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소년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였다.

“황녀님을 뵙습니다.”

황녀라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니 많이 당황한 모양이다.
‘황녀님을 뵙습니다.’라는 인사가 아니라‘황...황녀님을 뵙..뵙습니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애초에 내 속에는 22살 먹은 또 다른 내가 들어있으니 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귀여웠고 한편으로는 웃겼다.
첫 만남이니 일단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을 했으나 소년의 넋 나간 표정 때문에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크게 웃었고 내가 그렇게 크게 웃자 소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난 손으로 눈물을 닦고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어…음…미안해. 너무 웃었지?”

내가 사과하자 소년은 금방 굳었던 표정을 풀고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순간 우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왜 그렇게 대놓고 웃었던거니, 아까의 나! 안되겠다, 이 어색함부터 해결하자!’

난 어색함을 해결하고자 내가 지을 수 있는 미소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난‘ 루나’라고 해. 잘 부탁해. 음…”

이름이 뭐지.. 내가 말을 흐리자 소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루크. ‘루크 데 막시밀리안’이라고 합니다. 저도 황녀님을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우와…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어린아이답지 않게 말이 술술 잘나오네.’

“근데 실비아, 아들까지 데리고 무슨 일이야?”
“루크가 자기도 황궁에 가고싶다고 그러더라고요.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데려와 버렸어요.”

실비아가 루크를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이 지었다.

‘아니 그 표정을 네가 지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안 된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잖아?”

그러자 실비아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양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래요! 이렇게 가고 싶어 하는데……”

실비아가 약간 울상을 지었다. 순간 저사람은 실비아의 탈을 쓴 제시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평소 내가 아는 실비아가 아니였다.

“아…그래…그렇구나.”

안 된다고 못 박아놓든 해서 안 데리고 갈 수는 있었지만 아들이 너무 가고 싶어하기에 어쩔 수없이 데려왔다면 결론은 하나!

“실비아, 너 아들바보구나?”

실비아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인정하는 모양이였다.
그래. 아들이 원한다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에 데려오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였다.
일단 욕먹을 각오를 하고 데리고 온 거니까.
물론 난 그녀를 욕하거나 그녀에게 화를 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주위에서는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황녀의 유모가 황녀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궁까지 데리고 와서 돌본다는 그런 헛소리를 말이다.
뭐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다 막아줄거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그런 내가 이상했는 지 제시가 물었다.

“황녀님, 왜 그러세요?”

그 말에 난 정신을 차리고 살짝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난 루크를 봤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그가 잠시 눈치를 보다가 실비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데 무례인지 알면서도 순간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소년의 어머니인 실비아의 미소와 정말 똑 같은 미소였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 있단 말이냐! 이 불공평한 세상아!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3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어머니, 그럼 전 이만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응? 벌써 가?”

내 물음에 루크 대신 실비아가 대답했다.

“루크는 오늘 가정교사가 오기로 했거든요.”
“가정교사? 벌써?”

보통 8살때부터 귀족들은 집에 가정교사를 불러 본격적으로 자식에게 공부를 가리킨다고 절대이른 게 아니라고 실비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그렇구나. 공부 열심히 해! 자주 놀러와. 그때는 이야기 더 많이 하자.”
“예. 황녀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