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7화, 나는 너를 사랑한다

다운은 지나치게 초조함을 드러냈다.

뉘엿뉘엿 져가던 해는 어느샌가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춰 밤이 되었다.

왔다갔다 거리는 다운을 바라보던 황제는, 속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속보:마계통로를 살피러간 20사대와 21사대 전멸. 이들의 시체를 수습할 장정들을 허가해주시길 바람.]



단 두 줄의 문장임에도, 이 속보는 다운을 흔들어놓을 수 있었다.


"연 다운, 이라고 했나?"


외국인 특유의 꼬브랑발음으로 황제가 중얼거렸다.


"예."
"일단 자는 게 어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황제를 쳐다보던 다운이 실소를 자아냈다.


"전멸...이랍니까? 사엘은, 결국 죽었습니까?"


황제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운은, 그대로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밤, 그대가 없어 초라한 어느 밤.



그대가 죽었다 전해들었다.


-

다음날 아침, 장정 여러 명을 데리고 혈전이 있었던 초원으로 가는 이가 있었다. 황제의 심복이자, 제일 측근인 루헬이었다.

루헬은 장정들을 지시하며 빠르게 시체를 수습했다. 시체가 치워진 초원에는, 그저 새빨간 피만이 남아 이곳에서 혈전이 있었음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시체가 총 몇 구이더냐?"
"두 사대 합쳐 26구, 합이 맞습니다."
"사엘의 시체 역시 거두었겠지?"
"예, 모든 시체들은 일단 지하실에 내려놓았습니다만..."
"사엘과 사샤의 시체를 빼고 시체의 신원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게."
"분부 받잡겠습니다."

루헬과 황제의 얘기를 듣던 다운이 또다시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진정시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시체를 보러가겠는가?"
"허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운이 눈물 젖은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는 그런 다운에게서, 자신이 사랑했던 어떤 이를 떠올렸다.


"다녀오게."


묘하게 부드러워진 말투였지만, 다운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다운의 머릿속은 사엘의, 아니 유한의 죽음만이 맴돌기 때문이었다.


달칵- 커다란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 닫힌 문을 바라보며 황제가 작게 읊조렸다.



"보고싶구나, 내가 죽였는데도."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나는 황제가 된 것이겠지.


황제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찬란했던 그때를 잊지 못하기에, 나는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는 것이겠지.


내가...죽였음에도.


-

우리의 첫 경험은 웃기게도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미친듯한 공허감을 채워보려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 관계가 점점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힘든 건 너였다. 그 아슬아슬한 사이를 나는 즐겼고 너는 괴로워했다.


그건 아마도 너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너를 그저 섹파로 본다는 걸, 너는 알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너도 모르는 것이 있다.

나도 너를 사랑했다. 티 낼 수 없어, 깊숙히 묻고 영영 꺼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제국이 갈라져 오랫동안 못 만났다 해도,
그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 너를 죽였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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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1 20:32 | 조회 : 1,572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유한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분을 위해(찡긋/ 9시에 뵐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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