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뾰족귀 part 2













무시하지 마! 쓰레기 인간 혁명기










[01] 변태 마법사와 뾰족귀 - part 2




"밀라키!"




악몽에 시달리고 눈을 떠보니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에 나는 누워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둘러보니 숲인 것 같았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제기랄 그 빌어먹을 제국 기사때문에… 밀라키를 어서 찾아야했다. 밀라키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다. 지금쯤 아마 어디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엉엉 울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일 터, 제국 기사놈이 그녀에게 해꼬지 할 가능성도 충분히 배제 할 수 없다. 나는 밀라키를 찾기 위해 몸을 일으켜보았다.




"…악!!"




극심한 통증이 허리를 파고들었다. 물웅덩이에 빠졌을 때 뭔가 잘못된 듯 했다. 허리엔 붕대가 둘둘 뭉쳐져 있었고 붕대 밑엔 뭔가 불룩한 초록색 무더기가 고정되어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니 씁슬한 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약초인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치료해 준 걸까? 뭘 기대하고? 내가 정커라는 걸 모르는 사람일까? 날 치료한 사람의 의도를 생각하던 도중 발 소리가 들려서 다시 재빨리 누워 기절한 척 하기로 했다.




"…음, 아직도 안 일어났나. 일어날 때가 한참은 지난 것 같은데."




발소리의 정체는 회색빛의 남루한 로브를 뒤집어 쓴 남자였다. 남자는 조용히 내쪽으로 움직이더니 내 옆에 털썩 주저 앉아 능숙히 불을 지폈다. 커다란 그림자들이 벽을 가로지르며 일렁거렸다. 나는 빼꼼히 뜬 눈을 질끈 감았다. 될 수 있는 한 나는 기절한 사람이고 싶었다. 얼어붙은 듯 꿈쩍 안하고 그대로 동사라도 해버린 것 처럼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면 이 사내도 나를 그냥 여기에 버려두고 자기 갈 길을 가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나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꼬르륵 -




잠시동안의 침묵, 실제로는 몇 초간의 침묵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몇 분 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나는 내 배꼽시계를 원망하며 한쪽 눈만 빠끔 떴다.




"배고프냐?" 그 사내가 물었다.




나는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면서 허리 언저리에 망치로 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나는 사내의 차림새를 온전히 볼 수 있었다. 닳아 헤진 로브를 뒤집어쓰고 복잡한 문양이 들어간 브로치로 고정시켰다. 목에 건 장식물과 부적 들이 서로 짤랑거리며 부딪혔다. 초승달 모양의 장식물, 해골모양의 장식물, 뭐라 형용키 힘든 모양의 장식물도 보였다. 모두 주술적인 용도로 쓰이는 물건들 같았다.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정커란 것을 눈치챘다. 저런 차림새로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신의 눈을 가졌다는 마법사 조직「회색 눈」이나 죽음의 신 헤아디아스를 신봉하는 사제 정도려나. 내가 그에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뿐이었다. 창백한 안색과 뾰족한 코, 수염은 없었다.




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대체 무엇때문에 날 데려온 걸까?




"배 안 고프냐고."




나는 재빨리 오른팔의 수분을 응결시켜 얼음 송곳을 만들었다. 아까 전엔 실수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서라, 내가 네놈보다 쌈박질 짬밥은 더 먹었다. 아무리 몸에 이상이 있더라도 너 같은 꼬맹이 하나를 헤아디아스의 궁전으로 인도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너 역시, 사제야? 헤아디스를 신봉하는?"


"헤아디아스? 너 미쳤냐? 그런 돈 안 되는 일을 하게."


"뭐?"


"아 씨, 그보다 배 안 고프냐고. 난 배고픈데. 빵 하나 먹을래?"




