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아니면 사기꾼, 그것도 아니라면 음유시인 part 3



무시하지 마! 쓰레기 인간 혁명기



[02] 마법사, 아니면 사기꾼, 그것도 아니라면 음유시인 part 3.


"무슨 망언을….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전 군은 화살을 쏴라!"


훽하고 빠르게 뭔가가 내 얼굴을 할퀴고 갔다.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액체.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나는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뜨뜻하고 끈적한 느낌, 그것은 피였다. 빨갛다기보단 검붉은 피. 제국의 병사가 쏜 화살이 내 얼굴을 스치고 간 것이다. 메이는 얼굴이 시퍼래지며 바로 허리춤에 놓인 유리병을 개봉하더니 그 안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던졌다. 가까이서 본 나는 그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씨앗이었다. 초록색의 강낭콩과 비슷해보이는 조그마한 씨앗.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씨앗이 아니었던 듯 싶었다. 씨앗은 이내 초록빛의 섬광을 내뿜더니 곧 거대한 콩나무가 되어 날아오는 화살을 정면에 막아주는 든든한 바리게이트가 되었다.


"죄, 죄송해요! 제가 대사를 까먹는 바람에…!!"


일을 틀어지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마 눈엔 눈물이 새벽이슬마냥 그렁그렁 맺혔겠지.


"당신이 사과 할 필요는 없어요. 본래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죠. 아마 멕더거 또한 이런 상황을 바랬을겁니다. 그 사람이 독을 마신다면 잔까지 씹어먹을 사람이니까요. 일단 이 자리는 너무 시끄럽군요. 어서 뜨죠."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보다, 그 여유는.."

"이런 상황이야 멕더거와 있으면 하루에 스물 여덟번쯤은 겪게 된답니다. 감각이 무뎌졌다고 보면 될까요. 페다스, 제 말 들려요? 거기 있죠?"


메이가 말하자 숲 저편에서 페다스의 모습이 보였다. 양 손에는 피투성이가 된 단검을 한 자루씩 쥐고 제국기사의 갑옷 틈새를 정확하게 벤 채로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제기랄, 메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멕더거는 어디로 가고?!"

"페다스, 잘 와주었어요. 아무래도 네멜렉스 신의 코인 토스는 핏빛 뒷면이 나온 듯 합니다. 저기, 클라이드라고 했죠? 멕더거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메이는 침착한 태도로 내 눈물을 대신 훔쳐주며 다독이는 말투로 물었다. 나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뭐든지 할게요."

"좋아요. 간단한 대사 수정이에요. 되도록이면 위엄있게 말해주시면 좋겠군요. 당신은 위대한 신록의 신 인피니티아의 심복인 운디네니까요. 후훗."


그녀는 입술을 내 뺨에 갖다대었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당황하여 대답 대신 고개를 정신없이 세게 끄덕였다. 페다스는 그런 내 모습을 한심했는지 아니면 제국기사들의 얼굴이 별 볼일 없어서 그런건지 연신 욕을 해대면서 제국 기사들의 몸에 피칠갑을 시켜주었다. 메이, 그녀는 내가 할 일을 알려주었다.


"일단 강을 얼리죠. 그것은 당신의 분노를 표현하는데 제격일거에요."

"예? 그러면 화살뿐만 아니라 무기를 든 제국병사들도 이쪽으로 올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메이는 허리춤의 유리병들 중에 하나를 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늘을 밝히는 태양을 축소시킨 듯한 붉은빛을 띄는씨앗이었다. 그녀가 그 씨앗을 한 웅큼 가득 쥐자 그녀의 손에 불꽃이 일렁이는 것만 같이 보일 정도였다.


"불꽃의 정수를 담은 씨앗입니다. 땅에 심으면 불기둥을 피울 수 있지요. 이 강바닥엔 그정도까진 무리겠지만 이것을 강에 던진다면…."

"던진다면…?"

"씨앗의 뜨거운 기운이 얼어있는 강을 녹이겠지요. 그러면 일어나는 대량의 수증기…. 고체가 기화되면 부피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합니다. 이 일대를 전부 덮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러면 게임은 끝났지요. 흔히들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듯이."

"저… 메이씨의 말을 이해를 못하겠어요."

"일단 시작하지요. 시간은 우릴 기다리지 않아요. 이대로 헤아디아스의 궁전에 가서 그녀의 자장가를 듣고 싶으신가요?"


나는 반신반의한 상태로 일단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대로 가만히 서서 죽는 것 보단 훨씬 나을테니까. 밀라키의를 찾는 일도 있었고 나한텐 살아야 할 이유가 아직까지는 많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억울해서라도 헤아디아스의 궁전에 입궐하지도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팔에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팔을 뻗었다. 강은 천천히 결정화 되어갔고 곧 강 전체가 얼어붙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다듬었다. 위엄있는 목소리, 근엄한 존재가 되야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심호홉을 한번 크게 한 뒤 입을 열었다.


