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청소부 part 1.

무시하지 마! 쓰레기 인간 혁명기



[03] 쓰레기와 청소부 part 1.



눈을 떴을 때는 강 위였다. 팔을 꿰뚫었던 화살은 온데간데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난 여태까지 꿈이라도 꾼 것일까?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도 잊은 채 버둥거리면서 수면을 발로 찼다. 내 입에선 짧은, 목 쉰 비명이 흘러나왔다. 겨우 발버둥쳐서 수면으로 올라온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쉰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처음보는 관목들이 즐비했다. 주인님의 저택도 조그맣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저편 어둠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처한 사람의 비명소리였다!


「쓸데 없는 간섭을…! 나중에 또 보자 귀염둥이!」


나는 무의식에서의 헤아디아스가 말했던 내용은 떠올렸다. 비명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게슈타스의 기사일까 아니면 죄 없는 정커 중 한 명일까.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다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까웠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방금 전 내가 들었었던 소리와 흡사했다. 그렇다. 이 소리는…


"석궁!"


10분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물이 대지를 쓸어내리는 듯한 소리, 홍수가 났을 때나 들었을 소리였다. 난데 없이 암벽이 불쑥 나타났다. 이런저런 소음이 들리는 탓에 앞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암벽에 머리를 박아버릴 뻔 하였다. 멕더거가 차려준 어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날카로운 허기가 복부를 찔러댔다. 난 겁먹은 생쥐마냥 바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궁소리가 났으니 사람이 있을거야. 사람이 있다면 먹을 것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먹을 걸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빼앗을 것이었다. 게슈타스의 기사들도 하는 짓을 나라고 못할리가? 신들이 늘 운운하던 도덕심따위는 한참 전에 버렸다. 나에겐 나와, 밀라키만 살면 됐다. 그외엔 죽어도 되는, 언제 관짝에 들어가도 놀랍지 않을 녀석들 뿐이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불현듯 멕더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페다스와 메이의 얼굴이 겹쳤다. 짧았지만 강렬한 만남, 멕더거가 말했던 이야기의 기본 틀이 생각났다, 권선징악이었다.


"…뺏는건 그만두자."


잡초와 나무가 빈틈없이 들어찬 원시림에는 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강을 따라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큰 짐승의 시체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무에 박혀있는 석궁의 볼트의 흔적이 엿보였다.


"확실히 석궁… 그렇지만 화살이 보통 것과는 확실히 길다. 이러면 장전하는데 엄청난 힘이 들어갈텐데…."


숲 속에 요제프 할아범이 알려준 사냥과 석궁에 대한 지식은 제법 쓸만했다. 나는 지면을 자세히 살폈다. 수렵용 부츠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은 내가 가던 방향으로 절벽을 따라 나 있었다. 황급히 발자국을 따라갔다. 썩은 통나무며 흔들거리는 바윗돌을 밟고 미끄러지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굽히지 않고 나아갔다. 대지엔 달의 군세가 슬슬 물러갈 때가 되고 있었다.


새하얀 빛이 강과 숲속을 하얗게 변색시키고 있을 때 클라이드는 하나의 모닥불을 발견했다. 근처엔 낡은 오두막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집이다!"


확실한 민가다. 이렇게 산세가 험한 곳이니 게슈타스의 손길에도 무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뻑뻑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힘들게 이끌고. 나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덩치 큰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체격이 단단해보였다. 그는 거대한 석궁을 손에 들고 나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그림자로 뒤덮인 얼굴에 박힌 작은 눈 알 두 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개구리를 노리는 뱀의 눈. 포식자의 인내가 그에게 발현되고 있으리라.


"…누구냐?"


경계심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립 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본 데일 저택의 하인인 클라이드라고 합니다. 게슈타스의 병사가 갑작스레 쳐들어와서 그만 숲속에 헤메다가 발자국을 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클라이드? 클라이드 안카마 말이더냐?"


목소리에서 경계가 풀렸다. 그러더니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요제프 아저씨?"

"오, 신이여…! 이렇게 사람이 반가울 수가. 살아있었구나, 클라이드."


요제프의 커다란 품이 나를 안겼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흙냄새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요제프 할아범은 클라이드가 살았던 저택에 고기를 공급하는 사냥꾼이었다. 클라이드가 처음 그를 봤을 때의 받은 첫인상은 사냥꾼 치고는 보기 드문 미남이라는 점이고 두번째는 요제프의 얼굴에서 독특한 어떤 이상야릇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는 중년을 지난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남자였다. 내가 못 알아본 게 이상했다. 내가 살던 마을엔 그만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라면 요제프밖에 없었을테니까.


"이런, 이 추위에 강으로 뛰어든게냐? 춥겠군. 어서 들어오거라. 방금 커다란 깃털 소를 잡았거든. 스튜를 끓이고 있던 도중이었단다. 어서 들자꾸나. 배가 고플테니."


나는 그의 오두막에 들어갔다. 기분좋은 온기가 나의 몸을 감싸주었다. 체질 탓에 추위를 느끼진 못하지만 그래도 따듯한 것이 더더욱 좋았다. 오두막 여기저기엔 다양한 동물들의 머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뿔을 가진 사슴이며 안개늑대며 모두 머리의 크기로 봐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놈들이었을게 분명했다. 그는 굉장한 실력의 사냥꾼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을만큼. 식탁에는 따듯한 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정말로 맛이 있어 보였다.