남자가 손바닥을 쭉 내빼자 갑작스레 빵 한 덩어리가 나타났다. 나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뭐지? 분명 없었는데. 등 뒤에 고드름이 솟구친 것 마냥 싸늘했다. 우습게도 나는 그가 빵을 만들 수 있는 정커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유용한 능력이라니! 하지만 그 남자의 의도가 두려웠다. 저 빵을 먹으면 옛날 옛적 동화책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영원한 잠에 빠져 헤아디아스의 궁전에 영혼이 결박되어 평생 고통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안 먹냐? 이상하네. 비쩍 마른게 며칠은 굶었을 적 보이는데. 그러면 내가 먹도록 하지."


"자, 잠깐…."


"늦었어 얼간아."


남자는 잠시 주춤했던 나를 약올리면서 게걸스럽게 빵을 입에 넣었다. 먹었다기보단 우겨넣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빵 한 덩어리를 가득 입에 넣어 볼이 빵빵해진 사내는 뭐라뭐라 중얼거렸지만 입속에 든 빵 때문에 발음을 알아듣기가 영 곤란했었다. 그래서 대답같은건 하지 않았다. 그저 침을 질질 흘리며 그가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쳐다 볼 뿐이었다.







"제길, 텁텁한게 영 맛이 시원찮군. 크큭, 이제야 솔직한 표정이 나오는 군. 배고프냐? 사실 빵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줘."




"먹으면 천년동안 긴 잠에 빠질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줘."




"내가 마법을 부려서 지하속 헤아디아스의 궁전으로 널 데려갈 수도 있는데?"




"거짓말, 당신은 마법사가 아니야. 사기꾼이지."







나의 솔직한 대답이 사내의 허파를 간지럽혔나보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뭐가 그리 웃긴지 깔깔대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 지 병사들이 이쪽으로 몰리지 않을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곤 남자는 어디론가 향했다. 한 백 여 걸음 걷자 말 한마리가 얌전하게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를 본 말은 푸히힝 하면서 반갑다고 인사 했고 사내도 "뭐, 안 본지 얼마나 됐다고 이 난리야." 라고 중얼거렸지만 싫지는 않은 듯 말의 등을 곱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곤 남자는 말 등에서 안장주머니를 내리더니 그 안에서 냄비 하나와 음식 한 자루를 꺼냈다. 뭔가 더럽고 곰팡이가 슨 것만 같은 담요도 한 장 꺼내어 차갑게 식은 내 몸을 감싸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여태껏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겁에 질린 아기를 달래는 유모와 같은 목소리로 말이다. 나는 그 사내가 좋았다. 사내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첫번째는 가족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다음 질문들은 참 희안했다.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강이 좋니 산이 좋니 따위를 물어보았다. 보통이라면 물어보지 않을 요상한 것들을 그 사내는 물어봤지만 나는 그런 질문들이 싫지만은 않아 순순히 답해주었다. 그러던 중 그 사내의 이름이 멕더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곤 멕더거와 내 사이는 꽤 편해져서 오늘 겪은 여러가지 일들을 그에게 말했다. 오늘 봤던 제국 기사의 이야기 같은 것을 말이다.







"제국의 기사놈들이?" 황제 놈도 단단히 미쳤군. 리틀러의 망령이라도 씌인건가."




"리틀러?"




"옛날, 땅 덩어리가 지금 처럼 하나가 아니라 다섯 덩어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리틀러는 그때 당시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음… 장군 같은 녀석이랄까."










그러곤 멕더거는 리틀러 증후군이란 병의 유래를 말해줬다. 리틀러는 고대의 유명한 군국의 장군이었는데 너무나 강력한 힘을 원한 탓에 흑마술에 손을 댔고 결국 사신과 거래하여 신이 되었지만 정신이 미쳐버려 결국 미친 폭력의 신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었다.







"크크, 어떠냐. 무시무시하지? 그러니 사람든 분수에 맞게 살아야 된다. 안 그러면 정말로 다쳐."




"멕더거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아네? "




"에라이 이놈아, 음유시인이 재밌는 이야기 하나 둘 있어야지 않겠냐? 음유시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겠지?"




"아, 옛날 광장에 자주 봤어. 주인양반이 늘 말했지. 뭐 할 줄 아는게 떠드는 것 밖에 없는 거렁뱅이들이라고."




