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995년 06월 11일(17) 구토감



1974년 05월 01일


소년은 지금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실제로 죽다 살아난 적도 허다했다. 하지만 소년은 결국 살아남았다. 소년이 향하는 곳에는 항상 악이 존재했고 소년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소년의 예상의 범주 안에서 활동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소년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년이 바라는 것은 다만 생존하는 것이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생존을 앞세워 몸이 다치더라도 고치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죽음에 근접한 피해라 하더라도 소년이 가진 마법은 그것을 능히 고쳤다.


소년은 마치 자신이 없는 것처럼 생활했다. 그때쯤 맞부딪치기보다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소년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이동할 때는 골목길을 주로 이용했으며 음식점에 들어가서도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돈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한정적인 금전과 일용할 양식이 타협점을 찾지 못했을 때 소년이 낸 결론은 자신의 육체적 조건을 바꾸는 것이었다. 소년은 하루 필요한 양분을 도출해서 점차적으로 먹을 양을 줄여나갔다. 그에 따라 소년의 몸은 최소한의 물과 음식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변화를 이루었다. 그 결과 소년은 빵 한 조각과 물 한 모금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소년은 마도서를 계속해서 익혀 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절반가량을 습득해 마법사라 불려도 될 정도로 소년은 성장했고, 그것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마법사로서의 실력이 적정수준에 올랐을 즈음 소년은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마법을 많이 알고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도 자신이 인간인 이상 그 또한 증오해야할 대상임에는 다름없다는 것을. 결국 인간이라는 족속에 그친 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자 소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심한 구토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기피되기는커녕 사라져야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해충이 된 것처럼 말이다. 시급히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 심지어는 자신이 호흡하고 있는 것 자체에 극심한 혐오감을 느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초월한 무언가가 되어,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월등한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복수하고자 함은 그저 동족혐오일 뿐이니까.


거기서 소년이 떠올린 것이 바로 ‘초월자’였다. 초월자란 몸속에 방대한 마력을 품어 그 정도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변하는 인간의 최종형태로,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생명체를 뜻했다. 초월자가 된 생명체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한마디로 불로불사의 몸을 갖는다고 전해진다. 영생을 원하는 많은 마법사들이 도전하였고, 초월자가 되기 위해 마법사가 되려고 한 자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소년의 책 마지막 쪽에 초월자가 되는 법이 자세히 적혀져 있었다. 그 내용의 도중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재료는 인간의 목숨이며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 그것이 불로불사를 원했던 마법사들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이며 실패의 원인이었다. 그것이 그들과 소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살인을 결심했을 때는 주저가 있고 살인을 저지를 때는 인정이 있기 나름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절망해버린 소년에게 그런,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성이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선 완벽한 성공을 위해 실험이 필요했다. 그 날은 황제가 태어난 날이라고 해서 제국 안에 떠들썩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 혼잡을 틈타 사람을 납치하기로 했다. 장소는 당시 방을 빌린 여관이 있는 마을 템시크. 희생물을 고르기 이전에 소년에게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움직이는 그곳에 반드시 세간의 눈이 향하게 될 것이다. 그 시선을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잊을 정도로 자주 모습을 바꿔서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만 모습을 바꾸는 마법은 처음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공여부가 불투명했다.


“체인지.”


방에 푸른빛이 충만해졌다. 소년의 주위에 빛의 조각이 마치 천체처럼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푸른 마법진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에게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 무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기서 아무런 가치도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소년에게 있어서는 의지의 힘, 그것이 현현한 형태 그 자체였다. 마법진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도움닫기였고, 거기서 뿜어 나오는 빛은 소년의 마력이 운동하는 증거였다. 소년의 시선을 쫓듯이 마법진의 새로운 선이 뻗어간다. 마치 소년에게 재주라도 부리듯이 화려하고, 현란한 춤사위를 뽐낸다. 그것이 복잡한 형태의 기호로 완성되는 순간, 마법진은 강렬하게 깜박였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던 조각이 자석처럼 소년의 몸에 달라붙었다. 피부에 빛이 스며들고, 눈부심이 가시고 나서야 소년은 눈을 떴다. 소년은 거울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얼굴의 생김새나 체형에 변화는 없었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붉은 빛이 띄던 머리칼이 완전히 검정색으로 물든 것뿐이었다. 소년은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지금의 모습과 정반대인,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려고 할 생각이었다. 처음 하는 것치고 성공적이었지만 소년으로서는 몹시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소년은 하는 수 없이 그 모습으로 여관을 나섰다.


해가 지고, 소년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방바닥에는 네 명의 어린아이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들은 기절한 상태였다. 남자아이 둘과 여자아이 둘이었다. 딱히 성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미지의 힘을 얻기 위한 마법의 실험이었기 때문에 성공의 기준을 알기에는 적당한 결과였다. 아이들 밑으로 작은 마법진을 형성했다. 초월자가 되기 위한 의식의 제물이었다. 물론 결과는 제물로 바쳐질 인간의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해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이미 상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얻고자 했던 건 요령과 자그마한 결과였다. 그것을 위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결과는 따라오지 않았다. 소년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초월자의 의식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마력이 들어오는 것을 느껴야 할 터였다. 그것이 매우 미세할 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느껴지지 않다니…….


소년은 그들 중 갈색머리의 남자아이에게로 다가가 입가에 손을 갖다 대 보았다. 가느다란 숨이 느껴졌다. 세간에서는 마법이 특별한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며 마력은 그들에게만 깃드는 특수한 힘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마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개체마다 그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것이 현저히 두드러진 자가 마법사가 될 가능성을 띠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력은 생명력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력이 전부 고갈된 인간은 생명력을 잃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보통 수준의 마력을 가진 인간은 마법사와 달리 그 마력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마력 고갈이 사망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만에 하나 그 마력을 썼다고 해도 그 양이 지나치지 않은 이상 생사가 걸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되기 때문이다. 다만 채워지는 상한선에 개개인의 차가 있을 뿐이다. 소년이 이 아이들에게 쓴 마법은 그들 속에 잠재된 마력을 모두 빼앗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쯤 이 아이들은 호흡을 멈추고 죽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태평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딘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소년은 텔레포트로 그들을 돌려보낸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제물로 바친 인간의 마력을 빼앗는 것. 그것이 초월자가 되기 위한 의식의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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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4 19:17 | 조회 : 1,38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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