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8화, 아니라고 해.

왕궁 지하실에는 이상한 냄새로 가득 차있어 시종조차 미간을 찌푸렸지만, 다운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연인의 시체에 불안감만 커질 뿐이었다.


"하으, 어디에... 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찔금 새어나온 눈물 탓에, 다운이 소매를 비벼 닦아내고는, 익숙한 얼굴을 찾아 시체 사이를 종종 거렸다.

"시체는 이게 끝인가요?"
"옆방에 몇 구 더 있습니다."

따라온 시종이 코를 틀어막고는 간결히 대답했다. 다운이 고개를 위아래로 몇 번 끄덕이고는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요?"
"예"

시종이 문을 열어주자 다운이 뛰어들어갔다.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던 다운이 고개를 한 곳으로 고정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흐으... 유한, 유한...."


바보같이 울면서 떼 쓰는 거 너무 싫은데, 유한. 오늘만, 오늘만 좀 그럴게. 내일부터는 씩씩하게 이겨낼게. 오늘만 좀 봐줘.


"아니잖아, 아니라고 해... 네가 죽는다는 게 말이 돼? 왜 이러고 있는데.... 황제 곁에서 기다리라며, 기다렸는데....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주저앉은 다운이 서럽게 울면서 유한의 손을 맞잡았다. 싸늘하게 식은 손이, 움직이지 않는 팔이, 영원히 감긴 눈이 이게 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유한, 한아... 나 놀리는 거지? 그런 거지? 놀릴만큼 놀렸으니까,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


다운이 소리치며 절규하는 모습을, 시종마저 등돌리고 쳐다보지 않았다. 너무 아픈 걸 알기에, 시종은 그저 조용히 뒤돌아있을 뿐이었다.

다운이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 않으며 싸늘하게 식어버린 유한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유한, 사랑해. 늘 빛나던 나의 사랑. 나는 너를 진짜 사랑했다고,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걸... 너는 알았으면 좋겠어."

조금 차분해진 다운이, 말을 이었다.

"오늘만 좀 슬퍼할게. 오늘만 좀 많이 울게. 오늘만...오늘만 좀 그리워할게."

그러나, 평생을 너만 사랑할게. 그것만은 약속할게.



그날, 지하실에서는 오래도록 구슬픈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슬픔을 전해들은 이 역시 슬퍼했기에, 아무도 다운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

"어떤 아릉다운 이를 사랑한 소년이 있었죠."


다운이 지하실에서 나와 아무도없는 정원에서 작게 노래를 시작했다.


"찬란하게 빛나나 그 안의 슬픔은 누구도 몰라준, 그 사람"

나와 너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일까.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미친 듯 사랑했어요. 정말...로..."

끝끝내 노래는 이어지지 못했다.또다시 울어버린 다운탓에, 노래는 이어지지 못했다.


-

이틀 뒤-

"다운님, 좀 드세요. 오늘까지 드신 거라고는 스프 한그릇과 물 몇모금 뿐입니다."
"입맛이 없어서...그래요"


루헬이 재촉하자 다운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활기넘치던 눈에는 생기가 사라지고, 통통히 올랐던 살이 쪽 빠져 말라가고 있었다. 급격히 우울해진 낯빛이 낯설었다.

"하아, 그런 몰골을 사엘님이 보시면 좋아라하겠습니다!"
"차라리 따라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하, 루헬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해야 좋을까. 연인을 잃어 말라버린 꽃을,


"참, 다운님. 혹시 유한님의 주머니에서 나온 반지가 누구 것인줄 아십니까? 다른 언어로 적힌 터라 누구 것인지 모른다 들었습니다."

루헬이 애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오늘 아침에 전해들었던 소식을 말했다.


"예...?"
"여기 밥 드시면 그 반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한술만 뜨세요"


유한, 뭐야? 마지막 선물인거야?


다운이 더 가라앉아보이자, 루헬이 괜히 말을 꺼냈나싶어 눈을 돌렸다.


"...주세요."
"네? 아, 드시게요?"
"반지...꼭 주세요."


다운이 루헬이 들고 있던 쟁반을 앉아있던 의자 앞 책상에 내려놓고는 한 술 떴다.

-

"자, 이겁니다."

루헬이 약속대로 약속을 가져왔다. 반지 한 쌍이 가지런히 놓인 반지케이스가 다운을 반겼다.


"잠시 일 좀 하고 오겠습니다."


루헬이 눈치를 보다가 슬쩍 나갔다.


"유한..."


다운이 반지케이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사이즈가 조금 작은 반지를 꺼내들었다.


반지 바깥쪽에는 한국어로 삐뚤빼뚤하게 유한 반쪽이라 적혀있었고, 안쪽에는 내 아내 라 적힌 반지였다.


또다른 반지에는 다운반쪽, 안쪽에는 내 남편이라 적힌 반지였다.


단출하게 파란 보석 한개만 박혀있는 그 반지가, 이제 주인을 잃은 그 반지가 구슬퍼보여서.



다운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끊임없이 나오는 눈물이 놀랍기도 할 만큼.


-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황궁 밖 창문을 가만히 주시하던 다운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할머니!"


자신과 유한에게 위기가 닥칠거라 예언해주셨던 할머니. 힌트라고 했던 말이 있었다.


"아, 아 뭐였지...?"


되게, 되게 중요한 말이었는데.



다운은 결국 아무렇게나 신발을 구겨신고 황궁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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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2 19:09 | 조회 : 1,772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오늘 아프고 우울해서...도원경은 그때그때 쓰는거라, 대신 새끝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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