"뭐?! 너의 주인은 낭만이라곤 없는 노인네였나보구만! 뭐, 그 말도 맞긴 하지. 하지만 나는 좀 달라. 난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꿈과 희망을 흩뿌리고 다니지. 저기 내 하프도 보이지?(그는 그렇게 말하곤 말 안장을 가르켰다.) 난 처음에 너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줄 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 강의 정령이 내 미모의 반해 땅 위에까지 올라왔군! 하고 말이야. 하지만 넌 내 마음을 뺏기엔 너무나 어려. 그렇지 않니? 크큭, 먹을 거나 동전 몇 푼이면 모를까 내 마음을 훔치기엔 아직 10년은 이르지. 여름이 지나 간 것을 몇번이나 봤을꼬? 한 일곱 번? 여덟 번?"




"…난 남자야."




"엑?"




"너… 변태?"




"이, 이봐! 그런 불결한 단어는 내 앞으로 두지 마! 착각할 수도 있지. 내 입장에선 네 또래의 아이들은 머리가 길면 여자, 짧으면 남자라고!"







멕더거는 내 헝클어진 긴 머리를 지적하며 말했다.







"변태."




"으윽…! 그 단어 낭만을 먹고사는 음유시인에게 치명적인 단어라고! 그보다 네 이름이 뭐야?"







난 멕더거의 질문이 성급한 말 돌리기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냥 순순히 대답하기로 했다.







"클라이드."




"제길, 남자 이름! 이름을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럼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줄래?"




"저어기, 영주의 농장에서 밀라키랑 같이…!!"







나는 머리를 까딱하며 방향을 가르키다가 잊었던 유일한 동행자를 떠올렸다. 대장장이들이나 쓰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멍청한 놈. 이라고 몇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이후의 목소리는 멕더거의 목소리에 비해 턱없이 작고 탁하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의 생기도 바다에 떠내려간 것 같았다. 하지만 멕더거의 눈은 환해졌다. 지나가는 바람이 불씨를 확 살린 것 마냥.







"호오, 영주의 저택에서 온 종자였구만!"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주인님을 부르는 말 중엔 영주님이란 단어도 있었다.







"여기서 좀 멀텐데? 이렇게나 빨리 여기까지 왔다고?"




"저택과 여기의 경계인 물 웅덩이를 얼렸어. 나는 한기를 다룰 수 있는 정커거든. 그보다 밀라키를 찾아줘!"




"밀라키?"




"은발에 오른쪽 눈에 검은색 안대를 찬 여자아이야. 나보다 두 살 어린데 키는 나랑 비슷해. 아마 근처를 돌아다니다보면…."




"…그 아이도 정커냐?"







멕더거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제스처가 무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손익을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나오는 버릇 같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맥더거는 상인일까? 상인은 샨록 처럼 배불뚝이인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생각했다. 멕더거가 원하는 대답, 밀라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가치가 없다면 밀라키를 찾는 일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를 생각하는데에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았고 나는 최상의 답변을 생각했다.







"어. 맞아. 회색눈의 아이, 밀라키도 그 중 한 명이야. 아직 절제가 되지 않아서 안대를 착용하고 있지만."




"회색 눈? 그게 사실이냐?"




"…어."







나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밀라키란 여자아이는 몇 살이지?"





"신록절(여름)을 일곱 번 정도 지냈어."





"일곱 살이나 됐는데도 멀쩡한 회색 눈이라니. 사실이라면 대단한데. 그치만 역시 네 친구를 찾는건 안 되겠어."





"어째서! 당신 정커들에게 관심이 있는거 아니었어?"





"관심이야 무궁무진하지. 조금이라도 많은 카드패를 우리의 수중으로 넣고 싶은 마음이야. 너도 그렇고 밀라키란 여자아이도 그렇고 우리의 동료가 된다면 너흰 우리의 큰 전력이 될거야. 밀라키의 회색 눈과 너의 천재성. 어린 나이에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 하는 경우는 드물거든. 회색 눈이란 능력 자체는 아주 희귀하고."










