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아이 2화

"폐하. 루나에트 공녀님이십니다"


"오, 왔구나. 디아. 내 이야기는 들었지?"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 모자라고 12살인데다가 또..."


"안하고 싶어서 변명을 몇 개나 준비한거니?"


"약 27개 정도는 준비해왔습니다. 고모님"


황후는 아름답게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응접실에 앉았다. 시녀들은 두 윗분에게 고급 홍차와 다과들을 내왔고, 황후는 이미 지정했다는 듯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벨루디아는 그 계획을 경청했으나 하기 싫은건 마찬가지였다.


"얼굴 펴렴 디아. 난 널 내 마음 속으로 키운 딸이라 생각한단다. 내겐 아들들 밖에 없잖니?"


"알고...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이번일을 정말 성사 시킬 것이라는 암시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벨루디아는 황후의 위엄있는 목소리를 듣고는 평안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귀찮음이 재능을 먼지처럼 덮고 있었을 뿐 잘 닦으면 반짝반짝 빛나며 이것저것 아이디어가 튀어 오르는 게 벨루디아였다. 오랜만에 뇌를 가동시키는 것이라며 쭉쭉이를 했으나 황후는 그 모습을 나무라지 않으며 웃어보였다.


"잘 생각했다. 자 그럼 다시해볼까?"


"그전에 고모님. 홀은 아카시아 홀이 맞는 것이지요?"


"그렇단다. 큰 일이 없으면 아카시아 홀에서 하기로 했어"


벨루디아는 곰곰이 생각해보다 황후에게 깃펜과 잉크를 빌려 화려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글씨체로 그녀의 상상 속을 써내려갔다. 기본적으로 '파티'중에서 '생일을 위한'이란 타이틀은 순백과 순은을 토대로 파티장을 꾸미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리하면 인테리어에 강한 몇 부인들의 파티장 빼고는 정신병자들이 올 것 같은 분위기가 많이 연출되어 보여 그 파티는 그리 편한 파티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니 순백, 순은을 사용하되 눈에 띄지 않고 눈이 편안한 그런 색을 선택해야했다.


"순백의 색을 최소한으로 하고 순은은 장식으로 조금씩 다는 것으로 하죠. 순백과 비슷한 내용을 지닌 색은 분홍빛도 존재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이미지와는 훨씬 다르니 연 회색 빛을 바탕으로 하면 될듯 합니다."


바탕은 골라졌으니 이제 음식, 초청장, 음악을 세팅할 차례였다. 그것은 이미 황후가 준비했다 하여 벨루디아는 끄덕이며 인테리어에 힘썼다.


"역시 네게 이 일을 맡기길 잘한 것 같아. 이제 점점 해가지는 것 같으니 가보거라. 사교계에 발을 들이는 건 16살이겠지만 황후 주최를 도운 공녀이므로 내 옆에 설 수 있어. 그러니 그때 황궁에 와서 치장하여라. 내 시녀들을 내어줄테니"


"넓디 넓으신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고모님. 그럼 그 날에 뵙도록 하지요"


황후는 인사를 하고 나가는 자신의 귀여운 조카를 보다 이내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계획안을 다시금 내려다 보았다.


"오라버니께선 천재적인 아이를 낳으셨군. 시녀장"


"예 폐하 부르셨습니까"


"차가 식은 것 같구나 새로 내어오거라"


곱게 허리를 숙이며 채통을 지키는 시녀장이 나가자 황후의 처소는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


-


-


"하테르토."


"공녀님 정말 가셔야겠습니까?"


"응, 가야해. 아버지께서 이번 기일땐 데리고 가주시지 않으셨단 말이야"


귀차니즘이 판자치는 그녀의 몸속에서 유일하게 신경쓰는 것이 2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어머니의 기일이며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고아원을 돌보는 것이다. 5살에 루나에트 공작이 벨루디아에게 1개의 고아원을 주었다. 그의 목표는 고아원을 얼마나 잘 돌보는지 시험하기 위한 것. 그것을 5살에 하였지만 벨루디아는 잘 돌볼뿐만 아니라 고아원에서 수익까지 만들어내었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벨루디아 자신의 용돈 또한 그곳에 투자했다. 현재 고아원 중 가장 행복한 고아원은 벨루디아의 손에 있는 그 곳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일. 자신이 태어나고 6년 뒤 목숨을 잃었다. 병약한 어머니셨기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이셨지만 벨루디아는 그런 어머니를 잘 따랐고, 아플 땐 간호까지 하였다.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엔 몇 번이고 쓰러질 정도로 울었다. 그렇기에 꼭 챙기는 편이지만 어머니의 무덤은 영지 꽤 깊숙한 곳에 있다. 그곳에 묻어달라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서 말이다. 그래서 많이 가고싶으나 많이 갈 수가 없다. 그곳에는 산적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 12살의 소녀, 가녀리고 약한 벨루디아가 가기에는 아주 위험한 곳이라 그곳에 갈 수 있을 때는 1년에 1번이었다. 어머니의 기일. 이번 년에는 데리고 가주지 않은 아버지였기 때문인지 저택 밖을 나왔을 때 가려 한다.


"그땐 산적이 어마무시하게 나왔다고 합니다. 공녀님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지금 가야돼"


벨루디아의 고집을 하테르토가 꺾을 수 있을까? 당연히 답은 정해져있기에 루나에트 공작부인의 묘로 갔다.


"어머니, 저왔어요."


작게 중얼거리며 웃는 벨루디아의 모습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벨루디아는 누구와 이야기 하듯 말을 했고, 그것을 보는 하테르토는 안쓰러울 수 밖에 없었다. 점점 해가 지는 것을 보고 하테르토는 벨루디아에게 이만 가야한다며 일으켜 세웠다. 벨루디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길을 받아들였고, 이내 마차로 발을 옮겼다. 이제 적응할만도 하것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 벨루디아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테르토는 이럴까봐 데리고가지 않으려 했던건데 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공녀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벨루디아는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슨 일이 있냐는 듯 표정을 탈바꿈했고, 자신을 맞아주는 시녀들과 집사에 생긋 웃어주었다. 하테르토는 자신의 작은 주군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그녀의 모습이 여리고 쓸쓸해보였다.


"공녀님. 오늘만 이름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내가 부르라 할 땐 안부르더니"


"안되면 말고요"


"아냐. 허락해줄게"


"감사합니다. 후... 디아. 내가 널 따르기로 하기 전에도 이렇게 불렀지. 하지만 따르기로 한 후부터 넌 나에게 큰 생명줄이었어. 그리고 은인이었고. 그때 넌 아름답고 빛나보였어. 아직 넌 어리광부리고 떼를 써야할 나이야. 아무리 공작가의 여식이라도 12살은 12살인걸 그러니 울어도 돼. 참지마 내 앞에서 속시원하게 울어"


벨루디아는 하테르토의 말을 곱씹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때 하테르토는 주변 사용인들을 물렸고 벨루디아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처음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온 뒤 운 날이다. 그리고 하테르토에게 마음의 문을 연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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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28 17:47 | 조회 : 1,382 목록
작가의 말
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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