"어리석구나! 그래, 이것이 너희의 진면목이었지. 나의 주인께선 너희를 보살피고 보듬었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이런 것들 뿐이었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구나. 너희를 본보기로 세계에 알리겠다. 새로운 질서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강이 얼었어? 저 꼬마, 동장군의 아들이라도 되는건가? 아니면 정말로…? 아니, 그럴리 없다. 모두 진격하라! 신의 이름을 모욕하는 저들의 목을 쳐라! 목을 가져온 자는 포상을 내리겠다!"


나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도 그들은 나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은 듯 싶다. 신앙심을 빌미로 저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달려올리는 없으니까.


"놈들이 몰려와요!"

"허둥대지마요 클라이드, 지금뿐이라도 당신은 신의 품위를 지켜주셔야 된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곧 저들을 깜짝 놀래켜 줄거에요.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당신 얼굴만 봐도 오줌을 지리고 절을 하게 될거에요."

"…아, 예."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로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다. 그냥 멕더거의 동료들은 다 특이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을 뿐. 잠깐 그렇다면 나도…?


"리틀러에게 피와 해골을! 게슈타스에 영광 있으라!"

"오 맙소사, 게슈타스의 황제가 리틀러의 신자라고 들었었지만 정말일 줄이야."


게슈타스의 기사들이 언 강바닥을 디딛고 우리를 포위하자 들고 있던 씨앗을 던졌다. 씨앗은 붉은 빛을 내며 펑하는 굉음을 내었고 곧 얼어붙어있던 강바닥이 씨앗의 열기에 녹아 엄청난 양의 안개를 만들어냈다. 눈 앞이 흐려질 정도의 안개를 말이다!


"으아앗!"

"당황하지마세요 클라이드, 페다스! 당신은 멕더거에게 돌아가요! 아마 맨날 있던 장소에 있을테니까요!"

"알았어!"



기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목소리 중에 페다스의 대답이 확실하게 들렸다.


"자, 클라이드. 이제 모든 역량을 다해서 이 수증기를 얼려버리세요."

"이 많은 양을요?!"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만 지체하면 안개는 바람에 의해 날아가버리고 말거에요."

"그, 그치만…!"

"괜찮아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동장군도 당신 나이때 산 하나를 얼려버렸다고 하잖아요. 신이 아닌 일개 인간도 그정도인데 하물며 신인 클라이드씨면 그정도는 식은죽 먹기죠. 그쵸?"


어쩔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메이가 말한 방법이 최선이겠지. 그래, 뭐가 나는 생쥐 클라이드다. 이번에도 곤경을 피해 살아남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어딜 잔재주를…!!"


또 다시 훽하고 섬광의 궤적이 내 팔을 꿰뚫었다. 화살이었다. 보통 화살촉에 쓰이는 청동이나 강철이 아닌 뭔가 특이한 기묘한 불에 타고 남은 잿빛의 화살촉.


"클라이드!"


메이의 동공이 확대된게 보였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거 갔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거 같았다. 화살촉에 독이라도 발라 놓은 걸까? 나는 희미해진 의식속에서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내 육체는 씨앗의 열기때매 녹아내린 강으로 추락했고 그대로 어디론가 흽쓸려버렸다. 그와중에 메이의 외침이 들리던 것 같았는데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밀라키를, 밀라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달빛에 비춰진 호수빛의 은빛 머리카락, 타들어간 듯 초점 없는 잿빛의 회색 눈동자…


「밀라키…」


나는 아무래도 물과 연이 없나보다. 이번에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다행히도 체질 탓인지 추위는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 검은색 그림자가 내 정신을 뒤흔들어 날 억지로 무의식의 세계로 끌여들였다. 무의식의 난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맨 몸뚱아리 상태였다. 실루엣의 정체는 여자였다. 흑발 헝클어진 머리에 흑요석을 박아넣은 듯한 검정색 눈동자, 눈동자와 다르게 피부는 백옥처럼 하얘서 엄청 잘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같은 이질적인 느낌도 들었다. 또한 보라색 입술은 생기 없게 번들거렸고 옆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하프가 놓여 있었다.


「너, 곧 죽을거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 늘 죽은자들을 가엾이 여겨 그들을 달래주기 위해 특별한 마력이 담긴 하프로 죽은자들의 넋을 달래주는 자애로운 여신.


「당신은 헤아디아스군요.」

「맞아.」


그녀가 소름끼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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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20 17:35 | 조회 : 730 목록
작가의 말
엔니립사

죽음으로부터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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