멕더거의 눈이 더욱 환해졌다. 방금전엔 불꽃이 일렁였다고 치자면 지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멕더거가 나의 능력에 감탄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사실 맥더거의 말에 나는 우쭐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 누구도 내가 한 행동을 칭찬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관심이나 가져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 왜 밀라키를 찾지 않는 다는 걸까?







"그런데 왜?"





"밤이 깊어. 이 숲은 안개늑대의 서식지야. 늘 떼로 돌아다니면서 사냥감을 찾는 귀찮은 녀석들이지. 게다가 안개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까지. 이 몸은 말이야. 늑대의 밥이 되고 싶진 않거든."





"그럼 밀라키는?! 밀라키가 죽을 수도 있잖아! 희귀하대매! 그러면 목숨정돈 걸어도 되는거잖아!"





"멍청아,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일단 살아야 뭔갈 할 수 있지 않겠어?"









분하지만 멕더거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전적으로 옳은 소리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면서 움직였으니까.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고해도 목숨의 위협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거절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였으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선택을 하였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숨 쉬게 할 수 있게 해준 나의 가장 큰 능력이라고 자부했다. 나는 눈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처음으로 나의 나약함에 치를 떨었다. 꽉 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다.





"울지마라. 찾지 않는 다곤 안했으니까."





"뭐?"





"네 말대로야. 회색 눈 정도라면 목숨 정도 걸 만 하지. 네멜렉스의 동전은 이미 던져진 셈이군. 과연 황금빛 앞면이 나올까 핏빛 뒷면이 나올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멕더거를 보고 물어봤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빽빽한 나무사이로 한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 또래로 보일 정도로 어려보였다. 멕더거는 반가운 듯 여어 - 하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소녀는 심드렁한 표정만을 지은 채 무시 할 뿐이었다. 그 소녀가 가까이 오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뾰족한 귀에 온 몸에 별가루를 흩 뿌린 듯 한 새하얀 얼굴! 전설이나 설화속에서나 등장하는 숲 사람! 그 소녀가 숲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수, 수, 숲사람!"




"크큭, 뭐냐 클라이드? 숲 사람은 처음 보냐?"




"뭐에요. 이 꼬마는?"







그 소녀는 나를 가르켜 멕더거에게 물었다.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나보고 꼬마라고 하니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소녀는 단단해보이는 가죽 가슴받이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자그마한 단도를(체격으로 보면 장검이지만) 허리춤에 차고 있어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글쎄, 네멜렉스의 동전이랄까?"




"또, 또, 뜻 모를 소리를 하시는군요. 얼른 말해요. 먹을 건 2인분 밖에 구해오지 않았으니까요."




"아, 나는 괜찮으니 대신 이 아이에게 주게. 클라이드? 저기 저 숲 사람의 이름은 페다스 라부아지에라고 한단다. 네 또래 같아보여도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말 조심하는게 좋을 걸? 그녀는 단도의 대가면서 정커거든."







페다스는 클라이드를 빠르게 흝어보았다. 뭔가 전력이 될 만한 아이인지 확인해보려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나 참, 또 어떤 사기를 칠려고 하는건지…."







그러면서 페다스는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사과를 하나 클라이드에게 던져주었다. 클라이드는 가까스로 그것을 받아들고 멍하니 페다스를 보았다.







"일단 그거나 먹어. 물론 그거 가지곤 배가 안 차겠지. 내가 너에게 먹을 걸 안 주는 이유는 네가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야. 금방 죽을 놈인데 뭣하러 먹을 걸 주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페다스는 똑같은 사과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약간은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냈다. 나는 눈을 마주치기도 힘든 그녀의 시선에 멕더거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멕더거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음…. 페다스는 내심 차가운 듯 보여도 마음 따듯한 숲사람이지. 동화책에 나오는 숲 사람들은 마법을 쓸 줄 알고 숲과 교감하며 활을 잘 쏜다고 나와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그냥 귀가 밝고 뿔처럼 뾰족하다는 것 빼고는 보통 사람이랑 똑같지. 그녀가 저러는 것도 클라이드가 이해해주길 바래. 알겠니?"