"마유주다. 원래 너한테 술을 권하면 안되지만, 몸을 따듯하게 데우는데엔 제격일거다."


요제프가 권하는 술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시큼하며 톡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동시에 온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 얼굴은 지금 토마토처럼 발개져 있겠지. 그는 스튜를 한 숟갈 퍼먹으면서 내 얼굴이 우습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그럴때마다 허리까지 닿는 그의 회색 턱수염이 꿈틀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게냐. 밀라키는 어디로 가고? 나에게도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느냐 클라이드?"


거절할 이유는 내게 없었다. 나는 주인님의 저택에 도망친 일 부터 하이시커를 만난 이야기, 내가 멕더거의 연극에 등장한 이야기, 내가 대사를 잘못 말해서 일이 꼬인 것 까지. 필요 이상으로 요제프에게 떠들어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렇게 편안하고 따듯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덕분이니까. 그러던 중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밀라키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클라이드, 다시 한 번 말해주겠니?"

"어…? 그니까 내가 대사를 잘못 말해서…."

"아니, 그것 말고, 너 정말로 정커였었느냐?"

"응. 숨기고 있어서 미안해."

"……힘들게 살아왔겠구나."


요제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요제프야말로 아주 사려 깊고 상냥한 자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의 사소한 습관을 하나 발견했다. 스튜 접시에서 고개를 들 때 마다 나를 면밀히 관찰하며 나를 가늠하는 요제프의 얼굴을 발견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요제프는 대단해. 저렇게 거대한 사슴과 늑대는 보지 못했어."

"아, 그래. 저 놈은 괴물이었지."

"사납게 달려들고 그랬겠지?"

"달려들 뿐만 아니라 나무에 쳐박기 까지 했지. 여기 보이지?(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의 이마의 흉터를 가르켰다.) 머릿뼈가 아작이 났어. 겨우 살아났지. 그래도 결국 놈을 잡았어."

"아, 요제프는 정말 대단해. 저렇게 커다란 안개늑대보다 위험한 사냥감은 없을거야."


내 말에 요제프는 잠시 대답 없이 붉은 입술로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니, 틀렸다. 안개늑대 따위는 제일 위험한 사냥감이 아니지." 라고 말하며 마유주를 훌짝이며.

"나는 전부터" 여전히 느릿한 말투로.

"훨씬 위험한 사냥을 즐겼단다."


나는 그의 분위기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 그런 사냥감이 있어…?"

"있지."

"그게 뭔데? 호랑이? 사자?"


그는 잔에 마유주를 채우고 입을 열었다.


"신은 누군가를 시인으로 만들고 누군가를 왕으로, 또 누군가는 거지로 만들지. 신은 날 사냥꾼으로 만들었어. 내 손은 석궁의 방아쇠를 당기라고 있는 거라고 되뇌었다. 처음 사냥을 시작한 건 다섯 살이었어. 열 살땐 만년설산이 되기 전의 사스이 산에서 곰을 잡았지. 그렇게 나의 사격술이 세상에 알려지고 합법적으로 궁극의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옥시던트 전부를 돌아다녔다. 그때만해도 내겐 옥시던트 대륙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요, 요제프…?"


"열 일곱살 때 불을 뿜는 거대한 도마뱀을 사냥에 성공하고나니 사냥에 재미가 없더구나. 사냥이 지겨워지더군. 사냥은 내 전부였는데 말이지. 나는 천천히 망가졌었어. 나는 망가지고 싶지 않았지. 뭐라도 해야했지. 그렇다고 다른 노인네처럼 농사나 짓고 살 수는 없었어. 나는 사냥꾼이지 농부가 아니거든."



요제프는 한 숨을 깊게 내 쉬곤 말을 이었다.



"나는 사냥이 지겨워진 이유를 찾아냈다. 스릴이 없어. 어떤 사냥감도 내 석궁에 굴복하여 발바닥을 보여주었지. 그래서 나는 이번엔 해법을 찾아냈다. 새로운 짐승, 여태껏 보지 못한 사냥감을 잡으면 된다고."


"농담하지 마. 요제프."


나는 번뜩이는 눈을 한 요제프를 보고 말했다. 여차하면 얼음 송곳을 만들 것이었다.


"그래서 난 군대에 들어갔다. 즐거웠지. 합법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석궁은 적군의 머리통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나 봐. 아군의 머리통도 로빗훗의 사과처럼 화살을 꽂아넣었지. 결국 난 쫓겨났어."


"…요제프?"


"난 절망했다. 그리곤 생각했지. 그러면 합법적인 사냥감을 찾으면 된다. 그래서 찾은게 정커다. 인간 쓰레기(Junk + er)들. 옥시던트의 귀족들은 이미 그것들에게 현상금을 걸어두었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경이로워. 맨손으로 불을 뿜고 낙뢰를 떨어트리지. 이놈들이 내가 찾던 사냥감이였어."


"…미친!"


"그래, 난 클리너(Cleaner)다. 세계 도처에 깔려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치우는 청소부지."



그가 나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소름끼치는 그의 미소. 나는 서둘러 얼음 송곳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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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30 15:04 | 조회 : 808 목록
작가의 말
엔니립사

요제프는 1화에 언급된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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