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995년 06월 11일(15) 말 한마디에 필사의 의지를 담는 것



소년이 우선적으로 습득하기로 한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공격 주문이었다. 지금까지 소년이 배운 마법은 힐링, 서치 등의 보조 계열뿐이었다. 공격 마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배우지 않고 지나갔다. 당시의 소년은 공격 계열이 어째서 존재하는지 의아하기까지 했고, 애초에 다른 무언가를 공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년이 아직 아무 것도 모르던, 가족이라는 평화의 틀에서 안주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소년은 주변에 숨은 악의를 깨달았고 언제까지고 벌거숭이인 채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찾던 몬스터를 발견했다. 네발짐승에 몸집이 크며 빳빳한 털을 가졌고, 입 밖으로 거대한 엄니가 툭 튀어나온 들뤼 라옵이었다. 주변 마을에 가끔씩 나타나서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들고 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소년은 손가락을 치켜들고 파이어 볼이 발동하는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목소리를 듣고 반응한 들뤼 라옵이 소년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러기엔 늦은 것 같았다. 들뤼 라옵의 머리가 소년을 들이박기 직전 허공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와 들뤼 라옵을 습격했다. 비명을 질러대며 땅을 뒹군 들뤼 라옵은 꿈틀대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소년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당한 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소년은 거기서 마법의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했다. 주문을 외기 시작한 시점부터 마법이 발동할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마법은 대부분의 주문이 책 한 쪽의 절반 또는 그보다 넓은 면적의 장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급 마법으로 넘어가면 2쪽 이상 되는 주문도 수두룩했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상황적으로도 급박하지 않다면 5쪽이든 10쪽이든 읽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투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숨을 돌릴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공격 수단으로 몇 쪽이나 되는 장문을 읊는 것은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주문을 완전히 생략한 호명법이라는 마법 발동법도 존재하긴 했지만 불과 2, 3년 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개념이라 전례가 적었고 무엇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호명법이란 ‘마법은 의지의 힘이기 때문에 강한 의지만 있으면 주문을 읊을 필요 없이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 라는, 카이덴이 발표한 학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마법에 있어서 주문이라는 건 앞을 보기 위해 눈을 뜨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절차이며 일부러 가르쳐 주지조차 않는 세상의 이치였다. 카이덴의 학설은 여태껏 살면서 눈을 깜박이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눈을 뜰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나 같았다. 학계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득달같이 반박하고 나섰지만 마법사들로부터 차츰 사실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그들은 조용히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카이덴의 학설을 증명한 마법사들은 예상외로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마법사로서의 경험과 경력이 얕은 견습이였고, 그들에게 가장 불만인 것은 종이 한 쪽의 반을 채우는 긴 주문이었다. 무슨 일이든 순식간에 해내는 자신을 상상하며 마법 세계에 입문한 그들에게 다 읽기도 벅찬 주문은 마법사의 현실을 알려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카이덴의 주장은 길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카이덴의 학설을 바탕으로 마법 발동에 필요한 주문을 조금씩 줄여가며 실험했다. 사용하려는 마법과 관계없는 문장, 상대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어, 무식하게 과장된 표현, 여러 품사 등을 가지치기 해나가다 보니 남는 건 마법의 이름이었다. 학설을 증명한 이후 그들은 주문을 읊는 발동법을 기본법이라 칭하고, 이름을 부르는 발동법을 호명법이라 명명했다.


말 그대로 이름을 불러 마법을 발동하는 호명법은 주문을 읊을 필요가 없는 대신 넘기 힘든 난관이 존재했다. 호명법이 알려진 이래로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 혁신적인 발동법을 익히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도전한 이의 대부분이 허탕을 쳤다. 그것은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 실패 이후로 소년은 지금까지 안 된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법을 대하는 소년의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어릴 적에는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는 도구였다면 지금은 갑주이자 창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명검이라도 다루지 못한다면 무용지물. 엄습하는 악의를 막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손에 쥔 무기를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년은 마음을 먹고 나무를 향해 섰다. 그리고 학설을 증명한 견습 마법사들의 방식을 토대로 연습을 시작했다. 책이 있기 때문에 마력이 떨어질 일도, 마법의 위력이 약해질 염려도 없었다. 가족을 부양할 필요도 없었고 시간도 충분했다. 몇 시간 뒤 소년은 다시 들뤼 라옵을 발견했다. 그때 작은 구름이 태양을 가려 숲 속에 그늘이 드리웠다. 소년은 지체하지 않고 손을 뻗어 외쳤다.


