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번째 날 저녁

아시나요?

요즘은 괴담이라하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무서운 이야기를 떠올리지만,
그 본질에는 괴이한 이야기 뿐만 아닌 기이한 이야기도 포함된다는 것을.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옛 전설이나 신화들도 괴담에 포함될 수 있겠죠?

답이 없는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오늘은 전설의 문을 한 번 두드려 볼까 합니다.

그럼 모두들 함께 즐겨주시길.


약 5백여 년 전의 서울,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임씨 성의 총각이 있었다. 비록 글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행실이 바르고 효심이 지극해 주변에서는 그를 임도령이라 높여 불렀다.
보릿고개가 시작될 무렵의 어느 봄날, 임도령은 며칠씩 굶는 어머니를 위해 광주에 사는 부자 친척집에 식량을 꾸러 가기로 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한 번 갔던 친척집이라 기억을 더듬어 가니 기억에서보다 훨씬 먼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임도령은 자신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상가상으로 해까지 저물어버렸다. 마음 같아선 아무데고 주저 앉고 싶지만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뛰다시피 걸었고, 오두막 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오두막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난 임도령은 집 앞에서 망설였지만, 맹수밥이 될 지 모르는 산에서 밤을 새우니 모험을 택하기로 했다.
"저, 계십니까?"
아무도 없던 것 같은 오두막의 방문이 열렸다. 나온 것은 놀랍게도 갓 스물을 넘겼을까 싶은 여성. 임도령은 산 깊은 곳에 이렇듯 빼어난 외모의 여성이 홀로 산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의 사정을 들은 여성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이내 마음을 정한 듯 그를 안으로 들이고 음식까지 차려주었다. 배가 부르도록 음식을 먹은 그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졸다가 결국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던 임도령은 미심쩍은 기분에 걸음을 돌려 오두막이 있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엔 커다란 고목나무 한 그루만 서 있을 뿐, 집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자신을 용녀라 밝혔던 어젯밤의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었다. 임도령이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자, 어젯밤과 달리 쌀쌀맞은 태도로 그녀가 말했다.
자신은 본디 5백년 묵은 암구렁이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 세상 남자인 임도령의 덕으로 그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녀는 가볍게 하늘로 올라갔다. 임도령은 멀어져가는 그녀를 쫓아갔다. 그때 바람에 섞여 용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제가 있던 자리에 비늘 세 개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곳에 도련님 조상의 묘를 쓰십시오. 그러면 도련님의 자손 가운데 뛰어난 장수가 나올 것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얼마 후 하늘에서 비늘 세 개가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비늘 세 개는 곧 세 그루의 매화나무로 변했다.
집에 돌아간 임도령은 어머니에게 그 일을 전했고, 아버지의 묘를 그곳으로 옮겼다.
이 임도령의 손자가 바로 병자호란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다.
그때부터 이곳은 매화가 땅에 떨어진 모양의 명당, 매화낙지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송파구 오금동에 속하는 개롱리라는 작은 마을에 이 매화낙지형의 명당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아실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도 이러한 '괴담'이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그저 바로 옆에 물로 둘려 싸여 음기가 강한 나라에서 오는 '괴담'이 많고 접하기 쉬워서 한국의 '괴담'에 신경 쓰실 겨를이 없었던 것.

혹은 여러분은 이런 '괴담'을 전설으로 치부할 뿐, '괴담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

누구는 괴담이라 하고, 누구는 그저 옛이야기라고만 하는 애매한 이야기들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전설이죠.
지금 이 순간도 이 전설들은 그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한 채 사라져가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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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07 22:43 | 조회 : 1,31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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