"아, 어… 응."




"후후, 착한 아이구만. 자 그럼 불을 피우고 슬슬 자보실까? 그런데 페다스, 혹시 오는 길에 은발에 안대를 착용한 여자아이를 보았나?"




"예? 글쎄요. 징그러운 제국 기사들 밖에 못 봤는데. 그보다 오늘 불침번은 맥더거 당신이었죠?"




"그래 오늘 당번은 나였었지, 하지만 사람은 적재적소에 써야지. 그러니 난 잠을 자고 페다스는 숲의 동물들에게 부탁해서 내가 말한 인상착의의 여자아이를 찾아 주고 불침번을 서 줘. 알다시피 내가 하는 일은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심하거든. 잠을 자지 않으면 미쳐버릴거야."




"갑자기 여자아이는 왜…? 혹시 예전에 사고치고 태어난 딸 인가요?"





"이봐, 어린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구만.."







여기서 잔다고? 칼을 들고 눈에 보이는 정커들을 보리풀 베듯이 베어버리는 사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나는 서슬퍼런 장검의 반사빛을 떠올리며 입을 열기로 했다.







"여기서 불을 피우고 자다니요! 그랬다간 제국 기사들이 곧 몰려올 거 라고요! 미친 짓이에요! 당신들이 헤아디아스의 신자가 아닌 이상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진정해, 클라이드!"






멕더거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날뛰려는 나의 양 어깨를 꼭 붙잡았다. 그의 말이 내 두러움을 인지하고 푸히힝하고 울었다. 말도 진정하라고 나에게 속삭이는거 같았다. 그러곤 곧 멕더거는 입을 열었다.







"두려워하지 마. 나랑 있으면 괜찮아."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살 어르듯 말을 이었다.







"그 나쁜 아저씨들이 나타나면 하이시커들이 나타나서 그 아저씨들을 혼내줄거야. 실은 나와 페다스도 하이시커의 일원이지. 하이시커란 말 들어 봤지?"







물론 들어보았다. 우리 마을에서 그들을 직접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하이시커는 정커들로 이루어진 혁명단이었다. 위대한 모험가이자 혁명가인 레아프가 수장으로 있는, 이름 그대로 높은 곳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정커들을 위해 귀족들과 싸우고 핍박 받는 정커들을 구해주는 사람들.







"댁이 하이시커라고? 변태 사기꾼이 아니고?"




"에엑…! 그건 그러니까 내가 착각한거라니까…"




"어머? 어이, 꼬마, 사람 보는 눈이 꽤나 제법인데? 너 혹시 회색 눈 아냐?"





"회색눈은 내가 말한 여자아이다. 한시가 급해. 안개늑대에게 먹히기 전에 찾아야 한다."





"엑? 정말? 회색눈이라고?"





"그래."







페다스는 놀란 듯 우악스러운 목소리를 냈고 멕더거는 웃으면서 턱을 긁적거렸다. 나를 달래는 가장 좋은 대답을 갈구하려는 것만 같았다.







"클라이드, 그러니까 안심하고 자렴. 이런, 얼굴이 허여멀건한 오트밀 죽보다 더욱 하얘졌군. 칼 든 나쁜놈들을 두려워 할 거 없대도 그러네. 괜찮아. 우리 하이시커는 동료가 다치는 걸 묵인하지 않아. 클라이드, 너도 우리의 동료다. 안심하고 자렴. 악몽을 꾸면 우리가 그 꿈을 먹어치워주마. 나는 그럴 자신이 있다고. 후후후…."







나는 멕더거의 호언장담에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멕더거는 금방 모닥불을 피우는데 성공했고 따듯한 모닥불의 열기가 몸을 감싸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게 내가 하이시커와 접촉한 첫번째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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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9 16:06 | 조회 : 95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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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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