“파이어 볼!”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들뤼 라옵이 단말마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그가 이쪽을 알아채기도 전이었다. 이로써 소년은 호명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는 비단 파이어 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소년의 마력이 닿는 한계선까지의 마법을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소년에게 주문을 줄이는 과정은 필요 없었다.


마법사라면 주문을 외는 것만으로 파이어 볼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파이어 볼을 발동시키기 위한 주문 그 자체에 의지의 힘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다. 술자가 주문을 욈으로써 그 글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불덩이를 만들어 내겠다는 마음이 태어나면서 비로소 의지의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문은 말하자면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촉매 역할을 했다. 그것을 다만 ‘파이어 볼’이라는――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무미건조한 한 줄의 단어로 마법을 발동시키려는 것이 호명법이었다. 주문을 외는 것과 상응하는 의지의 힘을 그 한행의 단어에 담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술통에 담긴 술을 작은 컵 하나에 옮겨 담는 작업. 그래서 호명법은 잘 알려진 것과는 상이하게 실제로 사용하는 마법사가 드물었다.


마법사는 대부분 귀족 가에서 태어나 부유한 삶을 영위한다. 그런 그들에게 다만 짤막한 단어에 강한 의지를 불어넣기란 불가해하면서도 무의미한 작업이었다. 작은 불덩이를 하나 쏘려는 건데 거기에 어느 누구가 필사적인 생존에 필적하는 의지를 가지려 할까. 흔들림 없는 안식 속에서 절박함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는 안이함이 호명법을 쓸 수 있는가 없는가를 구분하는 유일한 척도였다. 소년은 삶의 낭떠러지에 내몰려 있었고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소년은 주변에 몸을 숨긴 악의 존재를 깨달은 그 순간부터 호명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문은 소년에게 거추장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의 의지가 변하지 않는 이상, 마법은 다만 호명되는 것으로 그의 부름에 응할 것이다.


그때 소년의 곁으로 정체모를 사람들이 접근했다. 그들은 무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한 걸음 물러서며 몸을 굳혔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한 남자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띠우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용병이며 몬스터 사냥의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의뢰는 역시나 들뤼 라옵에게 골치를 썩이는 마을 주민의 토벌 요청이었다. 그래서 파티를 모집하던 도중 소년의 마법을 보았다는 것이다.


“마침 마법사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
“같이 몬스터 사냥하자!”
“물론 보수는 두둑하게 챙겨줄게.”


수중의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의를 받아들인 것에 모두가 기뻐하며 이제부터 너는 우리들의 동료라며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소년이 그들 하나하나와 악수를 나누고 통성명이 끝난 다음에는 따라오라며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그들이 사냥할 몬스터가 있는 숲 쪽이 아닌 마을 쪽이었다.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의문을 느낀 소년이 묻자 의뢰를 수행하는 날은 며칠 뒤이며 식량과 무기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답했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적당한 여관에 들어갔다. 리더 격의 남자가 지금 수중에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처음에 소년은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의아해하는 소년에게 남자가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이자 그제야 깨닫고는 품에서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소년을 포함한 용병들의 돈을 조금씩 모아 여관에 묵게 되었다. 소년이 묵게 된 방은 2층, 작은 침대와 소박한 가구가 들어 차 있으며, 작은 창으로 바깥을 볼 수 있는 방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잠에 들기 전 소년은 목이 말라 잠시 방을 빠져 나왔다. 어두운 복도를 더듬어 나아가는데 계단 아래에서 흔들리는 불빛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소년에게 접근한 용병들의 목소리였다. 엿들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로 오가는 말들은 소년의 발걸음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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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3 16:08 | 조회 : 1,34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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