓친 녀석은 지금 네 왼팔 안에 들어있는 녀석이 맞아. 그건 그렇고, 키챤이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네 왼팔의 비밀이 이제야 풀리네. 그가 죽어 없어진 뒤라서 안타까울 따름이야.”


소년은 얼굴을 가까이 댄 그 덩치 큰 몬스터의 콧등을 긁어주며 말했다.


“내가 이 아이의 일부분으로 삼으려다 놓친 레드 크리커터가 네 왼팔의 일부분이 되다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애완동물의 제작 자체를 손 놓아 버릴 소년이 아니었다. 소년은 낮에는 키챤으로 엑시스의 활동을 하면서 밤에 틈틈이 제작을 하였다.


소년은 아쉬운 데로 남은 몬스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각 종류의 무리 중에서 한 마리씩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했다. 선별작업을 거친 몬스터들의 육체와 뇌를 분리하여 하나로 합성했다. 그 결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몬스터를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것이 바로 항상 소년의 옆을 지키는 드래곤의 형상을 한 몬스터였다.


사실 그의 육체는 어떤 모습으로든 제작할 수도 있었다. 다른 개채 간의 합성에서, 육체는 다만 정신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소년이 원하는 대로 변형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의 형태는 소년의 취향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소년은 작업을 마친 뒤 파트너가 된 생명체에게 과거,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누나의 이름을 주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5-12-14 19:28 | 조회 : 1,379 목록
작가의 말
nic49117918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